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없애야 말 된다 (117) 현상적
― ‘현상적으로 조금 다름만을 보며’ 다듬기
.. 인류 문명사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대부분 같음을 보지 못하고 현상적으로 조금 다름만을 보며 달려 온 점입니다 .. 《도법-그물코 인생, 그물코 사랑》(불광출판사,2008) 55쪽
‘근본적(根本的)으로’는 ‘밑바탕이’나 ‘뿌리가’로 다듬고, ‘대부분(大部分)’은 ‘거의 모두’로 다듬습니다. ‘점(點)’은 ‘대목’으로 손봅니다.
├ 현상(現狀) : 나타나 보이는 현재의 상태
│ - 현상을 극복하려는 의지 / 현상을 파악하다 / 현상에 집착하다 /
│ 지금 같은 불경기에는 현상을 유지하는 것만도 힘이 든다
│
├ 현상적으로
│→ 겉으로
│→ 겉보기로
│→ 겉핡기로
│→ 겉스쳐서
└ …
국어사전 풀이를 생각하고, ‘현상적’ 이라는 말씨가 들어가는 자리를 돌아보면, “눈앞에 보이는 모습”이라는 뜻으로 쓰이곤 합니다. 보기글에서는 ‘근본적’과 ‘현상적’ 두 가지가 서로 맞서면서 이야기를 엮어나가게 됩니다. ‘근본적’은 ‘깊이 살피는 눈’을 말한다면, ‘현상적’은 ‘겉만 스치는 눈’을 말합니다. ‘근본적’이 ‘속보기’라면, ‘현상적’은 ‘겉보기’입니다.
┌ 현상을 극복하려는 의지 → 지금을 이겨내려는 마음가짐
├ 현상을 파악하다 → 지금 어떠한지 헤아리다
├ 현상에 집착하다 → 겉모습에 매달리다
└ 현상을 유지하는 것만도 → 제자리걸음을 하기에도
문득, 우리들은 속보기를 못하고 겉보기만 하면서, 때로는 겉보기조차 못하면서 살아가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훌륭한 말씀을 베풀려고 하는 분들이 쓰는 글을 보면, 뜻은 훌륭할지 모르나 뜻을 담는 말은 조금도 안 훌륭하곤 한데, 이분들조차 좀더 지긋이 들여다보는 속보기를 못했기 때문이구나 싶어요.
훌륭한 뜻은, 이 뜻을 깨우친 사람만 품고 있는다면 너무 아쉽고 안타깝잖아요. 그러니 글도 쓰고 말도 하면서 자기가 얻은 훌륭함을 나누려고 할 텐데, 나누려는 마음은 좋으나 마음만 앞서면서 ‘나눔을 받을 사람들 눈길과 눈높이’를 읽어내지 못하고 자기 말그릇에 따라서 이야기를 펼치면 어찌 되겠습니까. 세상사람은 아직 모르는 이야기를, 세상사람이 손쉽게 받아들이거나 헤아릴 만한 말씨로 풀어내지 못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뜻은 하나도 어렵지 않으나 말은 대단히 어려워서 선뜻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면 어찌 되겠습니까.
┌ 속보기 / 겉보기
├ 속살 보기 / 껍데기 보기
├ 속살 맛보기 / 껍데기 핥기
└ …
‘-적’붙이 말씨를 쓰는 까닭은, 자기 나름대로 자기 생각을 풀어내려고 하는데, 자기가 알고 있는 낱말, 또는 자기가 그동안 배운 낱말, 또는 여태껏 세상에서 두루 쓰여 온 낱말로는 모자라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모자라거나 아쉬우니 새말을 빚어내고 새 말투를 엮습니다. 이때 마음을 넉넉하게 기울여 주면,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한테 알맞고 수월한 낱말과 말투를 얻습니다. 이때 마음을 넉넉하게 기울이지 못하면, 어설피 ‘-적’붙이 말씨나 ‘-의’붙이 말씨가 튀어나옵니다.
“현상을 보는 무엇인가”를 나타내려고 하다 보면, ‘현상 + 적’ 말씨가 태어납니다. “껍데기가 겉만 핥는 무엇인가”를 나타내려고 하다 보면, ‘겉보기-겉핥기’ 낱말이 태어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생각하면서 가꾸어 나가면, 우리 말은 살찌고 북돋우게 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에 생각할 짬이 없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 우리 말은 벼랑에서 굴러떨어지며 조각조각 부서지고 찢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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