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차 접촉사고 내고 쪽지 남긴 아가씨

리투아니아 아가씨의 따뜻한 마음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등록|2008.10.16 17:50 수정|2008.10.16 17:50

▲ 웬 쪽지가 있지? ⓒ 최대석


학교에 데려다 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딸아이를 데리러 가야할 시간이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파란 가을 하늘과 노란 나무가 잘 어우러진 길거리 풍경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고 나갔다.

하지만 돌아온 길 하늘엔 구름이 잔뜩 끼어있었다. 그래도 몇 장의 사진을 찍으면서 집에 도달했다. 나무 아래 세워놓은 친구 자동차 와이퍼에도 낙엽이 잔뜩 쌓여 있었다. 그런데 좀 떨어진 곳에 있는 친구차를 보니 허름한 쪽지가 그 낙엽 사이에 있지 않은가!

바람에 날려온 휴지 아니면 광고전단지일 것이라 생각하고 그냥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 허름해 보이는 종이가 왠지 마음에 걸렸다. 와이퍼 쌓인 낙엽을 가까이에서 찍을 생각으로 친구 차로 가보았다. 와이퍼에 끼워져 있는 종이를 꺼내는 순간 걱정이 앞섰다.

"제가 당신의 차를 긁었습니다"라고 쓰여있는 쪽지엔 이름과 전화번호도 남겨져 있었다. 아니, 멀쩡한 차인데 어디가 긁혔지? 측면 자동차문을 보니 살짝 긁힌 자국이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갈 친구는 더 이상 차가 필요하지 않아서 우리에게 팔아줄 것을 부탁했다. 우리 차도 아니고 남의 차인데 괜히 도와주려고 하다가 봉변을 당할 뻔한 순간이었다.

요즈음 같은 세상에 이렇게 쪽지까지 남겨놓다니…. 이젠 걱정보다 쪽지 남긴 사람한테 감사함이 절로 나왔다. 일단 바빠서 오후에 전화하지 못했다. 저녁에 밖에 나갔다 오면서 다시 와이퍼에 쪽지를 발견했다. 같은 내용이었다.

얼마 후 전화해서 만나기로 했다. 우리집으로 왔다. 사고를 낸 사람은 이제 20세의 아가씨였다. 운전한 지 2년이고 첫 교통사고를 내었다고 한다. 그는 뜻하지 않게 사고를 내어 미안하다고 하고, 우리는 쪽지를 남겨주어서 감사하다고 서로 웃으면서 보험처리를 위한 교통사고합의서를 작성했다.

아침 출근할 때 우리 아파트 마당에 빈자리가 있기에 후진 주차를 하다가 접촉사고를 내었단다. 그때 차 주인을 찾았으나, 찾지를 못해 쪽지를 남겼다고. 낮에 전화가 없기에 남겨놓은 쪽지가 바람에 날아갔을 것이라 생각하고, 퇴근할 때 또 쪽지를 남긴 것이었다.

보험처리 및 자동차수리 등 아직 복잡한 일이 남아있지만, 요즘 같은 경제위기에 이렇게 쪽지를 남겨준 리투아니아 아가씨에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 낙엽에 쌓인 와이퍼 그리고 쪽지 ⓒ 최대석


▲ 접촉사고를 알리는 쪽지 ⓒ 최대석


덧붙이는 글 다음블로거뉴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