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더 큰 도움
“처음에는 제 자신을 위해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제게 도움이 되는 것부터 읽어 나갔죠.”
올해로 녹음봉사 3년차인 안선정 (42)씨는 경기도 수원에서부터 두 시간 거리인 이곳 <한국 점자도서관>이 있는 서울 강남구 암사동까지 매주 두 번씩 녹음 봉사차 온다. 먼 거리 인데도 즐거운 마음으로 온다는 그녀는 3년 전 선배를 통해서 이런 봉사활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우울하고 자신이 사라져간다고 생각할 무렵 스스로를 세우기 위한 통로였던 셈이다.
안씨는 두려움이나 외로움을 견디는 방법들에 관한 책이나 삶에 힘을 실어주는 책들로만 골라서 녹음을 시작했었다. 남을 돕는다기보다 자신을 돕는다는 생각으로 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거꾸로 주변을 돌아보게 되는 힘을 녹음하면서 읽게 된 책들로부터 얻었다고 고백한다. 또한 이곳에서 다니면서 시각장애인들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소설을 녹음 할 때는 정말 힘들어서 몇 번이나 그만 두려고 했었어요. 특히 이외수씨의 장편소설 <장외인간1, 2>를 읽을 때는 평생 해볼 수 있는 욕을 전부 다 해보았어요” 라며 몸서리를 친다. “조그만 부스 안에서 혼자 읽는대도 얼굴이 붉어지고 아휴~ 말도 마세요~”
한번은 와인 전문 서적을 읽다가 용어가 너무 어려워 발음이 자꾸 꼬이는 바람에 포기한 적도 있다고. 이제는 자신의 목소리 톤을 고려해서 전문 학회지나 소식지 등을 읽는다. 그가 봉사하는 곳은 이곳 뿐이 아니다. <수원 장애인 종합복지관>에서도 이곳처럼 녹음봉사를 할 수 있어서 일주일에 세 번은 수원에서 녹음봉사를 하고 있다.
“결혼을 일찍했어요. 아이들 다 키워놓으니 시간 여유가 생겼죠. 남을 돕는것도 중요한 거지만 이 일을 하면서 제가 더 자랐죠. 한 달에 한 두권씩, 일 년이면 양이 엄청나죠. 완성된 씨디를 받아보면 정말 뿌듯해요.”
멀어도! 아파도! 봉사는 꾸준히
감기를 심하게 앓아도 참고 계속 나온다고 한다. 가까운 거리에 사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수원에서 서울 암사동은 보통 거리가 아니다. 기자가 살고 있는 곳도 수원과 가깝기 때문이다.
그곳을 가기 위해 버스도 타야했고 두 시간이나 걸리는 지하철을 3번이나 갈아타야 했다. 암사역에 내려서도 꽤 걷는다. 좁은 골목 사이 숨박꼭질 하듯 찾아낸 도서관. 3층 녹음실까지는 또 걸어 올라가야한다. 완전 파김치가 따로 없었다. 숨도 차고 힘도 들었다. 이런 고생을 하면서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더군다나 무료봉사인 이런 일이 즐겁다고 말하는 그녀이다.
김현주 (33)씨는 녹음 봉사한 지 1년이 되었다. “대학 교재등 전문 용어가 많이 나오는 책을 읽으면 발음이 어렵거나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가끔 있어요.” 시각장애인들 중에는 대학에 다니는 분들도 있다. 이런 분들을 위해서 해당 전공자의 녹음 봉사는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씨는 처음 녹음된 것과 일년 후 녹음된 걸 들어보면 처음엔 너무 예쁘게만 소리내려고 했었다며 지금은 많이 발전한 거라고 수줍게 웃었다.
“시각장애인들이 나의 목소리를 필요로 하구나. 책을 읽으면서도 참 뿌듯하고 보람되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니까요.”
봉사하면서 성격도 밝게
김씨는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책을 통해 말로 세상을 읽어주다보니 성격도 자연스레 밝게 바뀌었다. “다방면의 책들을 많이 읽는 편인데 얼마 전 읽은 동화책은 아직 버겁더라고요. 아직 결혼을 안 한 관계로...(웃음)” 머쓱한 표정으로 말하자 옆에 있던 안선정씨는 아이 생기면 금방 달라질 거라며 해방감 가득한 표정으로 안심(?)을 시켜준다.
녹음봉사는 봉사를 처음하는 이들에게는 비교적 실천하기 쉬운 편이라고 한다. 시간의 제약이 없고 남들 눈을 피해 조용히 봉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중간에 포기하고 그만두는 경우도 거의 없을 만큼 봉사자들 자신의 만족도도 높은 편이다. 그래서 자신이 정한 시간과 분량을 거의 다 지켜나간다. 매번 50쪽 정도 읽는 것으로 규칙을 정한다는 안씨는 그 정도 읽으려면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고 한다.
