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약돌 하나에서 작은 우주를 보다
[리뷰] 김수강 사진전, 공근혜 갤러리에서 11월 9일까지
▲ 김수강사진전이 열리는 청와대 입구 팔판동 공근혜갤러리 입구 및 전경 ⓒ 김형순
김수강(1970~)의 '조약돌(Stones)' 사진전 이 11월 9일까지 청와대 입구 팔판동 공근혜 갤러리에서 열린다. 그는 서울대 미대 회화과와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유학시절, 그에게 영감을 준 필립 퍼키스 교수의 영향으로 회화에서 사진으로 전공을 바꾼다. 회화적 감수성으로 찍은 그의 사진이 어떨지 사뭇 궁금하다.
작가의 첫인상은 외면은 부드러우나 내면은 강한 백제의 여인 같다. 이번 전은 8번째 개인전을 치르는 동안 작가의 정체성은 물론이고 사물을 보는 안목도 철학적 사유도 깊어 보인다. 또한 회화를 공부한 작가답게 질감이 풍성하고 구도감각도 빼어나고 완성도도 높다.
▲ 김수강사진전 포스터 ⓒ 김형순
그의 사진을 보면 갖가지 스트레스에 쫓겨 살아가는 도시인들 마음을 가라앉히고 삶을 뒤돌아보게 하는 거울이 그 속에 들어있는 것 같다. 그 거울엔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고요함과 넉넉함이 있어 보인다.
달 하나가 천 개의 강물에 다른 모양으로 비치듯 조약돌도 저마다 다른 무늬와 표정을 짓고 있다. 저렇게 고운 조약돌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는가. 그동안 스친 물과 바람의 어루만짐이 얼마이며 그 위로 스쳐간 바람과 구름이 또 얼마였겠는가.
작은 조약돌은 세월이 만든 자연의 예술이다. 작가는 이에 말을 건네며 그 속으로 파고들어가 거기서 얻은 영감을 그의 작품 속에 반영한 것인가. 자연이 낳은 작품과 작가가 만든 예술이 합쳐져 대조되는 흑백 속에서 미묘한 뉘앙스를 풍긴다.
디지털 사진의 홍수 속, 거꾸로 가기
검 바이크로메이트 프린트란? |
19세기에 유행했던 이 인화기법은 빛에 반응하지 않는 수성물감 입자를 반응시키기 위해 고무액(Gum Arabic)과 중크롬산염(Bichromate)을 섞은 용액을 종이에 바르고 말린 후, 네거티브를 밀착하여 빛에 노출 시킨 후 현상하면 밝은 부분의 안료는 고무와 함께 녹고, 빛을 받은 부분의 안료는 그대로 남는다. 검 바이크로메이트 프린트(Gum Bichromate)는 정통 아날로그 기법으로 촬영 후 밀착시킬 필름과 인화지를 새로 제작하여야 하며 안료를 푼 옅은 한 가지 물감을 한 겹씩 올리고 말리는 반복 과정을 통해 회화적인 사진의 상이 형성된다. 2~3일에서 일주일 정도의 인화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공근혜갤러리자료) |
요즘은 사진전의 홍수시대다. 예술의 전당에서 지난주에 열린 '2008 서울국제판화사진아트페어(SIPA)'에 가보니 정말 사진은 엄청나게 진화하고 있다.
거의 회화수준에 도달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닌 듯싶다. 사진은 이제 카메라로 찍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 붓으로 그림을 그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루가 지나도 달라지는 디지털기술 그러나 이 작가에게 그런 속도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진이 찰나의 예술로 속성상 결정적 순간을 잡아내야겠지만 출력에서는 19세기에 발명된 아주 느린 검 바이크로메이트 정통 아날로그 프린트방식을 쓴다. 한 작품 하는 데 일주일도 걸리고 마음에 드는 색과 질감을 내려면 수정작업만도 수십 번이 필요하단다.
작가가 이런 느림의 미학을 도입하는 것은 느린 것이 거꾸로 더 빠를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한 것인가. 충격을 줄만한 새로움(something new)을 창조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갇힌 작가들이 오히려 식상한 것만 내놓게 되는 것에 대한 경고인가. 조약돌이 나오기까지 자연이 공들인 시간만큼 그는 작품을 형상화하는데 오래 뜸들이며 혼신을 다한다.
버려진 것 제자리 놓일 때, 세계는 존재
▲ '조약돌(stones) 12' 검 프린트(gum bichromatic print) 87×71cm 2008. 회화적 질감이 느껴진다 ⓒ 김형순
이번 전에 작가는 조약돌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조약돌은 2년간 전국의 계곡과 해안을 돌아다니며 수집한 것이라고 한다. 그의 의도는 아무렇게나 버려진 사물이 제자리에 놓일 때 이 세계가 참으로 존재한다는 뜻인가. 그는 정말 조약돌을 극사실주의 깔끔한 그림처럼 작품 속에서 가지런히 놓았다.
