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이 '산맥'이 되어버린 서글픈 우리 산하
산은 항상 거기 있을 거라 믿으며...
백두대간의 끝자락 지리산. 그 지리산의 초입에 들어선 만복대. 만복대는 지리산의 다른 봉우리 비해 높지는 않지만 주변의 다른 산에 비하면 그래도 1438m에 이르는 낮지 않는 봉우리이다.
정령치에 차를 세우고 만복대에 오르려하니 염치없이 백두대간의 끝자락에 끼어들기를 한 기분이다. 아직은 가을 단풍도 수줍어 있다. 산에 오르는 길목마다 곧 타오를 가을단풍은 징표만을 찍어두고 살랑거린 작은 바람에도 온 몸을 떤다.
여기가 백두대간의 끝자락이며 그 끝자락의 초입인 정령치. 눈에 거스를 만큼 넓은 주차장과 휴게소의 모습이 산에 미안함을 들게 한다. 만복대에 오르기 위해 정령치를 출발한 지 20여 분. 한 해에도 몇 번씩 오르면서도 그냥 지나쳤던 등산로 옆에 사슴을 닮은 나무가 무거운 뿔을 달고 고개 숙이고 있다. 자연이 만들어낸 오묘한 모습을 바라보며 노천명 시인이 슬퍼한 '사슴'이란 시가 학창시절을 돌이켜보게 한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먼데 산을 바라본다.
시인의 시감이 마음을 파고 있을 즈음 발길은 만복대 정상을 향해 쉬엄쉬엄 7부 능선을 오르고 있다. 출발 지점에서 1km쯤 지나자 작은 봉우리가 눈 아래 들어오고, 확 트인 가을 하늘은 뭉게구름조차 미안할 만큼 청명하다.
지리산은 이래서 좋다. 어느 곳이나 오르면 포근한 마음으로 감싸준다. 그래서일까? 우린 지리산을 어머니 산이라 한다. 어머니 산이 눈이 시리도록 맑은 태양빛에 모습을 드러냄은 가을산만이 줄 수 있는 아쉬움과 아름다움의 해택일지도 모른다.
설익은 단풍과 어우러진 지리산 줄기들은 능선을 따라가는 눈길을 멀리 보내게 하고, 군락을 이루며 시들어 가는 정상의 억새풀은 하얀 꽃잎을 날리며 벌써부터 긴긴 겨울을 준비한다.
더듬거리며 오르길 2km. 어느새 만복대 정상이다. 가져온 김밥을 나누어 먹고 잠시 시간을 빌어 백두대간을 마음에 담기로 한다.
원래 우리 선조들은 '산맥'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1904년에 정치지리학을 전공한 일본인 야쓰쇼에이가 한국지리를 펴냈고, 그 책에서 사용한 산맥이라는 용어가 1905년 조선이 통감부체제로 들어가면서 교과서 내용에 산맥이란 용어가 그대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산맥이란 용어는 지질개념으로 지리를 연구한 한 개인의 연구결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도 산맥이란 용어를 쓰면서 고치려 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백두대간은 단지 명칭상의 문제만은 아니다. 백두대간은 지형의 개념이지만, 산맥은 지질의 개념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불행히도 오늘날까지 교과서에서조차도 산맥을 지형의 개념으로 써오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대간과 정맥이란 말은 1906년 '최신고등대한지지'를 집필한 정연호가 '산경표'나 '대동여지도'를 언급하며 사용하려했지만 일제에 의해 금서가 된다.
대한민국을 하나의 산줄기로 연결한 대간과 정맥의 개념을 금지하고, 일본은 그들이 식민통치하기에 편하도록 체제를 바꾸면서 산맥개념을 도입해 우리 땅의 지형을 여러 갈래로 갈라놓는다. 그리하여 우리의 역사와 정신은 그들에 의해 난도질당하고 훼절되면서 백두대간의 개념은 산맥으로 변질되고, 우리의 대간 대신 일본인들이 지은 태백, 소백, 함경, 마천령, 노령 등의 산맥의 이름으로 탈바꿈한다.
우리의 왜곡된 지난 역사만큼이나 훼절된 우리의 백두대간은, 원래 조선조 영조 때 실학자였던 여암 신경준(1712-1781)이 쓴 "산경표"라는 책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이 책에 의하면, 우리나라 산줄기에는 1대간, 1정간, 13정맥의 이음으로 이어져 있어서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강은 산을 뚫지 못한다"는 백두대간의 거리개념도 여기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슬픈 역사를 망각해 버린 듯, 대간과 정맥이란 말이 지금까지도 익숙하지 않음을 고백할 수밖에.
백두대간의 아픔이 마음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해거름이 내려감을 재촉한다. 오르는 산행의 즐거움을 마음에 담아두고, 하산의 기쁨을 배가시키기 위해 오늘 하루가 가장 의미 있었던 산행이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해본다. 산은 항상 거기 있을 거라 믿으며.
