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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한바탕외사초등학교 동문체육대회에 참가한 할아버지 할머니들. ⓒ 임윤수
"별거 있어? 이게 사는 재미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얼굴에 흐르는 땀을 옷소매로 쓱쓱 문지르며 운동장 밖으로 나오고 있는 할머니께 "재미있으세요?"하고 여쭈었을 때 돌아온 환한 대답입니다.
필자의 고향인 충북 괴산군 칠성면에 있는 칠성초등학교 외사분교 운동장은 매년 가을마다 하루씩은 시끌벅적 해집니다. 현재의 상황으로는 분교를 유지하는데도 재학생이 모자라 금년을 끝으로 폐교가 될 시골마을의 조그만 초등학교운동장이지만 매년 한 번, 동문체육대회가 열리는 가을 하루만큼은 동네 전체가 잔치입니다.
금년 동문체육대회는 지난 10월 3일 있었습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도회지에 나가 살고 있는 출향민은 물론 고향을 지키며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실컷 먹을 수 있을 만큼 음식은 넉넉하게 차려졌고, 빈손으로 가는 이가 없을 정도로 이런저런 경품들도 푸짐하게 마련되었습니다.
▲ 푸른 하늘에 펄럭이는 만국기에 마음조차 설레입니다. ⓒ 임윤수
▲ 할아버지들이 대부분인 동문들이 소싯적에 뛰어 놀던 운동자에 모였습니다. ⓒ 임윤수
말이 체육대회지 치러지는 행사는 고향사람과 어울리는 한마음축제입니다. 동문에 상관없이 찾아오는 모두가 어울리는 자리다 보니 어떤 집에서는 할아버지와 손자까지 3대가 참석하고, 멀리서 온 사위는 물론 이사를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도 이웃사촌으로 아무런 거리낌 없이 기꺼운 마음으로 참석합니다.
일련의 행사가 식순에 따라 진행되고 나면 놀이마당 같은 게임이 한바탕 벌어집니다. 젊은 아낙들과 여자 아이들은 야들야들 한 허리로 훌라후프를 휘감아 돌리는 묘기 같은 게임을 하고, 젊은 남자들은 편을 나누어 줄다리기를 합니다. 젊은이들이 많지 않다보니 여럿으로 편을 나눌 필요도 없고, 오래 할 것도 없습니다. 두 편으로 나누어 한바탕만 치루면 되는 단촐한 게임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펼치는 재롱잔치 같은 게임
노래자랑도 있었고 빗나간 숫자에 아쉬움 토하는 경품 추천도 중간 중간 치러졌지만 가장 인기가 있었고 웃음을 보따리 채 가져다주는 건 역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펼치는 한바탕의 게임이었습니다.
물동이 이기에 익숙한 할머니들은 머리에 얹어진 쟁반으로 공을 이어 나르는 릴레이 게임이었고, 할아버지들은 빗자루로 공을 모는 릴레이 게임이었습니다.
▲ 재학생이라고 해야 유치원생을 포함해 고작 18명 입니다. ⓒ 임윤수
▲ 먹을 것도 넉넉하게 준비되었습니다. ⓒ 임윤수
새댁시절에야 허리도 꼿꼿했고, 발걸음도 가벼웠겠지만 세월의 무게에 허리는 구부정해 졌고, 발걸음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는 할머니들이 재롱잔치를 하는 아이들 마냥 운동장에 모여 게임을 시작합니다.
뛰는 건지 걷는 건지가 모호할 만큼 느릿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들만큼은 역력합니다. 이기고 지는 것에 무슨 큰 의미가 있겠냐마는 어떻게든 이기려 슬쩍슬쩍 반칙까지 하는 모습은 불경스럽게도 귀엽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열심히들 하십니다.
건방지다고 오해를 할 만큼 슬쩍슬쩍 반말을 쓰고 있는 사회자도 당신들 아들네미의 친구니 노여울 것도 건방진 것도 아닙니다. 재미있자고 하는 너스레니 당신들 역시 당신들에게 불리하다 싶으면 사회자의 등짝을 후려 때리는 일도 벌어집니다.
공 나르기 시합은 끝났으나 순위를 결정할 수 없어 춤으로 등위를 결정하겠다는 사회자의 말에 할머니들이 춤을 춥니다. 얼싸절싸, 너울너울, 나풀나풀…. 할머니들만의 몸짓으로 막춤을 추어댑니다. 기껏해야 일 년에 한두 번, 동네 사람들과 여행을 다녀오면서 관광버스에서 흔들어 봤을 그 몸짓으로 춤을 춥니다.
▲ 할머니들이 물동이 대신 공을 이어 나르는 게임을 하기 위해 운동장에 모였습니다. ⓒ 임윤수
세련된 몸짓도 아니고, 그럴싸한 무대도 아닌 먼지 풀풀 날리는 흙 마당에서 펼쳐지는 할머니들의 춤이었지만 보는 이들을 웃게 하고, 행복하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한바탕의 춤마당으로 재롱잔치 같은 할머니들의 게임은 끝이 납니다. 어떤 눈, 어떤 마음으로 보면 주책없는 노인네들이 벌린 한바탕의 촌극쯤으로 치부 할 수도 있겠지만 할머니들, 할머니의 삶을 바탕으로 자신의 노후를 예견할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이보다 더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숭고하기조차 한 이런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빗자루로 공을 몰아가는 할아버지들의 릴레이게임도 할머니들의 공 나르기 게임만큼이나 재미있고 진지합니다. 소싯적 기분으로 공을 몰아보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다는 게 보이지만 최선을 다하는 할아버지들의 모습에선 '마음은 청춘'임이 느껴집니다.
마당놀이 같고 재롱잔치 같은 게임,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는 한바탕을 끝내고 상품 하나씩을 들고 운동장 밖으로 나오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표정은 행복빛깔 당당함 입니다.
하루 종일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어떤 이는 하하거리고, 어떤 이는 킥킥거리며 오랜만에 만나는 기쁨, 술 한 잔을 권하는 여유, 이런저런 광경을 보고 있는 즐거움을 웃음소리로 토해냅니다.
▲ 젊은 남자들은 두 편으로 나누어 줄다리기를 하였습니다. ⓒ 임윤수
칠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밭일을 해야 하고 살림살이를 해야 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 이 좋은 가을날에도 늦익은 고추를 따고 가을걷이를 하느라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이렇듯 박장대소를 하며 즐기시는 모습은 보는 이들을 행복하게 했습니다.
동문체육대회가 계속되어야 할 이유
동문체육대회를 한 번 치르려면 오랫동안 준비를 해야 하고, 적지 않은 돈이 들지만 이렇듯 우리들의 아버지이자 어머니, 할아버지이자 할머니인 어르신들과 장승처럼 고향을 지키고 있는 선후배들이 "별거 있어? 이게 사는 재미지"하며 즐길 수 있는 한 순간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동문체육대회는 계속 유지되어야 이유이며 해답이라고 생각됩니다.
대물림을 하듯 이어지는 동문체육대회, 졸업동기들이 차례에 따라 주관하여 치르고 있는 동문체육대회야 말로 십시일반으로 모은 정성으로 모든 동문들과 고향사람들에게 '사는 재미'와 가을 날 하루를 행복으로 담보해 주는 끈끈한 고향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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