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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주식, 깡통주택... 미, 기회의 땅 맞아?

[새사연-오마이뉴스 공동기획 ②] 금융자본에 볼모 잡힌 미국 시민들

등록|2008.10.11 09:39 수정|2008.10.11 15:52
시장만능주의 파산과 규제 풀린 신자유주의 종언이라는 주장이 거침없이 나오고 있는 지금, 미국 정부 최후의 대책이라고 할 구제금융법안 발효를 분기점으로 미국발 금융위기와 세계경제 침체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과연 7000억 달러 투입으로 1년 넘게 지속된 금융위기를 잠재우고 실물경제를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인가. 또한 한국 정부는 역사속으로 사라져가는 미국식 모델을 여전히 밀어붙일 수 있겠는가. 새사연과 오마이뉴스는 공동기획을 통해 구제금융 법안 이후의 미국 경제를 짚어봄으로써 이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풀어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 모기지채권으로 자금난을 겪고있는 은행들을 구제하기 위해 7천억달러의 구제금융을 실시하려는 헨리 폴슨 재무장관의 계획에 반발한 2650 미국 시민들은 웹에다 익명으로 대부분 값이 떨어져 휴지조각이 되다시피한 주식을 미국정부가 사라며 매물을 내놓는 해프닝을 벌였다. 사진은 월가 근처 황소상 뒤에서 (구제금융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위자들 ⓒ 블룸버그=연합뉴스


하루에도 수십 건씩 들어오는 미국발 외신은 한마디로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재정이 부족해 학교, 경찰, 소방서 공무원들에게 두 주째 급여조차 지불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주지사인 아놀드 슈왈츠네거가 미국 재무부에 70억 달러 자금지원을 긴급히 요청했다. 캘리포니아주를 한 국가로 가정할 때 세계에서 8번째 경제규모를 가지고 있으니 문자 그대로 세계 8위의 국가가 모라토리움을 선언하고 있는 셈이다.

도대체 자금조달 방법이 없다. 채권을 발행하려고 해도 이를 소화해 줄 수 있는 자본시장이 빙하기처럼 얼어붙었다. 발행한다 하더라도 엄청난 금리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 기업들의 자금줄이 막혀 버린다는 것은 그야말로 '공황'의 문턱을 넘는 것과 다름없다. 금융회사 구제에도 정신이 없었던 미국 정부가 드디어 일반 기업 구제에까지 나섰다. 기업어음(CP)을 직접 매입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그러나 경제 주체들 사이의 철저한 불신을 넘어 정부에 대한 불신까지 확산된 마당에 신용경색은 좀처럼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오랜만에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함께 공조해서 전격적으로 금리인하를 단행했지만, 단순한 유동성 부족을 넘어 거래와 교환이 막혀 버린 난국을 돌파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백약이 무효하고 오직 시간만이 약이라는 소리가 나올 법하다. 그 '시간' 동안 미국 생활인들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금융회사의 파산만 있고 국민의 파산은 없는가

그런데 여전히 금융위기에 대한 대처방안 가운데 실상 최대 피해자라고 할 미국 국민들에 대한 대책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금융회사들의 부실 정도와 생존 가능성 정도를 평가하는 자료들은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실업과 주택 차압 위기에 몰린 미국 국민들의 처지와 앞으로 그들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얘기는 극히 드물다.

지난 9월 20일, 최초로 7000억 달러 구제금융 법안이 발의되었을 때 미국 국민들은 "금융위기 주범인 금융회사만 구제해 주고 정작 피해를 입고 있는 국민들을 위한 구제책이 없다"면서 법안통과를 격렬히 반대했고 지역구 의원들에게 이메일과 전화로 반대투표를 요구했다.

말하자면 피해자의 돈을 뺏어 가해자를 구제해주는 셈이었는데, "월가에서 금융위기를 자초했으니 월가 돈을 모아 구제금융에 쓰라"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 그 결과 겨우 예금자 보호 한도를 확대하고 주택소유자들에게 1490억 달러 세액 공제를 해주는 조항을 법안에 끼워 넣었다. 한편 공적 자금을 투입하는 금융회사에게는 경영진 스톡옵션과 연봉을 제한하고 부실채권 매입 대신 해당 금융회사 주식 매입권을 확보한다는 '상당히 약한' 제재 조항도 삽입했다. 차압 위기에 몰린 주택소유자들의 주택을 정부가 사들이는 등의 직접적인 조치는 아직 없다.

