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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쇼핑에서 덜컥 산 7200만원짜리 상품

[온달아빠의 재무이야기 7] 파는 사람은 상품의 이점만을 말한다

등록|2008.10.16 12:10 수정|2008.10.16 12:10
총각인 김상현(32)씨 역시 직장생활 5년 동안 별로 모은 게 없는 고객이다. 순자산을 계산해 보니 1500만원이다. 원금만으로 치면 1년에 300만 원씩 모은 셈이니, 월로 치면 25만 원씩 저축한 것이다. 종자돈을 열심히 모아야 할 시기에 딴생각을 한 것이다.

게다가 김씨는 부모 집에서 살고 있다. 보통 서울에서 미혼이 주거를 해결하려면 적어도 월 30만원은 든다. 식비까지 생각하면 그보다 훨씬 많이 든다. 그래서 미혼 때 저축률이 높은 사람들을 보면, 주거를 김씨처럼 부모 집이나 회사 기숙사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소득대비 60%까지 되는 사람들도 있다.

김씨 역시 저축을 많이 하지 못한 건 유흥비 때문이었다. 모르는 바는 아니었겠지만, 수치로 정확히 계산해 보니 스스로 생각해도 쑥스러운 모양이다. 자신의 재무 상태를 부모가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김씨는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버지가 아시면 큰일 납니다.”

말하는 걸로 봐서는 어머니는 알고 있다는 뜻이다. 알고 보니 아버지는 직장이 지방에 있어 주말부부를 한다고 한다. 그래도 재무상담을 받을 생각을 했다는 것은 지난날의 생활을 반성하고 열심히 돈을 모으겠다는 각오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김씨는 약 6개월 전부터 저축액을 꽤 늘려왔다. 그런데 지나치게 늘리다 보니 자신의 소득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일부 적립식 펀드는 한때 어머니가 대납해 주기도 했다. 그렇게 의욕을 부려 가입한 상품들 중 하나가 장기주택마련보험 상품이다.  

월 30만원씩 20년 동안 납입하는 상품이다. 미혼인 김씨에게 가장 필요한 건 결혼자금을 모으는 것인데, 그런 장기상품을 구입한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이 상품에는 왜 가입하셨죠?”

나의 의문에 김씨는 아주 쉽게, 아니 좀 당당하게 말했다. 가입한 날짜까지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지난 12월 27일에 집에서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홈쇼핑을 봤어요. 보험사에서 상품을 소개하는데 소득공제가 된다고 하대요. 그리고 세금도 안 붙고, 복리로 운영한다는 거예요. 게다가 사망보험금도 준대요."

연말 소득공제 서류를 제출할 즈음이라 소득공제라는 말이 확 들어왔다고 한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금방 가입했다고 한다.

물론 상품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방송에서 판매자가 한 말은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상품의 이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김씨의 재무 처지다. 그 상품은 20년 동안 돈이 묶이는 장기상품이다. 결혼자금이 모자라면 김씨는 대출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만큼 손해를 보게 된다.

다른 상품 같으면 해지해 버려도 큰 손해가 없다. 그러나 이런 상품은 해지하면 몇 달 동안 낸 보험료를 거의 받지 못한다.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계속 끌고 가야 한다. 말 그대로 강제저축인 셈이다.

홈쇼핑에서 보험상품도 많이 판다. 김씨처럼 홈쇼핑을 통해서도 보험을 사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보험은 속옷 광고처럼 눈을 현란하게 해서 팔지는 않지만, 상품의 이점만을 현란하게 보여주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게다가 보험상품은 월보험료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비싼 상품이다.

김씨가 산 보험상품은 30만원씩 20년 동안 내는 보험이다. 원금만 7200만원이나 되는 엄청나게 비싼 상품이다. 이런 상품을 자신의 재무체력과 장기목표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구매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물론 홈쇼핑이 아니더라도 그동안 흔히 하던 것처럼 보험설계사를 만나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가입하곤 한다. 꼭 홈쇼핑 자체가 유죄(?)라고만 할 것은 아니다. 그러다 어느 날 지하철을 타고 강의하러 가다 문득 이런 명제가 떠올랐다.

'상품은 죄 없다.'

마침 그날 강의는 금융상품보다는 주로 개인의 돈 통제력을 다루려고 했었다. 그래서인지 가는 도중 김씨 사례가 생각났고, 홈쇼핑에서 상품의 이점만을 반복해서 강조했던 것 자체가 유죄(?)라고 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라. 파는 사람이 어찌 사는 사람 개인의 이러저러한 재무형편과 욕구를 알겠는가? 물론 알고 싶지도 않겠지만, 그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사는 사람 스스로 자신의 처지에 맞는 구매 관점을 잊지 않는 것이 더 시급하고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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