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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못자고 밥 굶으면서, 7년 사랑했어요"

사진전 '우포의 사계'로 람사르총회 성공 기원하는 정봉채 작가

등록|2008.10.08 15:08 수정|2008.10.08 15:25

▲ 우포전체를 덥고있는 가시연꽃을 찍었다. 가시연꽃은 자기가슴을 뚫고 나오는 아픔을 간직한 꽃이다. 우포의 상징인 가시연, 그 가슴을 뚫고 나오는 장면을 표현하기 위해 칠 년을 기다렸다. 사진 대부분이 몇 년을 기다려 촬영한 것이다. 우연은 없다. ⓒ 정봉채




람사르총회 성공 개최를 기원하기 위해 오는 31일까지 경남도립미술관과 부산 줌인갤러리 두 곳에서 '우포의 사계와 사람', '우포늪 새벽 안개'를 주제로 사진전을 여는 정봉채 (51) 작가. 그는 우포늪 마을 주민들의 추천으로 '람사르 우포 홍보대사'로 선정되기도 한 특이한 사례의 주인공이다.

"저는 우포에서 살다시피해요. 7일 중 5일을 우포에서 보내요. 사진을 찍으려고 7년을 그렇게 지냈어요. 차에서 자면서도 혹시 좋은 풍경이 나타날까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면서. 새벽에는 밥먹는 시간이 아까워 배 고파도 참고, 빵으로 허기를 때웠어요."

어느 날 람사르총회 관계자들이 우포늪을 지키는 환경지킴이들과 마을주민들에게 물었다. 누가 가장 많이 우포늪을 찾느냐고, 어떤 사람이 우포를 가장 사랑하는 것 같냐고. 그 때 주민들이 정봉채 작가를 추천했단다.

"우포 근처 주민들은 자신들 사진 찍는 것을 싫어합니다. 사람들이 자기들 사진 찍으면 막 뭐라 해요. 왜 사진 찍냐고. 근데 제가 찍으면 뭐라 말을 안합니다. 자주 보다보니 서로 친하게 된 거죠."

주민 추천으로 홍보대사 된 작가

▲ 우포늪이 노란 잔디밭같다. 배처럼 물위로 걸어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자연이 만든 환상적인 대지예술이다. ⓒ 정봉채



▲ 새는 순간적으로 찍지 않으면 도망간다. 새가 놀라서 비상하는 장면을 순간적 찬스로 잡았다. 셔터찬스가 좋았다. 이런 찬스 잡기가 힘들다. 새가 사람위에서 폭발하는 장면처럼 묘사되었다. 어부의 그물이 빛에 반사되어 그물 올이 잘 표현되었다. 장화를 싣고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늪 가장자리로 들어가 찍은 사진이다. ⓒ 정봉채



부산에서 저녁에 우포로 내려와 새벽까지 촬영을 하고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 잠도 차에서 자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생활. 몸무게도 7㎏이나 빠졌다.

"그러나 즐거워요. 우포는 제가 사랑하는 애인이거든요. 부산에서 강의를 하면서도 우포를 생각했어요."

정봉채씨는 원래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사진은 학창 시절부터 동아리에서 활동을 했다. 어느 날 그는 묘한 체험을 경험했다.   

"지금부터 10년 전쯤 될 것 같네요. 제가 풍경·자연 사진을 좋아해요. 추운 겨울날 새벽 청도의 유등연지에서 연꽃을 찍고 있었어요. 근데 김춘수의 시 '꽃'처럼 자연이 나를 찍어달라고 하는 그런 모습이 순간 제 눈에 나타나는 거예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꽃'의 시구처럼 정봉채씨는 자연과 하나된 체험, 교감을 나눈 걸까. 그는 이때부터 사진을 업으로 해서 살아가도 되겠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 태풍이 오던 날, 태풍이 치고 있을 때 찍은 사진이다. 하늘에 가끔 빛이 보이던 순간, 풀이 누울 때, 모든 것이 태풍의 위엄에 고개 숙일 때 그 모습을 담았다. 위험했다. 바람에 삼각대가 쓰러져 카메라, 렌즈가 부숴질 때도 있다. 돈 많이 든다. ⓒ 정봉채


"제 사진 예술의 목적은 아름다움을 통해서 사람의 마음을 정화하는 데 있어요. 우포늪 수생식물들이 정화에 한몫하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우포늪을 찾게 됐어요. 연(연꽃)도 물을 정화한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마음을 맑게 하는 작가, 마음이 맑은 사진가로 불리기를 원해요."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몇 년을 기다려 찍은 사진들이다. 가시연꽃 사진도, 봄과 겨울에 찍은 우포늪 전경도, 고양이처럼 장화를 신고 늪 가장자리로 살금살금 들어가 찍은 어부 위로 날아오르는 새의 장면도 오랜 시간 참고 기다리며 노렸던 순간들이다.

"작품은 기다림입니다. 사진은 관심입니다. 끊임없는 사랑·관심을 줬을 때 자연이 나에게 다가옵니다. 찍을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뭐든지 관심을 가지는 순간부터 사진은 시작됩니다. 아마추어들은 우연성을 가지고 가지만 저는 우연성을 인정 안합니다."

