▲ 서양등공나물서울 강동구 명일동 아파트단지에 핀 꽃 ⓒ 정정자
이 꽃을 보면 이효석님의 <메밀꽃 필 무렵>이 생각난다. 멀리서 보면 마치 새하얀 메밀꽃과 흡사한데, 요즘 등산을 하다보면 어떤 골짜기엔 아예 메밀꽃밭처럼 산골짜기며 능선을 온통 뒤덮고 있어 꿈결처럼 아득하고 아름답기도 하다.
서울근교 산기슭마다 지천으로 피어있는 이 꽃 이름은 서양등골나물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등골나물은 키가 1m 이상 훌쩍 크고 더러는 연분홍빛이 도는 것도 있는데 서양등골나물은 키가 60~80cm 쯤으로 아담하며 생명력이 강하여 어느 곳에서나 잘 자라는 억척스러운 꽃이다.
어제는 집 주변 인근 아파트단지 화단에 이 꽃이 많이 피어 있는 걸 보았다. 경비아저씨에게 알아봤더니 일부러 심은 게 아니라 저절로 해마다 보기 좋게 피니까 그대로 놔 둔거라고 한다.
이른 봄엔 이 꽃의 싹이 들깨나물 비슷하게 올라와 보기에도 먹음직하니까 나물 장사 할머니들이 한 자루씩 뜯어가곤 하는데, 아무래도 내가 어릴 때 뜯던 들깨나물과는 달라서 식물학자 이지열씨에게 전화를 하여 알아보았다.
▲ 서양등골나물2확대해서 찍은 것 ⓒ 정정자
"그 나물은 '서양등골나물'인데요 독성이 있어서 먹으면 안 됩니다. 88올림픽 때 외국인들 주머니에서 나온 씨가 남산에 퍼지기 시작하더니 겉잡을 수 없을 만큼 서울 근교 산으로 퍼졌어요. 생명력이 강하여 아무데서나 잘 자라고 보기도 좋지만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어떤 문제인가요?"
"실은 우리 식물학자들도 그 꽃이 우리나라 산을 점령하다보니 우리나라 고유의 야생화들이 설 자리를 잃고 멸종단계에까지 이르러서 골치를 앓고 있습니다. 그래서 뜻이 있는 분들은 그 꽃을 보면 뽑아버리기도 하지만 그게 어디 인력으로 되겠습니까? 한때 황소개구리가 들어와서 우리나라 개구리들이 위협을 받던 것과 같은 양상이죠."
그런데 나물을 뜯는 할머니들은 그걸 삶아서 시장에 내다 팔고 있었다. 하기야 돌아가신 우리 시어머니는 일제강점기 때 '먹을 것이 없어서 보릿고개가 되면 산에 나물은 물론 부드러운 활엽수 나뭇잎종류는 다 먹어보았다'고 했고, 다른 건 다 먹을 수 있는데 모과나무 잎은 껄끄러워서 도저히 못 먹겠더라고 하시던 기억이 난다.
▲ ㄱ서양등골나물3그늘에있는 꽃 ⓒ 정정자
사실 우리 주변엔 이미 오래전부터 자생하여 마치 우리 야생화처럼 되어있는 귀화식물들이 110여종이나 된다는데 그 중에도 흔히 눈에 띄는 개망초, 민들레도 우리 토종은 번식력이 약하여 이미 찾아보기가 드물지만 외래종은 일년에 수도 없이 피고 지며 번식을 하고 있다.
비록 식물뿐 아니라 사람은 어떠한가? 우리는 이제 단일민족이란 말을 쓸 수 없게 되었고, 이제는 다문화민족이 되어 '세계는 하나'라는 말로 통하게 되었으니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화원엘 가 보아도 우리 꽃보다는 외래종이 더 화려하게 판을 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어릴 때 보았던 그 정겨운 제비꽃, 할미꽃, 원추리, 나리꽃이며 심지어 진달래까지 위협을 받고 있어 점점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는 말을 듣고, 그 주범(?)인 서양등골나물이 어느새 아파트 단지에까지 들어와 있는 현실 앞에 자못 걱정스럽고 씁쓸한 마음을 억제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