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없애야 말 된다 (113) 예술적
― ‘예술적 지식’, ‘예술적 감각’ 다듬기
ㄱ. 예술적 지식
.. 그 주제는 그의 예술적 지식과 더불어 하등동물의 특성까지 묘사하려는 그의 열정을 가장 적절하게 과시할 수 있는 주제였지요 .. <그랑빌 우화>(그랑빌/햇살과나무꾼 옮김, 실천문학사,2005) 189쪽
예술이면 예술이지 ‘-적’을 붙여서 말해야 할까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적’붙이 말을 쓰게 되면, 뒤따르는 말도 비슷한 눈높이가 되기 일쑤입니다. 좀더 쉽게 쓸 수 있는 말보다는 꾸미려 드는 말을 쓰게 되고, 한결 살갑게 쓸 수 있는 말보다 어딘가 겉치레에 들뜬 말을 쓰게 돼요. ‘그려내다-담아내다-나타내다’를 쓰면 되는데 ‘묘사(描寫)’라 쓰고, ‘알맞게’를 쓰면 되는데 ‘적절(適切)’을 씁니다. ‘자랑하다-뽐내다-부풀리다’ 같은 말이 있는데 굳이 ‘과시(誇示)’라는 말을 써야 할는지요.
┌ 예술적(藝術的)
│ (1) 예술의 특성을 지닌
│ - 예술적 작품 / 예술적 감수성이 뛰어나다 / 예술적인 창작 행위 /
│ 예술적으로 표현하다 / 그의 그림은 삶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 (2) 예술의 면에서 본
│ - 예술적 의의 / 예술적 가치 / 예술적으로 가치가 높은 문화재
├ 예술(藝術)
│ (1) 기예와 학술을 아울러 이르는 말
│ (2) 특별한 재료, 기교, 양식 따위로 감상의 대상이 되는 아름다움을
│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 및 그 작품
│ (3) 아름답고 높은 경지에 이른 숙련된 기술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 그의 예술적 지식과 더불어
│→ 그의 예술 지식과 더불어
│→ 그가 지닌 예술 지식과 더불어
└ …
국어사전에 나온 ‘예술’ 풀이를 생각해 봅니다. ‘특별한 재료, 기교, 양식 따위’로 ‘감상의 대상이 되는’ 아름다움이라 하는데, 우리가 아름다움을 느끼는 대상은 꼭 ‘특별한’ 것이어야 하지 않습니다. 남다르지 않은 대상을 보고 자연을 보며 사람을 보면서도 느끼거나 빚어내는 예술입니다. 수수하고 투박한 대상이나 자연이나 사람을 부대끼면서도 일구어 내거나 북돋워 내는 예술이에요.
아름다움이란 겉보기로 예뻐 보이는 무엇이 아닙니다. 훌륭함이란 겉치레로 꾸미는 무엇이 아닙니다. 너르고 흔한 가운데 꽃피우는 아름다움이고, 수수하고 투박한 가운데 열매맺는 훌륭함입니다.
┌ 예술적 작품 → 예술 작품
├ 예술적 감수성 → 예술을 느끼는 마음 / 예술을 받아들이는 눈
├ 예술적 창작 행위 → 예술을 펼치는 일
├ 예술적으로 표현하다 → 예술답게 나타내다
└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작품 → 예술로 북돋운 작품 / 예술로 빚어낸 작품
어쩌면, 국어사전 말풀이부터 삶을 삶 그대로 바라보면서 담아내지 않기 때문에, 예술을 예술 그대로 바라보지 못할 뿐더러, 예술을 말하는 자리에서도 예술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마는구나 싶습니다.
서양사람 몸매가 잘빠진 몸매가 아닌데. 서양사람 얼굴이 예쁜 얼굴이 아닌데. 우리 눈과 마음은 온통 서양 해바라기에 치우치면서, 우리 스스로 우리 멋을 못 키우지 않느냐 싶습니다. 우리 깜냥껏 우리 맛을 못 살리지 않느냐 싶습니다. 우리 나름대로 우리 삶과 눈과 예술을 살려 나간다면, 우리 나름대로 우리 말과 글도 살려 나갑니다. 우리 나름대로 우리 삶과 눈과 예술을 살려 나가지 못하면, 우리 나름대로 우리 말과 글을 살리지 못하는 한편, 우리 스스로 우리 말과 글을 내동댕이치거나 무너뜨리고 맙니다.
예술은 ‘예술’이니, “예술 작품”이고 “예술 감수성”이며 “예술 가치”입니다. “예술 지식”이고 “예술을 아는 지식”이며 “예술을 나타낼 줄 아는 지식”이거나 “예술을 말하는 지식”이라든지 “예술을 느끼는 지식”입니다.