그는 처음에는 전자공학도답게 컴퓨터로 사진을 다양하게 표현한 작품 전시회를 열었다. 당시 이런 식의 작품활동은 상당한 호평을 받았고, 지인들은 계속 그 길로 갔으면 대단한 작가가 됐을 것이라고 그런단다.

"그러나 저는 인위적인 것이 싫었어요. 자연이 좋았어요. 각광받지 못해도 자연으로 돌아가 작품활동을 하고 싶었어요."

"사진은 마음으로 찍는 것입니다"

▲ 늦가을에 안개가 자욱할 때 태양이 막 떠올랐는데 앞이 안 보일 정도의 상황. 순간 새가 날아가는 소리만 듣고 가늠해서 조준하다가 순간 새가 시야에 나타나 찍은 사진. 우포늪에서 찍은 사진들은 소리만을 듣고 오감을 총동원해서 촬영한 사진이 많기 때문에 '내 사진은 소리다'라고 말한다. ⓒ 정봉채


▲ 우포는 허파역할을 한다. 홍수시에는 낙동강에서 물이 역류해서 우포로 들어오면 수위가 올라가 주변의 길이 물에 잠기기도 한다. 낙동강 홍수시에 산을 넘어서 우포에서 찍은 사진이다. 어부가 붕어무게를 재는 저울을 길가에 놓아두고 간 것을 찍었다. 연출해서 찍은 사진이 아니다. ⓒ 정봉채


먹고 사는 것만 해결되면 사진만 찍고 싶은데 현실은 그렇게 안 된다. 저녁, 새벽에 현장으로 달려가 사진을 찍고 다시 돌아가 대학교나 시민단체에서 강의를 하면서 살아가는 생활이 쉬운 것은 아니다. 자본과 결탁한 상업사진을 하면 돈도 되고 유명세도 탈 텐데.

태풍이 부는 날 삼각대가 바람에 쓰러져 카메라와 렌즈도 부숴지고, 그렇게 힘들게 해서 찍은 사진을 인화하고 액자로 만드는 데 200만원 가량이 소요되는데 사람들은 원가보다 더 싸게 작품을 구입하려고 한다. 이런 현실에도 그는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는다. 

"사람들은 사진 자체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유명세에 관심을 가집니다. 좋은 음악을 들으면 그게 어떤 음악인지 알려고 하듯이 사진을 먼저 보고 거기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유명하니까 그 사진을 볼 것이 아니라 좋은 사진 그 자체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사진의 진정성·의미에 더 관심을 가져야 됩니다."

그의 제자 중에 5~6개월 배워 비즈니스 잘해서 유명세를 타는 사람도 있다. 지금의 사진들은 모방·가벼움에 치우치고 있고, 사람들도 부담이 없는 것을 찾고 의미심장하고 무게 있는 작품은 외면하는 게 현실이다.

"사진은 마음으로 찍는 것입니다. 기술적인 것은 한 달이면 습득합니다. 사진가는 항상 자신의 마음을 준비해 두지 않으면 좋은 사진이 나오지 않습니다. 정치·사회·경제·역사·미학 등 모든 것에 대해 공부하고 섞어야 좋은 사진이 나올 수 있습니다."

▲ 물에 비친 구름색깔이 너무 아름답다. ⓒ 정봉채


▲ 노을색깔로 물든 우포늪과 주변의 젊은 푸른 빛 풀색깔과 대비를 이뤄 참 아름답게 느껴진다. ⓒ 정봉채


▲ 우포늪 가을의 석양빛이 열정적이고 강렬하다. ⓒ 정봉채


정봉채 사진작가 주요 약력
 
1957년생. 경남 하동 출생.
경성대학교 대학원 사진학과 졸업
현)동주대학 사진영상과 겸임교수.
람사르 우포 홍보대사

부산 가톨릭센터 사진교실운영
삼성카메라 사진아카데미 사진교실운영
현대사진영상학회 회원

개인전 9회, 단체전 20여회, 전시기획전 22회

사진집 출간
평화의 마을. 삼성출판사(1993)
우포늪. 눈빛출판사(2008)

'어떤 사진이 좋은 사진입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주제의 본질이 바로 드러나야 됩니다. 작가의 개성과 관계, 표현하려는 목적이 사진작품에서 바로 느껴져야 합니다. 사진은 충격입니다. 사진은 바로 즉각적인 반응을 보여야 됩니다. 강력한 정보 전달력, 바로 주제의 본질이 느껴져야 됩니다.

그 다음이 작가의 개성·독창성이 있어야 되죠. 그리고 기술적 수법도 완벽해야 됩니다. 구도, 광선, 카메라와 피사체와의 거리, 렌즈 사용 등 기술적 수법이 떨어지면 안 됩니다."

상업자본과 유명세에 흔들리는 가벼운 세태에 아랑곳 하지 않고 인내로 만들어진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세상과 인간을 맑고 순수하게 정화시키려는 그의 작품세계가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게 되기를 소망해 본다.

▲ 경남도립미술관에 '우포의 사계와 사람'을 내용으로 전시중인 작품앞에 선 정봉채 사진작가. 사진은 아름다운 풍경을 통해 우리 기억속의 고향을 보는 눈으로 이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만든다고 한다. ⓒ 조우성

덧붙이는 글 다음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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