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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때려달라고, 엄마도 부탁할 거야?"

체벌은 필요하다던 엄마, 생각을 고쳐 먹다

등록|2008.10.17 09:26 수정|2008.10.17 09:26
"체벌동의서? 그럼 엄마들이 우릴 때려달라고 선생님한테 아예 부탁하는 거야?"

울산 한 중학교의 '체벌동의서'에 대한 뉴스를 함께 보던 중1 딸이 불쑥 한마디 한다. 반항과 실망이 다분히 묻어있다.

"아무렴 이유 없이 내 새끼 때려달라고 부탁하는 엄마가 있겠니? 딸! 흥분하지 말고 뉴스 좀 더 봐라! 그래야 논술에 도움 된다. 저것 좀 봐. 상습적으로 문제아가 애들을 때렸다고 하잖니. 네가 누구한테 계속 맞는데, 선생님도 그 애를 어떻게 혼낼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해 봐. 그럼 넌 어떤 심정이겠어? 너네 학교에는 저런 애들 없니? 딸! 너네 학교도 저런 거 돌리면 엄마는 적극 찬성이다. 말들을 좀 안 들어 먹어야지(씽긋!) 너도 엄마 말 죽으라고 안 듣잖아. 엄마 너한테 1년째 잔소리하는 것도 수두룩하잖아. 오죽했으면 저런 것까지 돌리겠어?"

올 봄, 거칠고 이기적인 아이로 소문난 아이를 주동하여 왕따 시켰던 딸은 나중에 그 아이의 주동으로 서러운 왕따를 당했다. 친구들의 배신과 왕따가 얼마나 쓰라렸던지 울며불며 전학을 보내달라고 며칠 동안 하소연할 만큼 딸은 큰 상처를 입었다.

"하기야 뭐. 아무리 말해도 안 듣는 애들이 꼭 있다니까! 우리들이 보기에도 이해 안 되는 애들이 있긴 있지. 그런 애들은 반성문 쓰라고 해도 절대 안 쓰죠. 청소하라고 해도 감쪽같이 도망치고 말죠. 선생님 꿈을 접길 정말 잘 했다니까요. 난 그런 애들 이길 자신 없어…도무지 방법이 없다니까요. 그런데, 그래도…아무리 그래도 '체벌동의서'는 기분 나빠. 엄마도 우리 학교에서 체벌동의서를 돌리면 찬성할 거야? 엄만 뭐 당연히 찬성하시겠지."

체벌 찬성론자였던 나, 체벌동의서는 찬성 못하겠다

사랑의 매가 아닌 사망의 매. 웃음을 자아 내게 한다.사랑의 매가 아닌 사망의 매. 웃음을 자아 내게 한다. ⓒ 문필성


난 체벌을 그다지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매 한 번 때리지 않고 아이들을 키운다"는 엄마들의 말에 공감하지 않았다. 매를 습관처럼 때리거나 남용해서는 안 되지만 꼭 필요한 경우에는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회초리를 들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경우에 따라 선생님도 체벌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던 터다.

그러니 아이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난 정말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예를 들면 부모 돈에 손댄다거나 거짓말을 되풀이 한다거나-는 위기감에 그 동안 모진 매질을 여러 번 했던 엄마다. 하지만 울산 어느 중학교의 체벌동의서는 그동안 나의 이런 생각들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학부모 참관 수업 등으로 학교에 가보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아이들이 많다. 집에서 10여분 거리에 중·고등학교가 있다보니 다른 엄마들보다 훨씬 자주 눈에 거슬리는 아이들을 보게 되기도 한다. 그 뿐 아니다. 대문만 나서면 있는 놀이터에는 인근의 아이들이 수시로  몰려와 담배를 피우거나 애정행각도 서슴없이 한다. 내 기준에 본다면 회초리감들이다.

놀이터에 몰려와있는 아이들에게 어디에 사는지 등을 물을라 치면 더러는 무서울 때도 있다. 누구의 말대로 요즘 애들 참 무섭다. 그러니 선생님들의 어느 정도의 체벌도 필요하다고 여기던 터다.

