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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뿔'나게 한 아이, 그러나...

고약한 녀석들이 나를 일깨우기도 한다

등록|2008.10.20 15:29 수정|2008.10.20 15:54
나는 중학교 영어교사로서 일주일에 한 시간은 원어민과 함께 공동수업을 한다. 주로 수업보조 역할을 하는데, 내가 맡고 있는 수준별 수업 기본반에는 공부에 흥미를 잃은 학생들이 많다. 산만한 수업 분위기를 쫓기 위해 엄하게 꾸짖기도 하고 가벼운 체벌도 한다. 

오늘도 여느 날처럼 시작종이 울렸는데도 교실 안은 다소 시끌벅적했다. 그 어수선함을 진정시키던 중 유독 한 녀석이 눈에 띄었다. 옆 친구와 아직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나는 큰 소리로 그를 불러 세웠다.

"이 녀석 이리 나와! 저 뒤에 나가 손들고 서 있어!"

그런데 반응은 뜻밖이었다. 그는 사나운 눈 꼬리를 하면서 입술을 씰룩거리지 않은가. 크게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나만 이러느냐 라는 식이었다. 보통 아이들과는 사뭇 달랐다.

'이 녀석 봐라! 버르장머리 없이!'

반사적으로 나는 뿔이 났다.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

'이 녀석을 이대로 두어선 안 되지!' 원어민의 눈치를 보느라 일단 화를 참았다. 창피했다. 그를 복도로 데리고 나왔다.


"너, 이 녀석! 태도가 이게 뭐야. 뭘 잘했다고?"

그는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씩씩거렸다. 아무리 요즘 아이들이 철없이 막 나가도 이것은 좀 고약한 도전(?)이었다. 회초리를 들고 있던 내 손이 떨렸다. 인내심의 한계를 넘어 폭력교사로 돌변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용서를 구할 수도 있는 말이나 자세는 결코 그에게서 느낄 수 없었다.

'상대해서는 안 될 녀석이구나.'

이럴 땐 나는 두 손을 들고 만다. 흥분해서 이 순간을 못 참으면 격해지고 나중에 또 후회하기 때문이다. 오랜 경험에서 나온 도피이다.

"자리로 들어 가! 수업 마치고 와!"

사실 그는 평소 조용하고 내성적이었다. 또래 아이들보다 수업에도 더 집중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나의 이 조처에 더 불만이 많았을지 모르겠다.

'내가 지나치지 않았는가? 그를 희생양으로 삼은 게 아닌가?'

그렇지만 그의 버릇을 고처 주고 싶었다. 이대로 둘 수 없었다. 회초리를 들고서라도 상한 나의 자존심을 회복시키고도 싶었다.

마치는 종이 울렸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닥아 왔다. 그는 예상과 달리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바탕 소란 후 낭패감에 빠져 있는 나와는 대조적이었다.


"선생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는 머리를 쓱쓱 긁으며 환하게 미소까지 짓는 게 아닌가. 뜻밖이었다. 조금 전의 그 황당하고 반항적인 모습은 없었다. 보통 이런 경우, 학생들은 교사의 닦달에 못이기는 척 슬며시 꼬리를 내리고 마는데 그는 분명 달랐다.

그의 이런 모습을 기다리기나 한 것처럼 나는 기분이 좋았다. 나는 전염되었다. 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열을 받은 내 자신이 부끄러웠고 더 못난 꼴이 되었다.

그는 잠시 거칠게 흔들리다가 이렇게 올바른 자리를 되찾았다.

'꽃이 흔들리면서 피듯.'

미소로서 화답하는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그 녀석의 한 수 가르침에 답답했던 내 가슴이 ‘뻥’ 뚫렸다. 하루 종일 나는 맑아 있었다.

또 다시, 고달프지만 더 넓은 아량으로 버티고 서서 지켜봐야 된다는 생각이 마음 깊이 자리 잡았다. 아이들의 시행착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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