ㄴ. 예술적 감각
.. 예술적 감각만으로 되는 일이 디자인이었다면 디자이너에게 디자인은 훨씬 더 즐길 만한 일이었겠지만 .. <나의 디자인 이야기>(이나미, 마음산책, 2005) 15쪽
“이것은 예술이야” 하고 말할 때와 “이것은 예술적이야” 하고 말할 때 어떻게 다를까 생각해 봅니다. 또한 “이것은 예술 같아” 하고 말할 때는 어떻게 다를까 궁금합니다. ‘-적’을 붙이면 안 붙일 때하고 느낌이 달라진다고 하는데, 이렇게 달라지는 느낌은 얼마나 우리 생각을 잘 담아내고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 예술적 감각만으로 되는 일
│
│→ 예술 감각만으로 되는 일
│→ 예술을 느끼기만 하면 되는 일
│→ 예술을 느끼면 되는 일
│→ 예술을 알면 되는 일
└ …
글을 쓰면 ‘글쓴이’라고, 또는 ‘글쟁이’라고 하면 됩니다. 그림을 그리면 ‘그린이’라고, 또는 ‘그림쟁이’라고 하면 됩니다. 사진을 찍으면 ‘찍은이’라고, 또는 ‘사진쟁이’라고 하면 됩니다. 그렇지만 우리 말 ‘-쟁이’는 낮잡는 말로 여기며 한 수 아래로 여깁니다. 그렇다면 ‘-장이’라는 말이 있건만, 이런 말을 쓰기보다는 ‘作家’나 ‘專門家’라는 말을 붙이기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더군다나, ‘프로-아마’라는 말이 쓰이고 ‘프리랜서’라는 말이 쓰입니다. 서양말로 된 온갖 직책말이 흘러듭니다. 자기가 하는 일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 말하기보다는, 무엇인가 덧바르거나 꾸미려고, 좀더 높이거나 부풀리려고 합니다.
일하는 사람은 ‘일꾼’이고 사냥하는 사람은 ‘사냥꾼’입니다. 농사를 지으니 ‘농사꾼’입니다. 노동을 한다면 ‘노동꾼’이 될 테지요. 이런 흐름을 좇으면, 글을 쓰는 이는 ‘글꾼’, 그림을 그리는 이는 ‘그림꾼’, 사진을 찍는 이는 ‘사진꾼’입니다. 책 만드는 일을 하면 ‘책쟁이’나 ‘책꾼’쯤 될까요.
문화에 얽힌 일을 하든, 예술이라 일컫는 일을 하든, 자기 일을 더 높이지도 않고 낮추지도 않으면서 말할 수 있어야 비로소 누구한테나 아름다움을 선사할 수 있는 일이 될 수 있다고 느낍니다. 이런 일이 될 수 있다면 예술은 그저 예술일 뿐이지, ‘예술적’인 일이 안 된다고 느껴요.
겉치레에 끌리고 겉꾸밈에 마음을 빼앗길수록 말이 말다움을 잃고 글은 글다움이 가시며 삶은 현실하고 자꾸 멀어지지 싶습니다.
.. 그 주제는 그의 예술적 지식과 더불어 하등동물의 특성까지 묘사하려는 그의 열정을 가장 적절하게 과시할 수 있는 주제였지요 .. <그랑빌 우화>(그랑빌/햇살과나무꾼 옮김, 실천문학사,2005) 189쪽
┌ 예술적(藝術的)
│ (1) 예술의 특성을 지닌
│ - 예술적 작품 / 예술적 감수성이 뛰어나다 / 예술적인 창작 행위 /
│ 예술적으로 표현하다 / 그의 그림은 삶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 (2) 예술의 면에서 본
│ - 예술적 의의 / 예술적 가치 / 예술적으로 가치가 높은 문화재
├ 예술(藝術)
│ (1) 기예와 학술을 아울러 이르는 말
│ (2) 특별한 재료, 기교, 양식 따위로 감상의 대상이 되는 아름다움을
│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 및 그 작품
│ (3) 아름답고 높은 경지에 이른 숙련된 기술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 그의 예술적 지식과 더불어
│→ 그의 예술 지식과 더불어
│→ 그가 지닌 예술 지식과 더불어
└ …
국어사전에 나온 ‘예술’ 풀이를 생각해 봅니다. ‘특별한 재료, 기교, 양식 따위’로 ‘감상의 대상이 되는’ 아름다움이라 하는데, 우리가 아름다움을 느끼는 대상은 꼭 ‘특별한’ 것이어야 하지 않습니다. 남다르지 않은 대상을 보고 자연을 보며 사람을 보면서도 느끼거나 빚어내는 예술입니다. 수수하고 투박한 대상이나 자연이나 사람을 부대끼면서도 일구어 내거나 북돋워 내는 예술이에요.
아름다움이란 겉보기로 예뻐 보이는 무엇이 아닙니다. 훌륭함이란 겉치레로 꾸미는 무엇이 아닙니다. 너르고 흔한 가운데 꽃피우는 아름다움이고, 수수하고 투박한 가운데 열매맺는 훌륭함입니다.