그러던 나도 울산 어느 중학교의 체벌동의서에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아이들만 다니는 곳이 학교이고, 그런 아이들만 가르치고 지도하는 것이 선생님일까? 직장의 힘든 일을 직장인들이 스스로 이겨내듯, 교사는 말 안 듣는 아이들을 어떻게든 넘어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런데 체벌동의서는 교사로서 당연히 넘어야 하는 그 산을 넘기 위해 어려움도 감수하지 않겠다는 것쯤으로도 보였다. 문제가 있는 아이를 어떻게든 바로 잡으려는 대안을 찾기보다는 체벌을 정당화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학교 측에서는 체벌동의서를 만든 것이 학부모 운영위원회의 자발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100% 동의를 얻지 못한 만큼 실제 체벌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그런데 체벌동의서를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혹시 물어 본적이나 있으신지?

학교에서 돌아온 내 아이들에게 각각 따로 물었봤다. 학교에서 체벌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학교에서 부모님 동의를 구하는 체벌동의서를 발송한다면, 이 엄마 역시 찬성한다면 너희들은 어떻게 할 것인지.

아들(고1) "우리 학교는 거의 때리지 않고 대신 교무실 앞에 책상을 옮겨다놓고 수업대신 반성문을 쓰게 하거나 자습하게 해요. 맞으면 좀 지나면 아프지 않아 잘못을 잊고 말지만, 이렇게 벌 받은 애들은 친구들하고 따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친구들하고 어울리지 못한다는 사실 자체가 더 괴로워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음에는 친구들하고 어울리기 위해서라도 다른 친구에게 방해되지 않게 조심하게 된다는데? 엄마가 체벌동의서에 동의하면, 뭐 맞을 짓을 안 하면 되지만 그래도 왠지 감옥에 갇힌 느낌이 들 것 같아요."

딸(중1) "처음에는 매가 무섭지만 자꾸 맞다보면 신경도 안 쓰인다고 애들이 그러던데? 나도 엄마한테 맞았을 때 처음에는 아팠는데 이삼일 지나고 나니까 하나도 안 아프고 잘못했다는 것도 함께 잊고 말던데. 어떤 애들은 힘들게 하느니 그냥 맞는 것이 편하다고 말하기도 해. 체벌동의서는 말 잘 듣는 애들까지 선생님이나 엄마들이 언젠가는 맞을 짓 하는 애들로 아예 처음부터 생각해 버리는 것 같아 기분 나빠요. 엄마가 찬성하면 어쩔 수 없지만, 체벌동의서가 학교에 있는 한 맞지 않으려고 애들이 그거 피하려고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

그래도 체벌동의서가 내게 온다면?

아이와 체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유난히 말썽이 많아 한 번에 20대도 넘는 매를 2차례나 맞았던 딸의 말은 내게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믿고 믿어도 아이는 거짓말을 반복했고 나의 인내를 시험하기라도 하는 듯 나의 믿음을 이용해 또 다른 잘못을 저질렀다. 제대로 된 길이 아니라고 여러 번 타이르고 설득해도 끄떡하지도 않았다. 아니 되려 사사건건 말꼬리를 잡고 반항을 했다. 아이에게 말이 더 이상 먹히지 않는 순간 난 매를 들었었다. 그리고 그때는 그 매가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매질이 잘못됐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를 위해 때린다고 했지만, 그 매질에 아이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다분하게 실렸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랬다.나의 매질은 어쩔 수 없는 최선의 선택이 아닌, 내 무능력의 발로였던 것을.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선생님들이 선택할 매질에 무책임하게 눈을 감아버리는 체벌 동의서에는 동의하지 않으련다.

그리고 참 궁금하다. 체벌동의서에 동의한 90%의 학부모 중 마음으로 기꺼이 동의한 부모가 과연 얼마나 되는지 말이다. 막상 내 자식이 체벌을 받는다면 속상하거나 어떤 불만을 갖지 않고 100% 수긍할 수 있는 부모가 얼마나 되는지.

난, 아이 때려놓고 밤새 끙끙 앓는 그런 평범한 엄마다. 자신이 없다. 내가 때리는 매와 선생님이 때리는 매를 같은 성질로 받아들일 자신이 없다. 내 아이가 선생님께 맞고 왔을 때  "너를 위한 사랑의 매"라고 언제나 자신 있게 판단하여 말해줄 수도 없다.

그래도 만약 내 아이 학교에서도 '체벌동의서'를 보내온다면? 어떤 경우든 체벌시 교사 개인의 감정을 담지 않겠다는, 체벌동의서를 교사의 교권을 세우는 도구로 쓰지 않겠다는 다짐이 담긴 일종의 '교사 다짐서'도 같이 요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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