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목열매붉은빛이 아름다운 주목열매, 맛도 그런대로 먹을만 하다. ⓒ 김민수
가을이 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빛깔은 형형색색의 단풍빛입니다. 제 몸 속에 있던 빛깔들을 죄다 쏟아내어 강산을 물들이는 몸짓은 처절한 아름다움입니다. 마지막 잎새를 떨구고 이른 봄 연록의 이파리를 내기까지 그들은 자기를 비우고, 비운 그 자리에는 아무도 모르게 자기만의 색깔을 채워넣습니다.
이렇게 이파리들이 자신들의 색깔을 내어놓는 축제를 열때, 조용히 또 다른 빛깔로 가을빛을 발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단풍이 고운들, 이들이 없다면 그들의 삶이 헛헛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것은 바로 일년 내내 수고하여 내놓은 열매의 빛깔입니다.
▲ 벼메뚜기의 짝짓기황금들녘의 주인노릇을 하고 있는 벼메뚜기 ⓒ 김민수
화사하지 않아도 우리의 양식이 되어주는 곡식들과 과일들의 빛깔은 참으로 고마운 빛깔입니다. 곤충들도 저마다 곡식들의 빛깔을 흉내내어가며 긴 겨울을 날 준비를 합니다.
추수를 앞둔 들녘, 아주 오랜만에 논길을 거닐었습니다.
거닐 때마다 푸드득 거리며 날아오르는 메뚜기들을 보며, 강아지풀 하나 뽑아 메뚜기를 줄줄이 엮어 맛나게 볶아먹던 어린시절을 떠올립니다. 이젠 그런 추억들 조차도 전수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막내와 걷다가 "얘야, 메뚜기 잡아서 튀겨줄까?"하니 "저걸? 맛있어?"합니다.
언젠가 뷔페에서도 메뚜기튀김이 나와서 먹은 기억이 있길래 "새우맛이야."하며 강아지풀을 하나 뽑아들었습니다.
▲ 벼황금물결 이루고 있는 논, 익은 벼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 김민수
황금들판, 지인이 농사지은 벼라 추수하면 우리 집 밥상에 올라올 것입니다.
메뚜기를 잡아 강아풀에 끼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후라이팬에 기름에 두르고, 맛소금을 뿌려가며 메뚜기를 구웠습니다.
막내는 징그럽다더니 한 두 마리 먹어보더니만 "또 잡으러 갈까?"합니다.
먹을거리를 가게에서만 사는 것으로 아는 아이들, 밤도 줍고 깜부기도 먹어보게 하고 벼이삭도 하나 잘라 까주니 맛나게 먹습니다.
아직은 추수전이라 들녘이 황금들판입니다. 누렇게 익은 벼들이 만든 황금들판, 그 어느 단풍빛보다도 아름답고 넉넉합니다.
▲ 며느리배꼽보랏빛 며느리배꼽도 잘 익었다. ⓒ 김민수
며느리배꼽도 잘 익었습니다.
보랏빛 껍질을 벗기면 새까만 씨앗이 나오겠지요. 송글송글 맺힌 보랏빛을 보니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만 같습니다. 이제 곧 가는 가을을 아쉬워할 것 같습니다.
며느리배꼽 이파리에 단풍이 들 즈음이면 서리가 내리고, 서리가 내리면 김장이 시작되고 월동준비를 마칠 즈음이면 가시가 무성한 마른줄기들이 흙으로 돌아가기 위해 흙빛으로 변해가겠지요.
주인공은 아니지만 주인공 못지 않은 빛깔들을 간직한 열매들의 빛깔에도 가을빛이 듬뿍 들어있습니다.
▲ 담쟁이덩굴의 열매담쟁이덩굴의 열매도 익고, 이파리도 단풍이 들고 있다. ⓒ 김민수
이제 막 담쟁이덩굴의 이파리들도 단풍이 들기 시작합니다.
열매는 이미 여름부터 익기 시작하더니만 어느새 단풍이 들기전인데 쪼글쪼글하니 자신들이 다 익었음을 보여줍니다.
작은 씨앗에 그들의 모든 정보가 들어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고, 그들이 흙에 떨어지면 언젠가는 또다시 열매를 맺는다는 것도 신비스러운 일입니다. 가을빛, 그것은 성숙한 빛입니다. 화사하지만 천박하지않습니다. 그 어느 여인네의 입술에 바른 립스틱보다 붉지만 요염하기 보다는 성숙한 누님의 모습을 보는 듯 합니다.
올 가을, 단풍의 빛깔에 더해 열매의 빛깔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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