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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개월 철군론' 오바마와 '영구 주둔' 꿈꾸는 매케인

[2008년 미국 대선과 세계-(5)] 이라크

등록|2008.10.08 12:12 수정|2008.10.08 12:14

▲ 2003년 미-이라크전 당시 후세인 대통령 아들들이 숨은 집을 공격하는 미군들(자료사진) ⓒ 미 국방부


작년까지만 해도 이라크 전쟁은 2008년 미국 대선의 최대 쟁점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라크에 대한 관심은 멀어지고 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먼저 이라크에서 유혈 사태 및 미군 사상자 수가 크게 줄어든 것이 주효했다. 또한 잇따라 터지고 있는 금융위기로 인해 경제 문제가 대선의 최대 관심사로 부상하면서 이라크 문제는 뒷전으로 밀리는 분위기이다.

미국 정부가 발표한 내용을 보더라도 미군 사망자 수의 급감은 눈에 띈다. 미군 사망자 수는 미국 여론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해온 사안이다. 2003년 3월 20일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2008년 9월까지 미군 사망자는 4176명에 달한다. 사망자수가 가장 높았던 시기는 2004-2007년으로 매년 900명 안팎의 미군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2008년 들어 그 수는 크게 줄어 9월까지의 사망자는 269명으로 이전의 3분의 1 수준을 보이고 있다. 테러 등 유혈사태로 목숨을 잃는 이라크인들도 크게 줄어들고 있다.

이에 따라 부시 행정부는 미국이 비로소 궁지에서 벗어나 승리의 길로 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듯 부시 대통령은 9월 9일에 8천명의 미군을 내년 2월까지 이라크에서 철수시키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10월 2일에는 5만4천명의 수니파 순찰대의 통제권을 이라크 중앙정부로 이양하기로 했다. 이는 '이라크 안정화 작전의 이라크화'의 일환이다. '각성 회의(Awakening Councils)'이라고 불리는 수니파 순찰대원은 약 10만명에 달하는데, 이들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 및 점령에 맞선 핵심적인 저항세력이었으나, 2005년부터 미군과 협력해 알-카에다 소탕 작전에 나서왔다.

그러나 최근 이라크의 현실은 이러한 낙관론에 의문을 갖게 한다. 우선 빈도수는 줄었지만, 이라크의 유혈사태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 9월 18일에는 미군의 치누크 헬기가 이라크 남부 바스라 인근에서 추락하면서 7명의 미군이 목숨을 잃었다. 헬기 사고 전날 바그다드에선 차량 폭탄 테러 사건으로 2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후에도 크고 작은 유혈사태는 멈추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라크에서 미국이 승리하고 있다는 주장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라크 중앙 권력을 장악한 시아파는 미국이 중동에서 새로운 주적으로 삼고 있는 이란의 핵심적인 동맹 세력이다. 미국은 알-카에다 소탕에 참여했던 '각성 회의'에 대한 통제권을 시아파가 장악한 중앙 정부로 넘기려고 하고 있지만, 시아파는 '각성 회의'를 복병으로 간주하는 분위기이다. 또한 쿠르드족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이라크 북부의 석유 통제권을 둘러싸고 종파간의 갈등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

또한 '미국에게 이라크 전쟁 승리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침공의 명분을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제거 및 9.11 테러의 주범으로 알려진 알-카에다와의 연계를 응징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침공의 명분은 애초부터 성립할 수 없었다.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및 알-카에다와의 연계는 거짓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에서의 승리는 "통합되고, 민주적이며, 안정적인 이라크의 건설"이라고 규정해왔다. 매케인 역시 이라크를 "미국의 민주적인 동맹국"으로 만드는데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자유민주주의는 이미 미국 패권 유지를 위한 이념으로 변질됐다"는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지적처럼, 부시 행정부와 매케인의 사후 합리화는 미국 안팎에서 냉소적인 반응을 야기하고 있다.

지방선거법 통과, 이라크 화해와 통합의 계기될까?

부시 행정부는 지난 9월 말 이라크 의회를 통과하고 10월 3일 잘랄 탈라바니 대통령이 최종 승인한 지방선거법이 정파간의 화해와 통합의 중대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환영하고 있다.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만큼 민주주의에서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부시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이러한 기대감을 엿볼 수 있다.

첨예한 정파간의 갈등으로 1차례 연기되는 등 난항 끝에 제정된 이라크 지방선거법에 따라, 내년 1월까지 이라크 곳곳에서는 지방선거가 실시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지방선거가 이라크 문제 해결에 큰 진전을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론을 펴고 있다.

우선 이번 선거법에는 정파간의 갈등이 첨예하고 맞서 있는 쿠르드의 3개 자치주 및 키르쿠크가 있는 타밈주가 빠져 있다. 쿠르드족이 다수파를 점하고 있는 이들 지역은 쿠르드의 분리독립에 버금가는 자치권 요구와 석유 분배를 둘러싸고 첨예한 갈등을 빚어왔다. 또한 이전 선거법과는 달리, 이라크 소수파들에 대한 할당제도 빠져 있다. 이에 따라 이라크 기독교인들은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지방선거는 이라크의 분열과 갈등, 그리고 반미 정권의 출현에 디딤돌을 놓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라크 서부 안바르에서는 과거에 반미 저항세력의 중심에 있었고, 시니파 및 수니파 중앙세력과 갈등관계에 있는 '각성 회의'의 승리가 예상되고 있다. 또한 이라크 남부에서는 반미 시아파인 알-사르드 세력의 선전이 점쳐지고 있다. 이들이 이라크 서부와 남부에서 권력 기반을 마련하게 되면, 친미 성향의 중앙 권력에도 상당한 도전이 될 전망이다.

