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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의 끝, 그곳엔 뭐가 있을까

무등산 억새 산행

등록|2008.10.12 10:25 수정|2008.10.12 10:25

▲ 무등산 누에봉 일출과 억새 ⓒ 류홍렬


▲ 무등산 누에봉 일출과 억새 ⓒ 류홍렬


그 사진을 본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흔들거리는 억새의 끝에서 타오르는 구름, 그 구름을 헤치고 솟구치는 태양, 점점 커지던 태양은 무등의 하늘을 붉게 태우고 있었다. 억새들 사이로 내려온 우주도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내 마음에 움츠려있던 산에 대한 그리움이 타오르고 있었다.

10월 11일(토) 오전 10시, 전교조 광주지부에서 주최한 '무등산 생태 산행'에 70여명의 조합원과 가족들이 참여하여 무등산 원효사 입구에서 출발하였다. 억새의 군락으로 유명해진 무등산 중봉과 군부대 복원터를 거쳐, 금년에 개방되어 사람들이 즐겨 찾는 신선바위와 누에봉에 이르는 코스였다.

원효사 입구에 조경으로 심어진 나무들이 유난히 붉게 물들어 가을 분위기를 한껏 띄우고 있다. 그 붉은 나뭇잎 너머 무등의 끝이 보이고, 그 무등의 끝 위로 푸른 하늘이 내려다보고 있다. 가을에 산을 찾는 즐거움이 출발하는 발걸음을 들뜨게 하고 있는 것이다. 

가을을 노래하듯 하늘은 그대로 투명한 거울이었다. 간혹 흘러가는 구름 줄기는 더욱 선명한 흰색으로 아로새겨지며 청명을 노래하고 있다. 무등에 오르다보면 뿌연 매연으로 가려지고, 구름으로 가려져 무등의 모습도 흐릿하고, 시내의 모습도 흐릿한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모든 매연이 바람에 씻겨 갔는지 서석대의 끝까지 선명하게 드러나며 가을 하늘의 멋을 충분히 뽐내고 있었다.

▲ 무등산 억새 ⓒ 서종규


▲ 무등산 서석대와 억새 ⓒ 서종규


▲ 무등산 억새 ⓒ 서종규


길에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산길을 따라 올라갔다. 아직 대부분의 나뭇잎들은 녹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만, 가을을 이기지 못한 몇몇 나뭇잎들은 그대로 길까지 내려와 오르는 발길에 가을의 내음을 묻히고 있는 것이다. 그대로 멈추어 버릴 것 같았던 여름의 무더위를 온몸으로 몰아내며 낙엽은 하나 둘 씩 그대로 가을을 깔고 있는 것이다.

길가에는 가을에 피는 보랏빛 쑥부쟁이들이 점점이 눈망울을 깜박거리고 있다. 코스모스보다 훨씬 많은 꽃잎들이 가지런하게 둘러져 있는 쑥부쟁이꽃은 무더기져 피어 있다. 한 아름 꺾어다 가슴 가득 보듬어보고 싶은 충동이 일기도 하지만, 쑥부쟁이꽃은 내 발길 지나간 자리 그대로 점으로 남아 내 뒤를 따르고 있다. 

산 위로 오르면 오를수록 탐스럽게 다가오는 꽃이 구절초이다. 보통 들국화라고 불리는 가을 꽃으로 쑥부쟁이, 감국, 구절초가 있는데, 그 중에서 구절초가 마음에 끌린다. 바위틈으로 하얗게 고개를 내밀고 있는 구절초꽃을 보면 내 마음도 어느새 하얀 색으로 변하여 있는 느낌이다. 그만큼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순백의 순수이다.

▲ 무등산 억새 ⓒ 서종규


▲ 무등산 중봉과 억새 ⓒ 서종규


12시, 무등산 억새의 군락지에 도착했다. 무등산에 억새의 군락지는 천황봉을 중심으로 약 900m의 지점에 빙 둘러 펼쳐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봉에 오르는 길은 온통 억새의 천국이다. 그리고 중봉 옆은 옛날에 군부대가 있던 자리였는데, 지금은 자연 복원이 되어서 억새의 군락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 줄기를 따라 죽 이어진 억새의 군락은 입석대 아래에서 부터 장불재 전체를 하얗게 출렁이게 한다. 장불재에서 백마능선을 타고 안양산까지 이르는 능선도 백마처럼 하얗게 억새가 출렁인다. 무등은 가을이면 억새의 천국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

우리가 찾은 중봉 아래 억새의 군락은 기대 그대로이다. 해마다 억새를 찾아 이곳에 올랐지만 늘 그대로 우리들을 맞고 있는 것이다. 군락지를 관통하는 길이며, 능선 양쪽에서 바람을 따라 소용돌이치는 억새의 향연은 우리들을 그대로 억새가 되게 한다.

하얀 억새도 햇살을 받는 각도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그 중에서 햇살을 정면으로 맞아 빛을 발하는 억새가 가장 환상적이다. 투명하게 밝은 억새꽃이 손을 뻗어 흔들어 대고 있는 모습은 보기만 하여도 온몸에서 전기가 흐른다. 하얗게 눈부신 억새꽃의 물결은 그대로 환상인 것이다.

산 능선을 두고 양옆 비탈을 타고 흐르는 억새의 물결, 바람을 따라 아래로 흔들거리다가 위로 솟구치는 억새의 숨결, 눈을 따라 억새의 끝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파란 하늘을 간질이고 있는 내 마음이다. 가을 산에서 만나는 억새는 그대로 내 마음 밭에서 하얗게 출렁이고 있는 것이다. 

▲ 무등산 신선바위와 억새 ⓒ 서종규


▲ 무등산 천황봉과 억새 ⓒ 서종규


최근 무등산 서석대와 입석대의 주상절리대가 천연기념물이 되면서 보호하기 위하여 시설을 정비하고 있다. 따라서 서석대와 입석대에 이르는 길은 통제되어 그 대체 등산로로 신선바위와 누에봉이 개방되었다.

사람들이 비교적 많이 찾는 곳이 신선바위이다. 신선바위까지 출입이 되고, 그 위는 군부대로 통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선바위가 무등산 천황봉에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지점인 것이다.

오후 1시에 오른 신선바위도 무등 특유의 거대 암석이 우뚝 서 있는 형상이다. 주위에도 역시 하얀 억새의 물결이 출렁거리고, 바위틈에 자라고 있는 나무들은 벌써 붉게 단장을 마쳤다. 무등산 천황봉 아래는 이제 나뭇잎들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여 산 아래로 걸어갈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멀리서 보면 누에의 머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천왕봉 아래 북쪽에 있는 봉우리를 누에봉이라고 하는데, 호남정맥 산행을 하는 사람들은 무등산 북봉이라고 하여 반드시 지나가는 코스이다. 바로 무등의 북쪽이 한 눈에 들어오는 지점이기도 하다. 담양과 곡성의 많은 산들 사이에 노란 황금빛 물결이 그대로 깔려 있다. 그래서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새벽부터 누에봉에 올라 사진을 찍곤 하는가 보다.

▲ 무등산 억새 ⓒ 서종규


덧붙이는 글 첫번째 사진을 찍은 류홍렬씨는 광주 전남여상 교사이면서 사진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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