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을 버리니 '우리 삶'을 버리게 됩니다
[우리 말에 마음쓰기 443] 잘못 쓴 겹말 손질 (42) ‘크기’와 ‘규모’
.. 이곳은 우리 나라의 부산과 달리 항구의 미관을 해치지 않도록 도시 내 건물의 크기와 규모를 제한하였다 .. 《유승호-문화도시, 지역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일신사,2008) 18쪽
“우리 나라의 부산”은 “우리 나라 부산”으로 고치고, “항구의 미관(美觀)”은 “항구 모습”으로 고쳐 줍니다. ‘해(害)치지’는 ‘다치지’나 ‘건드리지’로 손보고, “도시 내 건물”은 “도시에 서는 건물”이나 “도시에 짓는 건물”로 손봅니다. ‘제한(制限)하였다’는 ‘묶었다’로 손질합니다.
│ (1) 본보기가 될 만한 틀이나 제도
│ - 윗사랑, 아랫사랑, 행랑채의 규모를 고루 갖춘 것이었으나
│ (2) 사물이나 현상의 크기나 범위
│ - 규모가 크다 / 천 평 규모의 건물 / 모금 운동이 전국적인 규모로 확대
│ (3) 씀씀이의 계획성이나 일정한 한도
│ - 살림 규모 / 그 집 며느리는 빡빡한 살림을 규모 있게 꾸려 나갔다
│
├ 건물의 크기와 규모를
│→ 건물 크기를
│→ 건물 크기와 넓이를
└ …
한자말로 ‘중언부언’이라고 했습니다. 한 말 또 하고 다시 하는 셈입니다. 우리 말로는 ‘겹말’이나 ‘군말’입니다. 같은 말 되풀이하고 거듭 하는 꼴입니다.
┌ 규모를 고루 갖춘 → 짜임새(틀)를 고루 갖춘
├ 살림 규모 → 살림 크기
└ 규모 있게 → 짜임새 있게 / 알뜰하게
“빠르기와 속도가 좋다”가 아니라 “빠르기가 좋다”입니다. “넓이와 면적이 넓다”가 아니라 “넓이가 넓다”입니다. “높이와 고도가 높다”가 아닌 “높이가 높다”입니다. “크기와 규모가 크다”가 아닌 “크기가 크다”입니다.
그렇지만 ‘빠르기’가 아닌 ‘速度’를 읊는 사람들입니다. ‘넓이’가 아닌 ‘面積’을 말하는 우리들입니다. ‘높이’가 아닌 ‘高度’여야 맞는 줄 잘못 알고 있습니다. ‘크기’를 내버리고 ‘規模’를 써야 마땅한 줄 엉뚱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기한테 살가운 얼을 자기 스스로 버린다고 해야 할까요. 자기한테 아름다운 넋을 자기 손으로 잘라낸다고 할까요. 자기한테 사랑스러운 마음을 남이 아닌 자기가 굳이 몰아낸다고 할까요. 자기한테 믿음직스러운 매무새를 멋모르고 놓아 버린달까요.
┌ 규모가 크다 → 크기가 크다
├ 천 평 규모의 건물 → 천 평 크기 건물 / 천 평 넓이 건물
└ 전국적인 규모로 확대 → 전국으로 퍼짐
제 말을 버리는 사람치고 제 삶을 일구는 사람을 못 보았습니다. 제 넋을 잘라내는 사람치고 제 일거리를 살뜰히 붙잡는 사람을 못 만났습니다. 제 사랑을 몰아내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동무나 님을 사귀는 사람을 못 찾았습니다. 제 믿음을 놓아 버리는 사람치고 제 갈 길을 즐겁게 걷는 사람을 구경해 보지 못했습니다.
말을 버리니 삶을 버리게 됩니다. 넋을 자르니 일과 놀이가 동떨어집니다. 사랑을 몰아내니 사람이 멀어집니다. 믿음을 놓으니 어디로 가야 할지 종잡지 못합니다.
사람이 사람되게 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한테 사람다움을 일러 주는 밑바탕인 말이라고 느낍니다. 사람과 사람이 똑같은 한 사람으로 부대끼도록 이어주는 말이라고 봅니다. 사람 사이에서 크고 사람 사이에서 자라며 사람 사이에서 빛나는 말이라고 깨닫습니다. 이 말을 꾸밈없이 들여다볼 때 우리 삶이 살고, 이 말을 있는 그대로 껴안지 못할 때 우리 말이 죽어 버리는구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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