┌ 예술적 작품 → 예술 작품
├ 예술적 감수성 → 예술을 느끼는 마음 / 예술을 받아들이는 눈
├ 예술적 창작 행위 → 예술을 펼치는 일
├ 예술적으로 표현하다 → 예술답게 나타내다
└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작품 → 예술로 북돋운 작품 / 예술로 빚어낸 작품
어쩌면, 국어사전 말풀이부터 삶을 삶 그대로 바라보면서 담아내지 않기 때문에, 예술을 예술 그대로 바라보지 못할 뿐더러, 예술을 말하는 자리에서도 예술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마는구나 싶습니다.
서양사람 몸매가 잘빠진 몸매가 아닌데. 서양사람 얼굴이 예쁜 얼굴이 아닌데. 우리 눈과 마음은 온통 서양 해바라기에 치우치면서, 우리 스스로 우리 멋을 못 키우지 않느냐 싶습니다. 우리 깜냥껏 우리 맛을 못 살리지 않느냐 싶습니다. 우리 나름대로 우리 삶과 눈과 예술을 살려 나간다면, 우리 나름대로 우리 말과 글도 살려 나갑니다. 우리 나름대로 우리 삶과 눈과 예술을 살려 나가지 못하면, 우리 나름대로 우리 말과 글을 살리지 못하는 한편, 우리 스스로 우리 말과 글을 내동댕이치거나 무너뜨리고 맙니다.
예술은 ‘예술’이니, “예술 작품”이고 “예술 감수성”이며 “예술 가치”입니다. “예술 지식”이고 “예술을 아는 지식”이며 “예술을 나타낼 줄 아는 지식”이거나 “예술을 말하는 지식”이라든지 “예술을 느끼는 지식”입니다.
ㄴ. 예술적 감각
.. 예술적 감각만으로 되는 일이 디자인이었다면 디자이너에게 디자인은 훨씬 더 즐길 만한 일이었겠지만 .. <나의 디자인 이야기>(이나미, 마음산책, 2005) 15쪽
“이것은 예술이야” 하고 말할 때와 “이것은 예술적이야” 하고 말할 때 어떻게 다를까 생각해 봅니다. 또한 “이것은 예술 같아” 하고 말할 때는 어떻게 다를까 궁금합니다. ‘-적’을 붙이면 안 붙일 때하고 느낌이 달라진다고 하는데, 이렇게 달라지는 느낌은 얼마나 우리 생각을 잘 담아내고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 예술적 감각만으로 되는 일
│
│→ 예술 감각만으로 되는 일
│→ 예술을 느끼기만 하면 되는 일
│→ 예술을 느끼면 되는 일
│→ 예술을 알면 되는 일
└ …
글을 쓰면 ‘글쓴이’라고, 또는 ‘글쟁이’라고 하면 됩니다. 그림을 그리면 ‘그린이’라고, 또는 ‘그림쟁이’라고 하면 됩니다. 사진을 찍으면 ‘찍은이’라고, 또는 ‘사진쟁이’라고 하면 됩니다. 그렇지만 우리 말 ‘-쟁이’는 낮잡는 말로 여기며 한 수 아래로 여깁니다. 그렇다면 ‘-장이’라는 말이 있건만, 이런 말을 쓰기보다는 ‘作家’나 ‘專門家’라는 말을 붙이기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더군다나, ‘프로-아마’라는 말이 쓰이고 ‘프리랜서’라는 말이 쓰입니다. 서양말로 된 온갖 직책말이 흘러듭니다. 자기가 하는 일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 말하기보다는, 무엇인가 덧바르거나 꾸미려고, 좀더 높이거나 부풀리려고 합니다.
일하는 사람은 ‘일꾼’이고 사냥하는 사람은 ‘사냥꾼’입니다. 농사를 지으니 ‘농사꾼’입니다. 노동을 한다면 ‘노동꾼’이 될 테지요. 이런 흐름을 좇으면, 글을 쓰는 이는 ‘글꾼’, 그림을 그리는 이는 ‘그림꾼’, 사진을 찍는 이는 ‘사진꾼’입니다. 책 만드는 일을 하면 ‘책쟁이’나 ‘책꾼’쯤 될까요.
문화에 얽힌 일을 하든, 예술이라 일컫는 일을 하든, 자기 일을 더 높이지도 않고 낮추지도 않으면서 말할 수 있어야 비로소 누구한테나 아름다움을 선사할 수 있는 일이 될 수 있다고 느낍니다. 이런 일이 될 수 있다면 예술은 그저 예술일 뿐이지, ‘예술적’인 일이 안 된다고 느껴요.
겉치레에 끌리고 겉꾸밈에 마음을 빼앗길수록 말이 말다움을 잃고 글은 글다움이 가시며 삶은 현실하고 자꾸 멀어지지 싶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