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 닮은 초대형 냉장고를 아십니까?
[창녕의 문화재를 찾아서⑮] 영산 석빙고(사적 제 169호)
▲ 영산 석빙고(사적169호)영산 석빙고는 만든 시기나 수법은 창녕 석빙고(1742)와 거의 같은 18세기 중엽이다. ⓒ 박종국
우스갯소리 같지만 반 아이들한테 '석빙고'가 뭐냐고 물었더니, 녀석들 "슈퍼에 파는 아이스크림이요"라고 입을 모은다. 몰라서 그런 것은 아닐진대 아이들에게 석빙고는 그저 얼음 창고일 뿐이다. 그랬다. 내 유년시절 영산 석빙고는 훌륭한 놀이터였다. 가마솥불볕 더위가 짱짱 내리쬐던 날이면 으레 냇가에서 멱을 감았고 그러다가 시들해지면 석빙고에 들어가 놀았다.
어둡고, 무섭고, 소름끼쳤지만, 여름 석빙고 안은 시원했다. 근동에 사는 아이들치고 석빙고에 들어가 보지 않은 친구는 아무도 없을 거다. 그만큼 그때는 훌륭한 어린이 놀이터였다. 겨울에도 마찬가지였다. 바람 좋은 날이면 연을 날리거나 하얗게 눈이 내리면 비료포대를 하나씩 챙겨들고 신명나게 눈썰매를 탔다.
▲ 영산 석빙고 전경어렸을 때 석빙고는 훌륭한 놀이터였다. 여름에는 에어컨으로, 겨울에는 연날리기, 눈썰매 타는 장소였다. ⓒ 박종국
▲ 영산 석빙고 등허리 모습예전에 얼마나 못살게 굴었으면 지금도 듬성듬성 잔디빠지 모습이다. ⓒ 박종국
지금도 석빙고 앞을 지나칠 때면 옛날 석빙고 잔등에 드문드문 잔디가 빠졌던 모습이 떠올라 문화재에 무지했던 자괴감으로 얼굴이 화끈거린다.
석빙고는 아이들에게 훌륭한 놀이터
인근의 창녕 석빙고에 비하면 영산 석빙고는 작고 아담하다. 꼭 작은집 같은 기분이 든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총 7개의 석빙고(경북의 청도, 현풍, 경주, 안동, 경남의 창녕, 영산, 북한의 황해도 해주)가 남북한에 존재하고 있다. 모두 18세기에 만들어졌는데, 경북 경주, 경남 창녕 등 경상도 지역에 몰려 있다.
영산 석빙고는 만든 시기나 수법은 창녕 석빙고(1742)와 거의 같은 18세기 중엽이다. 남쪽으로 문이 나 있고, 문쪽이 바닥보다 높으며, 그 반대쪽이 낮은 무덤 형태이다. 봉토 주변에 자연석을 쌓아 호석을 둘렸고, 정상에는 두 곳의 배기공이 있다. 문은 지표에서 한 단 낮은 곳으로 내려가게 된 돌계단 끝에 있으며, 옹벽은 돌 세 벌을 쌓아 주변을 정리하였다. 거칠게 다듬은 거대한 돌로 벽을 쌓고, 세 틀의 홍예를 바깥쪽으로 내고, 그 위에 판석을 덮어 공간을 차지하였다.
▲ 영산 석빙고 입구예전에는 쉽게 드나들 수 있었으나 지금은 철제문으로 굳게 잠겨 있어 그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없다. ⓒ 박종국
▲ 영산석빙고 배기공영산 석빙고 바깥 상단부에는 두 개의 배기공이 있다. ⓒ 박종국
영산 석빙고에 대한 첫인상은 "작고 아담함"
반 지하에 내부 공간을 자세히 살펴보면 석빙고의 위치에 중요한 특성이 있다. 석빙고는 주로 강이나 개울 주변에 만들어졌다. 서쪽으로 흐르는 개울과 직각이 되도록 남북으로 길게 위치하고 있으며, 입구를 남쪽으로 내어 얼음을 쉽게 옮길 수 있도록 하였다. 겉모양은 마치 큼지막한 고분군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으나, 내부는 석재를 써서 장방형의 빙실(氷室)을 이루고, 계단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그런데 창녕 석빙고와 영산 석빙고는 맨눈으로 보아도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위치적으로 석빙고 후면에 작은 하천을 두고 그 하천에 각각 직각으로 설치돼 있다는 점이다. 또 북쪽에 석빙고 바닥보다 낮은 하천을 두고 석빙고 입구를 남쪽에 뒀다. 지금 창녕 석빙고는 하천이 복개돼 도로로 사용하고 있어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으나, 예전에는 화왕산에서 흘러내리는 하천이 있었다. 영산 석빙고도 마찬가지다. 현재 영산 석빙고 후면에는 북쪽으로 구계리 계곡에서 흐르는 하천이 흐르고 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사람 힘으로 얼음을 만드는 재주가 없던 옛날 겨울에 채집한 얼음을 창고에 넣어 짚과 풀로 덮고 꽁꽁 닫아 갈무리했다가 봄여름가을까지 녹지 않게 효과적으로 보관한 지금의 냉장고 역할을 한 구조물이다. 석빙고 얼음 저장 공간의 절반은 지하에 있고, 나머지 절반은 지상에 있다. 하여 그러한 생활지혜를 발현시킨 얼음 창고가 바로 '석빙고'다.
▲ 영산석빙고 전경멀리서 보면 석빙고는 마치 고분군과 같다. 그러나 냉장고가 없던 시절 석빙고는 우리 조상들의 생활지혜를 발현시킨 얼음 창고였다. ⓒ 박종국
석빙고는 우리 유산 중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과학적인 것으로, 외견상 단순한 고분 형태다. 최근 에너지 고갈과 환경문제가 전 세계적인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자연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에너지는 실용화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선조들은 냉장고가 없었던 시절에도 지혜를 발휘하여 한여름에도 얼음을 즐겼다. 석빙고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느낄 수 있는 과학문화재임에 틀림없다.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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