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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없애야 말 된다 (112) 방관적

― ‘방관적인 사람들’ 다듬기

등록|2008.10.05 18:12 수정|2008.10.05 18:12

.. 심지어 방관적인 사람들조차도 상황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해 무언가 건설적인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  <그레그 혼/조원범,조향 옮김-Living Green>(사이언스북스,2008) 11쪽

 ‘심지어(甚至於)’는 ‘게다가’나 ‘더구나’로 다듬습니다. “만들기 위(爲)해”는 “만들려고”로 손보고, “건설적(建設的)인 행동(行動)을 요구(要求)하고”는 “도움이 되는 움직임을 바라고”나 “새롭게 고쳐 나갈 길을 바라고”로 손봅니다.

 ┌ 방관적(傍觀的) : 어떤 일에 직접 나서서 관여하지 않고 곁에서 보기만 하는
 │   - 방관적 자세 / 방관적 태도 / 방관적인 성격 / 아이들 교육에는 방관적이었다
 ├ 방관(傍觀) : 어떤 일에 직접 나서서 관여하지 않고 곁에서 보기만 함
 │   - 남의 집 불 구경하듯 팔짱 끼고 방관만 할 셈이냐
 │
 ├ 방관적인 사람들조차도
 │→ 나 몰라라 하는 사람들조차도
 │→ 팔짱을 끼던 사람들조차도
 │→ 등돌리고 있던 사람들조차도
 │→ 구경만 하던 사람들조차도
 └ …

 아이를 키우는 몸이 되면서, 아이를 어떻게 가르치거나 이끌어야 할까를 좀 더 헤아리게 됩니다. 아이를 키우지 않던 몸이었을 때에도, 아이한테 무엇을 가르치거나 보여주어야 할까를 헤아리고 있었습니다.

 하나하나 따진다면, 아이를 헤아리는 일은 저를 헤아리는 일이었고, 아이 삶터를 살피는 일은 제 삶터를 살피는 일이었으며, 아이 앞날을 걱정하는 일은 제 앞날을 걱정하는 일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무엇을 먹어야 하느냐를 따지는 일은 제가 무엇을 먹어야 하느냐를 따지는 일이었고, 아이들이 무슨 놀이나 일을 즐겨야 할까를 곱씹는 일은 제가 무슨 놀이나 일을 즐겨야 할까를 곱씹는 일이었으며, 아이한테 쥐어 줄 책을 찾는 일은 제가 쥐어 들 책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 방관적 자세 → 팔짱 낀 모습
 ├ 방관적 태도 → 고개 돌린 매무새
 ├ 방관적인 성격 → 구경만 하는 품새
 └ 아이들 교육에는 방관적이었다 → 아이들 교육에는 눈길도 안 두었다

 말을 어떻게 하고 글을 어찌 쓰느냐를 다스리는 일은, 아이들이 쓸 말과 글뿐 아니라 제가 쓸 말과 글을 다스리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옳게 쓰도록 도와주는 일만이 아닙니다. 저부터 제가 쓸 말과 글을 다스리는 일입니다. 그러는 가운데 제 둘레 아이들한테 일러 주거나 가르쳐 줄 말과 글을 다스리는 일이에요.

 이렇기에 아무 말이나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아무 글이나 대충 쓸 수 없습니다. 하나하나 꼼꼼히 살피게 됩니다. 구석구석 샅샅이 짚어 나가게 됩니다. 허튼 구석은 없는지, 얄궂은 대목은 없는지, 비틀린 말씨는 없는지, 어수룩한 생각을 밀어붙이고 있지 않은지, 알량한 마음주머니가 그대로 드러나 있지 않은지, 잘못인데 잘못인 줄 못 느끼고 있지 않은지 들을 하나씩 되짚습니다.

 말만 깨끗하다고 끝이 아닙니다. 말에 담는 넋과 얼이 얼마나 깨끗하거나 올바르거나 아름답거나 싱그러운가를 함께 보아야 합니다. 말은 번지르르하지만 속알맹이는 없다든지, 글은 매끄럽지만 속살은 물러터졌다면 안 됩니다. 겉사람과 속사람이 하나가 되어야 하듯, 겉글과 속글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마음과 속으로 담아내는 마음이 하나가 되면서 자연스러움을 찾아야 합니다. 억지를 부리는 매무새여서는 안 되고, 억지를 부리는 줄거리여서도 안 되며, 억지를 부리는 글투여서도 안 됩니다.

 ┌ 여태껏 손을 놓고 있던 사람들조차도
 ├ 이제까지 마음 한 번 안 쓰던 사람들조차도
 ├ 그동안 눈길조차 두지 않던 사람들도
 └ …

 생각길을 트면 생각이 열립니다. 마땅한 노릇입니다. 생각하는 길을 활짝 열어 놓으면 온갖 생각이 드나들면서 좋고 궂은 생각이 뒤섞이는 가운데, 스스로 옳고 그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 스스로 생각을 튼튼하게 다독이면서 가꾸는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면.

 말길을 트면 말문이 열립니다. 그렇겠지요? 속에서 터져나오는 대로 말을 한다고 하면, 못할 말이 없고 못 쓸 글이 없습니다. 어느 자리에 서건 옳은 소리를 내게 됩니다. 누구 앞에서건 해야 할 말을 또박또박 하게 됩니다. 말 못할 자리란 없고, 못 쓸 편지란 없습니다. 어려운 자리라면 어려움을 잘 녹여내면서 슬기롭게 풀어내야 합니다. 아슬아슬한 때라면 아슬아슬함을 알맞게 풀어내면서 야무지게 여미어야 합니다.

 옳은 말을 더욱 알맞춤하게, 한결 아름답게, 좀더 사랑과 믿음을 담아서 해야 할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때때로 뜻을 못 이루게 되더라도 이 다음에 이룬다는 마음가짐으로 당차게 주먹을 불끈 쥐어야지 싶습니다.

 세상을 나 몰라라 하지 않으면서, 내 말과 글을 대충 지나치지 않도록 다잡아 줍니다. 그냥저냥 좋으면 좋은 대로 흘려보내지 않으면서, 내 얼과 넋이 사랑스러움과 믿음직함을 고이 간직할 수 있도록 붙잡아 줍니다. 고개를 돌리지 않으면서. 팔짱을 끼지 않으면서. 눈을 감지 않으면서. 그냥 서 있지 않으면서. 한 걸음 물러서지 않으면서. 머뭇머뭇하지 않으면서. 망설이지 않으면서. 셈속을 따지지 않으면서. 참과 거짓을 생각하면서.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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