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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따라 골라 먹는 두편의 음식소설

[일본소설 맛보기 19] <이트 & 러브>와 <먹는 여자>

등록|2008.10.12 13:48 수정|2008.10.12 13:48
일본소설을 읽다보면 인물들이 뭘 먹고 뭘 마셨는지 참 자세히도 나열했다 싶은 구절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있다. '바닐라 시럽이 첨가된 아침커피와 함께 버터를 바른 토스트 반조각, 파인애플 두 조각을 먹은 뒤 향기로운 길고 가느다란 담배 두 대를 피웠다'라는 식이다.

무슨 상관일까 싶었다. 그러나 소설속에 등장하는 요리와 요리의 형태, 또 그것을 누구와 언제 어떤 분위기에서 먹느냐 하는 문제는 그 인물을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하다못해 빵 한조각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서도 인물의 성격이나 취향 등을 대충 유추할 수 있다. 그만큼 소설속에서 음식은 그 인물을 이해하는 키워드의 하나가 될 수 있다.

가령 밥,국,나물로 이루어진 정식을 삼시 세끼 제대로 잘 챙겨먹는 사람과 간단한 빵이나 편의점의 삼각 김밥 등으로 때우는 사람과는 생활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또 누구와 함께 음식을 먹느냐도 음식의 메뉴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건이다. 부모, 자녀와 함께 사는 가족들의 주부에게 요리는 거추장스러우면서도 즐거운 것이지만 혼자사는 젊은 미혼이나 독신의 경우에게 삼시세끼는 즐거우면서도 거추장스럽다.

깔끔하고 가벼운 맛, 디저트같은 <Eat & Love>

▲ 요코모리 리카의 소설 <Eat & Love> ⓒ 랜덤하우스

요코모리 리카의 <Eat & love>(이하 이트 앤 러브)는 식욕과 성욕간의 오묘하고 깊은 상관관계에 대한 짧은 소설 6편을 모아놓은 소설집이다.

36세의 카피라이터 '노자키 신이치로'라는 남성을 비롯해 그를 둘러싼 여성들의 이야기가 각각 1인칭의 독백으로 이루어져있다. 항상 여성의 사랑을 갈구하는 바람둥이 노자키 신이치로와 그와 사랑을 나눈 여성들의 이야기가 감각적이면서도 쿨하게 그려져있다.

언제나 진실한 사랑을 원하지만 그것을 찾지못한 마음이 공허한 신이치로는 늘상 맛있고 진귀한 음식을 찾아다닌다. 그와 한때나마 연인이었던 가난한 여인들은 신이치로에게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자 자신만의 추억이 깃든 소박한 음식을 먹으면서 상처를 치유한다.

재력과 미모를 겸한 여성 요리비평가 '미라이'는 신이치로를 유혹하는 자리에서 온갖 희귀한 음식과 요리를 내어놓으며 자신의 부와 재력을 은연중에 과시한다. 그녀에게 음식은 권력이자 파워다.

미라이와 별거중인 남편 '게이치'는 재력도 있고 매력있고 매너도 겸비한 소유자. 세상의 온갖 음식을 다 향유하는 그이지만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밥, 된장국, 절임채소가 제대로 잘 갖춰진 전통적인 식사다. 그러나 그의 어린 애인 '미오짱'은 그의 그런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식사법에 한때 매료되었다가 끝내는 적응하지 못하고 그의 곁을 떠난다.

20대 초반부터 40대 후반까지 각 연령층이 가지고 있는 사랑과 식욕의 관계를 감각적으로 잘 포착했다.

사실 성욕과 식욕과의 은밀한 상관관계는 영화 <달콥쌉싸름한 초콜릿>과 같은 영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매우 직접적이고 원초적이고 게다가 본능적이다. 성욕과 식욕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면 관능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의 본능을 치유하고 감싸안는 힘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힘'을 기대하고 바라보기에 이 소설은 약간 싱겁다. 그런 무거운 주제를 다루기에 이 소설은 너무 경쾌하고 너무 가볍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이야기가 진지하고 무거운 사랑이야기가 아닌 만큼 식욕과 성욕과의 밀도는 굉장히 묽다는 느낌이다. 성욕과 식욕의 연결고리가 조금은 헐겁다는 느낌이다.

삶의 허기를 든든하게 채워주는 메인디쉬같은 <먹는여자>

▲ 쯔즈이 토모미의 소설 <먹는 여자> ⓒ 도서출판 이룸


<이트 앤 러브>를 읽고 조금은 허전하고 배가 고프다면 쯔즈이 토모미의 소설 <먹는 여자>로 그 허전함을 너끈히 채울 수 있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보았던 이 소설은 성욕과 식욕의 관계를 다루었다기보다는 우리 삶에서 '먹는 것'의 의미를 담아낸 소설이라고 할 수있다.

아빠의 재혼사실을 알고 엄마와 함께 간 피크닉에서 처음으로 마셔본 와인 맛,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여동창이 서로 불행했던 과거를 털어놓고 서로 위로를 주고받으며 먹는 스파게티의 맛, 실연 후 사랑의 따듯함을 새삼 느끼게 해준 한 레스토랑 주방장의 음식, 산전수전을 겪은 중년의 여인 세 명이서 마사지를 받으며 나누는 티타임….

짧은 단편 18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파란만장한 한편의 드라마속 주인공이기도 하고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보통사람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속살을 조금만 들춰보면 누구나 그러하듯 약간의 생채기를 지니고 있다. 움푹움푹 파인 삶의 생채기에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나는 음식이 견고하게 딱 붙어 삶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그런 소설을 읽을 때마다 참 행복하다. 아울러 그 소설속에 등장하는 음식을 꼭 한번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꼭 음식자체가 맛있어 보여서라기보다는 왠지 그 음식을 먹으면 나도 행복해질 것 같다는 착각 때문이다. 그렇게 삶의 허기를 조금이라도 메울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삶의 허기는 음식을 나누는 사람과의 진실한 교감, 따뜻한 눈빛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소설집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가볍게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뒷맛만큼은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다. 감각적이고 경쾌한 맛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이트 앤 러브>를, 씹을수록 우러나오는 깊은 맛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먹는 여자>를 추천하고 싶다.

지금, 당신이 즐기고 싶은 맛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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