단순하게 낭랑한 목소리로 글씨를 읽어 내려가는 것과 전문 성우들처럼 연기를 하는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을터. 기자는 봉사자들의 녹음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요청했다. 작은 방안에는 여덟 개의 작은 부스가 칸칸히 나뉘어져 있었다. 흰색 칠을 한 작은 부스의 문을 열자 컴퓨터와 마이크가 놓인 책상이 보였다. 목을 가다듬고 책을 펴고 읽기 시작한다.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라는 게 아마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녹음 봉사자들은 실감나게 하기 위해 목소리를 바꾸어가며 열심히 연기를 한다. 녹음 후에는 도서관 편집팀에서 녹음파일을 검토해 침 삼키는 소리나 기침 소리가 들어간 부분, 잘못 띄어 읽은 부분, 귀걸이 같은 액세서리가 딸랑 거리는 소리등을 골라내는 수정작업을 한다.
녹음도서가 점자 도서보다 더 필요하다
시각장애인들은 점자를 읽을 수 있도록 교육을 하는 곳이 부족해서 점자를 배우기 힘들다. 또한 점자를 배울 수 없는 지체장애인이나 중도 실명자, 난독증 환자들에게도 녹음된 도서는 사막의 오아시스나 다름없다.
취재하며 놀랐던 점은 이곳이 국립이 아닌 민간이 운영한다는 것이다. 최초 설립자인 고(故) 육병일 관장은 시각장애인이었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이 전무하던 시절 사비를 몽땅 털어 세운 것이다. 지금은 그의 딸 육근해씨가 관장으로 있다.
한국점자도서관은 1969년에 설립되어 전국의 25만 시각장애인들에게 점자 및 녹음도서를 제작 보급하고 있다. 한 달에 점자도서 300여 권, DAISY 도서 50~60권을 제작해 2000여 명의 도서 회원에게 우편 대출 서비스와 직접 배달 서비스를 하고 있다.
삶을 더 풍성하게
녹음봉사자들은 한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놀랄 만큼 바뀌게 되었으며 주변 사람들까지 행복하게 되었다고. 봉사는 다른 사람의 삶뿐 아니라 자신의 삶 또한 풍성하게 해주는 기폭제인 것이다.
존 번연의 명언으로 더 깊이 생각할 여유를 나누었으면 좋겠다.
‘보답할 능력이 없는 누군가에게 뭔가를 해주기 전까지는 오늘을 다 살았다고 말할 수 없다.'
▲ 3년차 녹음봉사자 안선정씨녹음봉사를 통해 더 많은 것을 얻었다고 한다. ⓒ 김유현
“처음에는 제 자신을 위해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제게 도움이 되는 것부터 읽어 나갔죠.”
올해로 녹음봉사 3년차인 안선정 (42)씨는 경기도 수원에서부터 두 시간 거리인 이곳 <한국 점자도서관>이 있는 서울 강남구 암사동까지 매주 두 번씩 녹음 봉사차 온다. 먼 거리 인데도 즐거운 마음으로 온다는 그녀는 3년 전 선배를 통해서 이런 봉사활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우울하고 자신이 사라져간다고 생각할 무렵 스스로를 세우기 위한 통로였던 셈이다.
안씨는 두려움이나 외로움을 견디는 방법들에 관한 책이나 삶에 힘을 실어주는 책들로만 골라서 녹음을 시작했었다. 남을 돕는다기보다 자신을 돕는다는 생각으로 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거꾸로 주변을 돌아보게 되는 힘을 녹음하면서 읽게 된 책들로부터 얻었다고 고백한다. 또한 이곳에서 다니면서 시각장애인들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소설을 녹음 할 때는 정말 힘들어서 몇 번이나 그만 두려고 했었어요. 특히 이외수씨의 장편소설 <장외인간1, 2>를 읽을 때는 평생 해볼 수 있는 욕을 전부 다 해보았어요” 라며 몸서리를 친다. “조그만 부스 안에서 혼자 읽는대도 얼굴이 붉어지고 아휴~ 말도 마세요~”
한번은 와인 전문 서적을 읽다가 용어가 너무 어려워 발음이 자꾸 꼬이는 바람에 포기한 적도 있다고. 이제는 자신의 목소리 톤을 고려해서 전문 학회지나 소식지 등을 읽는다. 그가 봉사하는 곳은 이곳 뿐이 아니다. <수원 장애인 종합복지관>에서도 이곳처럼 녹음봉사를 할 수 있어서 일주일에 세 번은 수원에서 녹음봉사를 하고 있다.
“결혼을 일찍했어요. 아이들 다 키워놓으니 시간 여유가 생겼죠. 남을 돕는것도 중요한 거지만 이 일을 하면서 제가 더 자랐죠. 한 달에 한 두권씩, 일 년이면 양이 엄청나죠. 완성된 씨디를 받아보면 정말 뿌듯해요.”
멀어도! 아파도! 봉사는 꾸준히
감기를 심하게 앓아도 참고 계속 나온다고 한다. 가까운 거리에 사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수원에서 서울 암사동은 보통 거리가 아니다. 기자가 살고 있는 곳도 수원과 가깝기 때문이다.
