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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트 기타'야, 다시 울려라

600여일째 싸우는 '콜트·콜텍' 노동자들을 위해

등록|2008.10.17 17:24 수정|2008.10.17 17:24

▲ 콜트 기타 ⓒ 명인


꽤 오래 노래를 잊은 채 살았다. 노찾사에서 잠시 활동하고, 한 때 음반을 발표하며 가수를 본업으로 활동한 적도 없지 않았다. 먹고사는 노동에 치여 살면서도 어떻게든 진보 운동에 복무하고자 이런저런 활동을 하기도 했지만, 그 사이 나는 노래를 잃어 버렸고 어느새 가수라는 자의식마저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사는 동안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곳곳에서 싸우고 있었다. 나는 종종 집회장 한구석에 앉아 있었다. 점점 더 숨쉬기조차 힘든 자본주의에 맞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 기껏해야 장기투쟁사업장 투쟁에 머릿수 하나 보태주는 일이라는 게 늘 마음 아팠다. 나는 그저, 틈나는 대로 혹은 일부러 시간을 내어 기륭이든 이랜드든 찾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비정규직 투쟁 현장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노동자 가수 김성만 선배가 집회장 한구석에 앉아 있는 나를 보았다. 그리고 반갑게 입을 뗀 선배의 첫 마디가 "이런 데 다니면서 왜 노래 안 해?"였던가, "쟤 여기 왔는데 왜 노래 안 시켜?"였던가.

그는 투쟁 사업장은 많고, 날마다 여기저기서 문화제가 열리지만, 현장에서 함께 연대할 가수들은 적다면서 너무도 당연한 일인 것처럼 내게 다시 노래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가수는 몸이 악기인 사람인데, 평소에 몸 관리도 목 관리도 연습도 전혀 못하고 사는 내가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을까. 나는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극구 사양하는 내게 연대의 마음을 강조하던 김성만 선배가 어느 날 우리 집으로 선물을 하나 주러 왔다면서 들렀다.

잃어버린 노래를 돌려준 기타 하나

기타였다. 기타 가방에 '콜트(Cort)'라는 상표가 찍혀 있었는데 검은 매직으로 박박 지워진 채였다. "'콜트'는 나쁜 회사라고, 그래서 상표를 지워 왔지만, 그래도 이 기타로 내가 다시 노래를 만들고, 다시 노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건네주신 기타 하나.

무대가 두려워서 다시 노래하기를 주저하고 망설이던 나는 가수를 직업으로 살 때와 달리 '노래하는 일'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노래하기 시작했다.

비록 여전히 노래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쓰지 못하는 '비정규 가수'지만, 대단한 예술적 열정 때문이 아니라,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연대라는 생각으로, 이제는 틈날 때마다 혹은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어 기륭으로 이랜드로, 또 어디든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있는 곳으로 노래하러 간다.

그렇게 나는 내 노래를 되찾았다. 극악한 현실 속에서 100일·300일·500일·1000일이 넘도록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내게 무대를 찾아주었고, 언제나 투쟁의 현장에서 음향이면 음향, 노래면 노래, 닥치는 대로 궂은 일을 마다치 않는 노동가수 김성만 선배가 내 손에 들려준 기타 하나가 내게 잃어버린 노래를 돌려주었다.

그런데 바로 그 기타를 만든 콜트(전자기타 생산, 인천시 소재)·콜텍(통기타 생산, 대전 계룡시 소재) 노동자들이 지금, 600여 일째 싸우고 있다.

이제는 노동자들에게 노래를 돌려드릴 시간

기타 몸체를 깎는 과정에서 나오는 나무 분진과 소음으로 가득한 작업 현장에서, 임금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도 참고 관리자의 비인간적인 대우도 참으며 묵묵히 일해 온 그 노동자들은 근골격계 질환·유기용제 노출로 인한 직업병·기관지 천식·만성기관지염에 시달리며 콜트·콜텍 악기를 세계 시장점유율 30%의 회사로 성장시켜온 주역들이다.

최저 임금 수준의 저임금과 각종 산업재해에 시달린 열악한 환경 속에서의 노동은 회사에 엄청난 이윤을 가져다 주었을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인들에게 음악을 선사하는 도구가 되었고, 또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음악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그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라는 이름으로 회사에서 쫓겨났다. 중앙노동위원회에서마저 부당해고로 판정 받았지만 직장폐쇄로 인해 뜨개질로 투쟁기금을 마련하며 멈춰 선 공장을 지키면서 싸우고 있다. 며칠 전에는 찬바람 부는 양화대교 옆 15만4천 볼트의 전류가 흐르는 철탑 위에 올라가 절박한 사연을 알렸다.

나는 생각한다. 이제 내가 그 노동자들에게 노래를 돌려드릴 시간이라고. 그들이 만들어 준 내 기타가 그들을 위해 울릴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이제 우리가, 그 노동자들에게 그 노동의 아름다운 의미를 돌려 드릴 차례이고, 그 노동자들이 노동을 되찾고 삶을 되찾는 일에 주저 없이 연대할 때라고. 나의 기타는 이제, 연대의 노래를 울려야 한다고.
덧붙이는 글 '콜트·콜텍 위장폐업 철회와 원직복직을 위한 촛불문화제'에 초대합니다. 기타 동호인 분들께서는 당일 기타를 가져 와 주시면 좋겠습니다.

일시 : 10월 21일 오후 6시 / 장소 : 보신각 앞 / 출연 : 드럼서클, 명인, 서히, 위기의 삼촌들, 연영석, 송경동, 노순택의 사진슬라이드 등 / 여는 사람들 : 콜트·콜텍노조, 금속노조,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 조직위원회,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네트워크, 콜트·콜텍과 함께 하는 문화노동자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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