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삽질인생, 그래도 사랑해줘요
[리뷰] '미쓰 홍당무'도 나도 모자란 인간, 그래서 삶은 재미있다
▲ 화가 날 때면 '진짜' 삽질을 하는 양미숙은 이렇게 외친다. "사람이 그렇게 이상한 짓을 할 때는 다 이유가 있는 거 아니겠어요?" ⓒ 빅하우스
난 도대체 왜 이렇게 생겨먹은 걸까?
접질린 지 3주나 되어가는 나의 왼쪽 발목은 그 부분에 연속타로 다시 삔 덕에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19일만 해도 그렇다. 몇주 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산행에 가고 싶어서 몇 명을 수소문한 끝에 아르바이트 대타를 구하고, 정말 땡겼던 술자리도 거부한 채 아르바이트 마치자마자 집으로 달려와(그래봤자 새벽 2시지만) 잠을 청했건만, 늦잠을 자는 바람에 서울에서 떠나는 버스를 타지도 못했다.
산행 한번 못 간 게 뭐 그렇게 대수일까마는, 나는 내 인생이 한심하고 서러워서 아침부터 청승맞게 펑펑 울어댔다. 왜 내 인생만 이렇게 꼬이고 꼬여서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걸까?
외모도 행동도 '진짜 삽질' 인생, 미쓰 홍당무
▲ 주인공 양미숙의 모습이다. 예쁜 배우 공효진을 저렇게 변신시킬 수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 빅하우스
긴장하면 새빨개지는 얼굴, 지하철 바닥에 며칠 누워있어도 별로 어색하지 않을 부스스한 머리,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촌스러운 코트. 거기에 말투는 어찌나 속사포 같은지 듣는 사람의 신경까지 곤두설 정도다.
거기에 착각은 또 얼마나 심한지, 지지난해 회식 때 택시 안에서 짝사랑하는 서종철 선생님이 단지 귓불 한 번 만졌다고 "그땐 우리 둘 다 진심이었다"며 김치국을 그냥 양동이채 벌컥벌컥 마시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남자들의 행동에는 아무 이유가 없다" "남자는 자신만의 동굴을 가지고 싶어 한다" 등의 이론은 정말 달달 외웠다.
하지만 실상이 그런가? '여자는 자고로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그녀는 밤마다 전화를 걸어서 서종철 선생님을 귀찮게 만들고, '니가 싫다'고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남자의 표정도 읽지 못한다.
이것만으로도 이놈의 인생이 역경 투성이가 될 것이 뻔한데, 강력한 라이벌까지 등장한다. 같은 학교의 러시아어 선생님인 이유리(황우슬혜 분). "전 잘 모르겠는데요. 자꾸만 선생님들에게 전화가 와요"라며, 순진한 척 하는 건지 멍청한 건지 백치미를 폴폴 풍기는 아리따운 이 여성은 뭇 남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모든 남자의 사랑을 독차지하면 거기서 만족해야지, 하필이면 양미숙이 짝사랑하는 서종철 선생님의 사랑까지 받고 있는 거다. 이미 이유리 선생님에게 밀려 자신의 전공도 아닌 영어를 가르치게 된 양미숙의 분노 수치는 폭발 일보직전이다.
그래서 미쓰 홍당무 여사는 또 하나의 거대한 삽질을 준비하게 된다. 그것도 전따(전교 왕따)인 서종철의 딸 서종희(서우 분)와 함께 말이다.
전따(서종희)와 전따 애인(양미숙)이 쌍으로 펼치는 이 소동극은 무척이나 재미있다. 특히 둘이서 이유리 선생님과 '음란 채팅'을 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요 부분 때문에 아마도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받은 것 같은데 야하다기보다는 발칙하다.
박찬욱 감독이 제작하고 <잘돼가? 무엇이든>이라는 단편으로 주목받은 이경미 감독의 첫번째 장편영화다.
<추격자>이후로 올해 최고의 데뷔작이라고 치켜세우는 게 이해가 되는 독특한 영화. 이동진 기자가 <씨네21>에서 평한 "우주에서 날아온 놀라운 코미디"인 <미쓰 홍당무>는 그 속의 등장인물들이 나 좀 봐달라고 외치며, 팔딱팔딱 살아 숨쉬고 있다.
보는 내내 나는 웃으면서 울었고, 울면서 웃었다. 하는 일마다 삽질이지만 "원래 세상은 공평하지 않아, 그래서 우리 같은 사람들은 더 열심히 살아야 해"라며 잠도 안 자고 먹는 것도 잊은 채 고군분투하는 그녀의 모습이 짠하게 다가왔다.
"우리 같은 사람은 더 열심히 살아야 해"
나의 어리버리함이 싫어서 진지하게 "나는 왜?"에 대해서 고민한 적이 있었다. 나는 왜 어리버리할까. 난 왜 똑 부러지지 못할까.
주위 사람들에게도 물어봤다. 그랬더니 모두 이구동성으로 한다는 말이 "넌 원래부터 그렇다"는 거였다. 그게 네 성격이니 결코 바꾸기가 쉽지 않겠다는 거였다.
▲ <미쓰 홍당무> 포스터. 주인공 양미숙은 실제로 땅을 파고, 땅 속에 굴러 떨어지기도 한다. ⓒ 빅하우스
그렇다는데 어쩌겠는가. 난 의도를 하고 이렇게 살고 있는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나의 행동의 결과가 이렇게 나오는 것이다.
홍당무 여사도 나도 세상에서 3.9%정도는 모자란 삶이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고,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 것 같다.
인간은 자기가 실수하는 줄 알면서도, 잘못 살고 있는 줄 알면서도 아등바등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한다. 누군가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어서 세상은 재미있다"라고 말했던가?
결코 뻔하지 않게 웃기는 코미디 영화. 그러면서도 코 끝이 시큰해지며 웃으면서도 울게 되는 영화 <미쓰 홍당무>. 그래, 난 니가 참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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