오바마 "16개월 이내에 전투부대 철수"

이라크 정책과 관련해 미국 대선의 최대 쟁점은 미군 철수 시기이다. 오바마는 집권 이후 16개월 내에 전투 부대를 철수시키겠다고 공약하고 있다. 16개월은 부시 행정부와 이라크 정부가 잠정 합의한 철수 완료 시기, 즉 2011년 말보다 훨씬 빠르다.

오바마는 조기 철수론으로 세 가지 논리를 제시하고 있다. 미국이 명확하게 철수 시한을 밝혀야 이라크 스스로 종파간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압력이 될 수 있고, 철수한 병력을 '테러와의 전쟁'의 중심지인 아프가니스탄에 투입할 수 있으며, 막대한 이라크 전비를 줄일 수 있다는 논리이다. 특히 그는 미국의 경제위기로 막대한 이라크 전비를 부담할 능력이 위축되었다며, 조기 철수론을 돈문제로 부각시키면서 민심을 파고들고 있다.

다만 오바마는 유혈사태가 악화되면 미군 철수를 중단할 수도 있다고 덧붙이고 있다. 또한 완전 철수가 아니라 이라크군 훈련, 대사관을 비롯한 미국 시설 보호, 대테러 작전에 필요한 병력은 잔류시키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오바마는 잔류 병력의 정확한 수치를 제시하지 않고 있지만, 그의 승리시 유력한 국방장관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리차드 단지그 전 해군 장관은 3만-5만5천명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10월 6일자 뉴욕타임즈가 보도했다.

오바마의 공약 이행의 관건은 이라크군이 독자적으로 치안 유지를 담당할 수 있는 능력을 언제 확보할 것인가로 모아진다. 이와 관련해 오바마가 철수 시한으로 제시한 2010년 여름까지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이에 따라 오바마를 지지하는 일부 전략가들조차 '16개월 철수 시한'은 너무 촉박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매케인 "50년, 100년 있어도 괜찮다"

매케인은 오바마의 조기 철수론에 맹공을 퍼붓고 있다. 철수 시한을 못 박는 것은 "알-카에다를 비롯한 적들이 원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조기 철수를 이라크에서의 패배로 등치시키면서 오바마 집권시 미국은 이라크에서 패배의 길을 걷게 될 것임을 부각시켜 유권자의 안보 불안 심리를 파고들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그는 이라크 영구 주둔의 야욕을 숨기지 않고 있다. 매케인은 올해 1월 선거 유세에서 한국과 일본의 예를 들면서 "만약 이라크가 안정화되어 미군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미군이 50년, 아니 100년을 주둔해도 상관없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라크가 불안하면 안정 유지 차원에서 미군 주둔이 필요하고, 이라크가 안정화되면 미군이 목숨을 잃을 위험이 줄었으니 계속 주둔해도 된다는 아전인수식의 주둔론을 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매케인은 5월에 이라크에서 승리하면 2013년까지 대부분의 미군을 철수하기를 원한다며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9월 27일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는 이라크에 미군 기지를 건설해 미군을 영구 주둔시키는 문제는 앞으로 미국 정부와 이라크 정부가 상의해서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는 자신의 집권시 이라크 영구 주둔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내비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매케인의 목표는 이라크를 중동의 강력한 미국의 동맹국으로 만들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라크 전쟁에서의 승리를 "이라크가 민주적인 동맹국이 되게 하는 것"이라는 그의 발언을 통해서도 이는 잘 드러난다.

그러나 이라크 침공 자체를 반대했던 오바마는 최소한의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볼 때, 이라크가 미국과 주변국을 위협하지 않고, 자신의 치안과 국방을 책임질 수 있으며, 알-카에다를 비롯한 테러집단의 근거지가 되지 않는 수준만 되더라도 미국의 목표는 달성하는 셈이라는 것이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주한미군

기실 이라크 주둔 미군의 감축 여부는 주한미군의 미래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앞으로 이라크 주둔 미군이 대폭 감축되어 아프가니스탄에 투입된다면, 주한미군 감축 압박은 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라크 상황이 크게 개선되지 않아 감축이 어렵거나 추가적인 투입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하면, 미국은 주한미군의 추가적인 감축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전망은 이라크뿐만 아니라 아프간의 상황이 그리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매케인은 물론이고 오바마도 아프간에 추가적인 병력 투입을 공언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해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사령관들은 1만-1만2천명에 해당하는 3개 여단의 추가적인 투입이 절실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국방부와 합참은 그럴 여력이 없다며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나토 동맹국들과 일본에게 "병력을 보내 아프간에서 싸우든지, 돈을 내든지 하라"며 읍소형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전투병을 보내 싸우기 싫으면 최소 170억 달러가 필요한 아프간 군대 양성 비용이라도 결재하라는 것이다. 미국 정부가 이와 같은 요구를 한국 정부에게도 전달했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전략 동맹'을 선언한 이명박 정부에게 파병이나 전비 부담을 요구하고 나설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주목할 점은 2012년 4월로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도 미국의 이라크 및 아프간 정책과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제위기와 이라크 및 아프간 상황을 종합해볼 때, 차기 미국 정부는 주한미군의 추가적인 감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특히 민주당은 전시 작전통제권 이양이 너무 늦다는 입장을 보인 바 있는데, 민주당은 의회 선거에서 압승이 확실시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전시 작전통제권 전환의 적정성 평가와 보완'을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시킨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작권 환수를 연기하고자 하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정욱식 기자는 평화네트워크(www.peacekorea.org)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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