▲ 지리산 초입백두대간의 끝자락. 그리고 그 끝자락의 초입 정령치 ⓒ 윤병하
정령치에 차를 세우고 만복대에 오르려하니 염치없이 백두대간의 끝자락에 끼어들기를 한 기분이다. 아직은 가을 단풍도 수줍어 있다. 산에 오르는 길목마다 곧 타오를 가을단풍은 징표만을 찍어두고 살랑거린 작은 바람에도 온 몸을 떤다.
▲ 자연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자연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 윤병하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먼데 산을 바라본다.
시인의 시감이 마음을 파고 있을 즈음 발길은 만복대 정상을 향해 쉬엄쉬엄 7부 능선을 오르고 있다. 출발 지점에서 1km쯤 지나자 작은 봉우리가 눈 아래 들어오고, 확 트인 가을 하늘은 뭉게구름조차 미안할 만큼 청명하다.
▲ 만복대 주변 전경파란 하늘아래 펼쳐진 만복대의 가을단풍은 아직은 수줍음을 머금고 있다 ⓒ 윤병하
▲ 만복대의 주변 전경뒤 걸음에 반야봉이 만복대를 앉아주고, 만복대의 억새풀은 작은 바람에도 먼저 수그러든다. ⓒ 윤병하
지리산은 이래서 좋다. 어느 곳이나 오르면 포근한 마음으로 감싸준다. 그래서일까? 우린 지리산을 어머니 산이라 한다. 어머니 산이 눈이 시리도록 맑은 태양빛에 모습을 드러냄은 가을산만이 줄 수 있는 아쉬움과 아름다움의 해택일지도 모른다.
▲ 만복대 억새풀세월의 빠름일까? 프르게 뻗어나오던 만복대의 억새풀은 어느새 겨울 준비에 한창이다. ⓒ 윤병하
설익은 단풍과 어우러진 지리산 줄기들은 능선을 따라가는 눈길을 멀리 보내게 하고, 군락을 이루며 시들어 가는 정상의 억새풀은 하얀 꽃잎을 날리며 벌써부터 긴긴 겨울을 준비한다.
▲ 만복대 정상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능선들이 이곳이 정녕 어머니의 산 지리산의 초입임을 알린다. ⓒ 윤병하
더듬거리며 오르길 2km. 어느새 만복대 정상이다. 가져온 김밥을 나누어 먹고 잠시 시간을 빌어 백두대간을 마음에 담기로 한다.
원래 우리 선조들은 '산맥'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1904년에 정치지리학을 전공한 일본인 야쓰쇼에이가 한국지리를 펴냈고, 그 책에서 사용한 산맥이라는 용어가 1905년 조선이 통감부체제로 들어가면서 교과서 내용에 산맥이란 용어가 그대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산맥이란 용어는 지질개념으로 지리를 연구한 한 개인의 연구결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도 산맥이란 용어를 쓰면서 고치려 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백두대간은 단지 명칭상의 문제만은 아니다. 백두대간은 지형의 개념이지만, 산맥은 지질의 개념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불행히도 오늘날까지 교과서에서조차도 산맥을 지형의 개념으로 써오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대간과 정맥이란 말은 1906년 '최신고등대한지지'를 집필한 정연호가 '산경표'나 '대동여지도'를 언급하며 사용하려했지만 일제에 의해 금서가 된다.
대한민국을 하나의 산줄기로 연결한 대간과 정맥의 개념을 금지하고, 일본은 그들이 식민통치하기에 편하도록 체제를 바꾸면서 산맥개념을 도입해 우리 땅의 지형을 여러 갈래로 갈라놓는다. 그리하여 우리의 역사와 정신은 그들에 의해 난도질당하고 훼절되면서 백두대간의 개념은 산맥으로 변질되고, 우리의 대간 대신 일본인들이 지은 태백, 소백, 함경, 마천령, 노령 등의 산맥의 이름으로 탈바꿈한다.
우리의 왜곡된 지난 역사만큼이나 훼절된 우리의 백두대간은, 원래 조선조 영조 때 실학자였던 여암 신경준(1712-1781)이 쓴 "산경표"라는 책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이 책에 의하면, 우리나라 산줄기에는 1대간, 1정간, 13정맥의 이음으로 이어져 있어서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강은 산을 뚫지 못한다"는 백두대간의 거리개념도 여기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슬픈 역사를 망각해 버린 듯, 대간과 정맥이란 말이 지금까지도 익숙하지 않음을 고백할 수밖에.
백두대간의 아픔이 마음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해거름이 내려감을 재촉한다. 오르는 산행의 즐거움을 마음에 담아두고, 하산의 기쁨을 배가시키기 위해 오늘 하루가 가장 의미 있었던 산행이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해본다. 산은 항상 거기 있을 거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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