그곳을 가기 위해 버스도 타야했고 두 시간이나 걸리는 지하철을 3번이나 갈아타야 했다. 암사역에 내려서도 꽤 걷는다. 좁은 골목 사이 숨박꼭질 하듯 찾아낸 도서관. 3층 녹음실까지는 또 걸어 올라가야한다. 완전 파김치가 따로 없었다. 숨도 차고 힘도 들었다. 이런 고생을 하면서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더군다나 무료봉사인 이런 일이 즐겁다고 말하는 그녀이다.
▲ 녹음봉사자들김현정씨는 더 많은 봉사인력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 김유현
김현주 (33)씨는 녹음 봉사한 지 1년이 되었다. “대학 교재등 전문 용어가 많이 나오는 책을 읽으면 발음이 어렵거나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가끔 있어요.” 시각장애인들 중에는 대학에 다니는 분들도 있다. 이런 분들을 위해서 해당 전공자의 녹음 봉사는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씨는 처음 녹음된 것과 일년 후 녹음된 걸 들어보면 처음엔 너무 예쁘게만 소리내려고 했었다며 지금은 많이 발전한 거라고 수줍게 웃었다.
“시각장애인들이 나의 목소리를 필요로 하구나. 책을 읽으면서도 참 뿌듯하고 보람되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니까요.”
봉사하면서 성격도 밝게
김씨는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책을 통해 말로 세상을 읽어주다보니 성격도 자연스레 밝게 바뀌었다. “다방면의 책들을 많이 읽는 편인데 얼마 전 읽은 동화책은 아직 버겁더라고요. 아직 결혼을 안 한 관계로...(웃음)” 머쓱한 표정으로 말하자 옆에 있던 안선정씨는 아이 생기면 금방 달라질 거라며 해방감 가득한 표정으로 안심(?)을 시켜준다.
녹음봉사는 봉사를 처음하는 이들에게는 비교적 실천하기 쉬운 편이라고 한다. 시간의 제약이 없고 남들 눈을 피해 조용히 봉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중간에 포기하고 그만두는 경우도 거의 없을 만큼 봉사자들 자신의 만족도도 높은 편이다. 그래서 자신이 정한 시간과 분량을 거의 다 지켜나간다. 매번 50쪽 정도 읽는 것으로 규칙을 정한다는 안씨는 그 정도 읽으려면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고 한다.
단순하게 낭랑한 목소리로 글씨를 읽어 내려가는 것과 전문 성우들처럼 연기를 하는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을터. 기자는 봉사자들의 녹음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요청했다. 작은 방안에는 여덟 개의 작은 부스가 칸칸히 나뉘어져 있었다. 흰색 칠을 한 작은 부스의 문을 열자 컴퓨터와 마이크가 놓인 책상이 보였다. 목을 가다듬고 책을 펴고 읽기 시작한다.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라는 게 아마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녹음 봉사자들은 실감나게 하기 위해 목소리를 바꾸어가며 열심히 연기를 한다. 녹음 후에는 도서관 편집팀에서 녹음파일을 검토해 침 삼키는 소리나 기침 소리가 들어간 부분, 잘못 띄어 읽은 부분, 귀걸이 같은 액세서리가 딸랑 거리는 소리등을 골라내는 수정작업을 한다.
▲ 녹음실작은 녹음부스 안에서는 오로지 자신의 목소리에만 집중해야 한다. ⓒ 김유현
녹음도서가 점자 도서보다 더 필요하다
시각장애인들은 점자를 읽을 수 있도록 교육을 하는 곳이 부족해서 점자를 배우기 힘들다. 또한 점자를 배울 수 없는 지체장애인이나 중도 실명자, 난독증 환자들에게도 녹음된 도서는 사막의 오아시스나 다름없다.
취재하며 놀랐던 점은 이곳이 국립이 아닌 민간이 운영한다는 것이다. 최초 설립자인 고(故) 육병일 관장은 시각장애인이었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이 전무하던 시절 사비를 몽땅 털어 세운 것이다. 지금은 그의 딸 육근해씨가 관장으로 있다.
한국점자도서관은 1969년에 설립되어 전국의 25만 시각장애인들에게 점자 및 녹음도서를 제작 보급하고 있다. 한 달에 점자도서 300여 권, DAISY 도서 50~60권을 제작해 2000여 명의 도서 회원에게 우편 대출 서비스와 직접 배달 서비스를 하고 있다.
삶을 더 풍성하게
녹음봉사자들은 한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놀랄 만큼 바뀌게 되었으며 주변 사람들까지 행복하게 되었다고. 봉사는 다른 사람의 삶뿐 아니라 자신의 삶 또한 풍성하게 해주는 기폭제인 것이다.
존 번연의 명언으로 더 깊이 생각할 여유를 나누었으면 좋겠다.
‘보답할 능력이 없는 누군가에게 뭔가를 해주기 전까지는 오늘을 다 살았다고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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