1200만 가구는 집 팔아도 대출 못 갚는다

2006년까지 전 세계 금융자본이 모기지 업체를 통해 미국 국민들에게 풀어버린 대출 금액이 약 11조 달러에 이른다. 특히 모기지 업체들은 이자 상환능력도 없는 사람들에게 주택 구입가격의 거의 100퍼센트에 해당하는 대출을 무차별하게 팔았다. 심지어 금융 최선진국이라고 하는 미국에서 후진국에서도 있을 법하지 않은 저서류(Low doc) 대출이나 아예 무서류(no doc) 대출이 횡행하고, 더 나아가 위장대출(liar doc)에서 이른바 소득도 수입도 자산도 없는 사람에게 대출해 주는 닌자대출(Ninja; no income, no job, no asset)까지 벌어졌을 정도다.

▲ [그림1] 미국 연도별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비율 (* 자료: FRB) ⓒ 새사연


이런 식으로 무분별한 대출이 거침없이 풀려나간 결과, 지난해 말 기준 미국의 가계부채 총액은 13조 8400억 달러로 미국 국내총생산의 백 퍼센트에 달하고 미국 국민 가처분 소득의 136퍼센트에 달하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그 결과 집을 소유하고 있는 7500만 가구 중에서 무려 5000만 가구가 모기지 대출로 집을 샀다. 5000만 가구가 모기지 부실과 주택가격 폭락에 긴장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 가운데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을 받은 가구가 750만 가구, 그리고 현재 한달 이상 이자 연체가 되었거나 차압된 가구가 자그마치 500만 가구를 넘어간다.

그뿐이 아니다. 지난해부터 주택가격이 폭락하면서 이미 1200만 주택소유자는 당장 주택을 팔아도 모기지 대출금을 상환할 금액이 나오지 않는다. 집 팔아도 대출금 못 갚는다는 거고 실상 구매자가 없어 팔리지도 않는다. 지난 2년 간 이 비율이 두 배씩 늘어났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주택가격이 최소 10~20퍼센트 이상 더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1200만을 훨씬 넘는 미국의 가정이 이미 집을 잃어 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를 예고하고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이다.

집 잃고 직장도 잃고

서브프라임 부실과 금융위기로 집을 잃고 거리에 내몰릴 처지가 된 걸로 끝이 아니다. 지난 연말부터 미국경제는 침체상태로 들어가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일자리가 감소하고 있다. 실물경기 침체가 발생한 지 1년 만에 실업자가 무려 216만 명이나 늘어나 현재 공식적인 실업자 신세에 빠진 사람만 940만 명이나 되고 한계 실업자와 임시 취업자를 포함하는 실질 실업률은 이미 10퍼센트를 넘어선 상태다.

그러다 보니 2007년 3월까지만 해도 실업률이 4.4퍼센트이었던 것이 줄곧 상승해서 9월 기준 6.1퍼센트에 달했다. 여기에 소비자 물가까지 상승하기 시작했으니 미국 국민들과 노동자들은 실질소득 정체, 실업률 증가, 물가 상승의 부담 속에 최근 1년을 견디고 있는 것이고 앞으로 더 큰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

차압당한 집에서 쫓겨날 생각을 하며 한숨짓는 미국 서민들,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월가의 금융회사 직원들이 매일 흉흉한 소문에 귀 기울이며 일손을 잡지 못하고 있는 광경들, 이미 일자리를 잃어버려 직장을 구하러 다니는 시민들, 우리가 생각했던 '기회의 땅 미국'의 현실이다.

30년간 저소득층은 소득 1% 증가, 상위 1%는 소득 111% 증가

사실 내면적으로 보면 미국사회의 양극화와 서민들의 생활이 90년대 전성기에조차 그리 화려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금융의 발달로 인한 신용적 가수요 때문에 마치 소비여력이 있고 자산이 많은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있었다는 것이다.

1980년대부터 가속화된 경제의 금융화로 인해 금융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금융회사들이 전통적인 예대마진(스프레드)을 벗어나 고수익 투자로 몰리면서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고용을 늘려 다수 국민들의 소득을 향상시키는 성장은 멈추게 된다. 예금-대출-투자의 선순환 구조가 투기-버블-소비의 취약한 버블경제로 전환된 것이다.

"1980년대 초만 해도 미국 전체 기업의 수익 가운데 10퍼센트에 불과하던 금융부문의 수익은 2000년 기준 40퍼센트로 증가했으며 같은 기간 금융회사의 시가 총액도 6퍼센트에서 19퍼센트로 증가했다. 그러나 고용에서 금융부문의 비중은 5퍼센트에 불과하다"(<이코노미스트>)

이 결과 미국에서도 예외 없이 양극화는 심화되었고 지난 30년 동안 하위 20퍼센트 계층의 실질소득은 사실상 정체된 1퍼센트 성장을 했다. 이에 반해 상위 1퍼센트는 111퍼센트 소득을 늘린다.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가 심화된 결과 미국 중산층은 급격히 붕괴된다. 1970년에 58퍼센트에 달하던 중산층은 2000년에 접어들면 거의 20퍼센트가 줄어든 41퍼센트로 하락한다. 잔인한 것은 이렇게 양극화로 소득이 전혀 늘지 않아 고통스러운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이들이 감당할 수 없는 약탈적인 대출 행위를 자행하여 월가의 금융가를 키워왔다는 것이다.

▲ [그림2] 미국 1979년~2003년 가계 실질소득 증가율 (* 자료: EPI, 2008) ⓒ 새사연


대다수 미국 시민들이 이렇게 저소득에 대출 부담까지 시달릴 동안 금융회사들은 전체 기업 이윤의 1/3을 차지할 만큼 성장을 구가했고, 월가의 최고 펀드매니저들은 고급 주택에 요트를 사서 즐기면서 고급 호텔에서 여가를 즐기고 있었다. 2006년 기준 헤지펀드 매니저들의 상위 25명 평균 보수가 5억 7000만 달러였다. 이들 소득을 다 합치면 자그마치 140억 달러에 달했다. 대부분 미국 국민이 연봉 5000만 원 이하일 때 이들은 웬만한 국내 대기업의 영업이익률을 훨씬 넘는 6000억 원의 연봉을 받았던 것을 생각해 보라.

그런데 이번 서브프라임 대출 부실과 금융위기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이들 초고액 연봉자 펀드 매니저가 아니라 바로 미국의 서민들이었다. 주택 거품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연체, 압류, 가계 파산으로 가장 큰 손실을 입은 계층이 바로 자산과 소득이 부족했던 서브프라임 대출자들이 아니었나? 소득과 고용에 기초하지 않고 부채를 통한 경제성장은 절대 지속될 수 없으며, 거품이 꺼지면 제일 먼저 중하위 소득의 서민이 피해를 본다는 것을 미국의 현실이 지금 보여주고 있다.

국민을 위한 정부는 어디갔나

카지노에도 나름대로 룰이 있고 자연의 정글에도 법칙이 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들어 놓은 금융자본주의라는 정글은 자연의 정글을 초월하는 자본 특유의 과욕과 잔혹함을 보여주면서 미국 시민을 고통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구제'는 이들 미국 시민을 위해 있지 않다. 월가의 대형은행들 구제에만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 것이다.

하긴 한편에서는 너무 당연할 수 있다. 지금 정부의 경제관련 요직을 대부분 월가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으니 이들 눈에 월가의 친구들과 지인들이 무너져가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지 미국 시민이 들어오겠는가. 재무장관 헨리 폴슨도 월가 1위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 출신이고 앞으로 구제금융을 관리하기 위해 신설된 재무부 산하 금융안정국을 지휘하게 된 35살의 닐 캐시카리 역시 전 골드만삭스 이사가 아니던가. 이들과 구제금융 투입계획을 세우게 될 자산운영회사들도 월가 사람들뿐이다.

한마디로 미국 정부는 월가의 정부이지 미국 시민의 정부가 아닌 셈이다. 이들이 과연 이번 금융위기의 뇌관이라고 할 파생상품과 헤지펀드, 투자은행에 규제의 족쇄를 채울 수 있겠는가. 정부관리들과 월가는 부실에 빠진 대형 금융회사들을 먼저 살려야 미국경제를 살릴 수 있다며 '대마불사'를 밀어붙이게 될 것이다.

지금 월가의 금융부실이 차고 넘쳐서 실물경제로 흘러들었고, 미국 국민들은 경제위기의 홍수 속에서 생존을 위해 아우성치고 있다. 미국 국민들만 볼모로 잡았으면 그나마 나으련만, 유럽을 포함한 전세계가 미국발 태풍에 휩쓸려가기 시작했다. 2001년 9·11 테러 직후 국수적 애국주의로 똘똘뭉친 미국인들, 결국은 2003년 이라크 침공을 단행하는 데 찬동했던 미국인들은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 월가와 월가에 유착된 미국 정부에 대해 미국 국민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하긴 우리도 월가에 희생되고 있는 미국 시민을 걱정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환율 폭등과 주가 폭락, 금리 폭등으로 한국의 개미투자자들도 올해 이미 주식 60조 이상, 펀드 40조 이상을 날렸고 자영업과 중소기업은 파산의 끝에서 불안해 하고 있는 실정이 아닌가. 우리 정부 역시 미국정부와 다름없이 대기업과 강남 부유층 감세에만 관심이 있을 뿐 아닌가. 무너져 가는 자영업과 중소기업에 정부가 직접 공적자금을 투입해서라도 살려야 하건만 시중은행들의 자율로 대출을 완화하라는 독촉만 하고 있는 형편이다.

연일 치솟는 환율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업체가 채산성이 맞지 않아 수입을 포기하는 사례가 잇따른다는 보도가 있었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금융위기와 환율폭등이 저지해주고 있는 이 현실이 그나마 반갑다고 말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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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새사연,http://www.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새사연 연구센터가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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