시간이 지나면 별것 아닌 것이 별것이 되고, 쓸데없는 것이 쓸데 있는 것이 되고, 중요해 보이지 않는 것도 그 중요함을 깨닫게 되고,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이해되는 것이 예술의 속성이라면 작가는 그런 원리에 충실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보태면 모든 사물에는 맨살을 보여줄 때의 아름다움이 있다. 사진에 이런 요소가 없다면 싱거워진다. 사막이 자연의 누드처럼 보이듯 이런 사진도 그런 돌멩이의 살빛이 은밀하게 노출되어 있어 매력적이다.
사진에 회화를 접목한 상응과 발효의 미학
▲ '조약돌(stones) 5' 검 프린트(gum bichromatic print) 87×71cm 2008 ⓒ 김형순
그의 사진은 얼핏 보면 판화나 그림처럼 보인다. 이젠 사진과 회화의 경계가 엷어진 것에 대해 관객들도 많이 익숙해진 것 같다. 하긴 그것이 사진이든 판화든 건축이든 디자인이든 회화이든 조각이든 예술작품이면 되지 않겠는가.
김수강은 사진을 입력하는 과정에서 조명 등 기계와 기구를 사용하지만 최종적인 출력에서는 수작업을 함으로써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그리고 부단히 사진에 회화의 요소를 접목시킨다.
구성 면에서는 '최소의 개입으로 최대의 공간을 창출'하는 이우환의 '조응의 미학'을, 출력방식에서는 '발효음식처럼 속으로 삭히고 뜸 들여 더 빛내는' 김지하의 '하얀 그늘의 미학'을 생각나게 한다. 여기다가 한국의 멋을 물씬 풍기는 백자나 달항아리의 단아하고 세련되고 절제된 아름다움이 사진 속에 녹아있다.
조약돌에서 우주를 보고 인생을 관조하다
▲ '조약돌(stones) 9' 검 프린트(gum bichromatic print) 87×71cm 2008 ⓒ 김형순
작가는 1997년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에서부터 2004년 '보자기'시리즈, 2006년 '흰 그릇'시리즈에 이르기까지 어떤 일관성을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주변의 작고 사소한 것 혹은 일상적인 것, 예컨대 아침에 먹고 버린 계란껍질, 병뚜껑, 속옷, 연필, 단추, 빨래, 보자기, 돌멩이 등에서 사진의 소재를 건진다는 점이다.
이런 점은 또한 영국시인 윌리엄 브레이크(1757~1827)가 노래한 "한 알의 모래에서 우주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나 화엄불교에서 말하는 "먼지 한 톨 안에도 우주가 있다"에서 볼 수 있는 시적이고 종교적인 세계와도 통한다.
작가는 이번 전을 위해 조약돌을 수없이 주워 모으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겠지만 거기서 자연의 신비와 우주의 질서를 보고, 사물의 본질과 인생의 의미를 관조하는 법을 배웠는지 모른다. 작가도 "조약돌은 우주 안에서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자기에게 맞는 본인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인간들과 같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낯익은 것도 다시 새롭게 보기
▲ '조약돌(stones) 2' 검 프린트(gum bichromatic print) 87×71cm 2008 ⓒ 김형순
김수강은 낯설지 않은 것도 낯설게 하여 다시 새롭게 보게 한다. 타성에 빠진 우리의 시각을 교정시키기 위해서 불가피한 조치일 수도 있다. 그래서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하고 하찮은 것도 소중하게 볼 줄 알도록 눈을 열어준다.
미술평론가 박영택은 평론집 <식물성의 사유(2003)>에서 그의 작품을 이렇게 평했다.
"이 작가는 동양의 현자들처럼 무심히 흐르는 물을 보면서도 우주를 이해하는 태도를 보인다. 홀연히 자연 앞에서 고독할 수 있고 침묵과 홀로 마주할 수 있으며 그 속에서 수식이나 장식을 덜어낸 절제된 한 장의 사진을 탄생시킨다."
기와 혼을 넣고 힘과 열을 주다
▲ '조약돌(stones)' 검 프린트(gum bichromatic print) 87×71cm 2008. 돌멩이의 체온과 촉감이 느껴지는 것 같다 ⓒ 김형순
이제 끝으로 김수강 이야기를 짧게 요약해보자. 그는 사진을 통해 사물에 기와 혼을 넣어 우리에게 힘과 열을 준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시골의 따뜻한 온돌방처럼, 마을입구 장승처럼 서있는 민불(民佛)처럼, 우리의 몸을 눕히고 우리의 영혼을 감싸준다고 그리고 우리에게 사물과 어떻게 소통하며 자연과 어떻게 융합하며 살지를 묻는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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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I 1970년 서울 생. 1993년 서울대미대 서양화과 졸업. 1998년 프랫 인스티튜드(Pratt Institute) 대학원 졸업
개인전 I 2008년 '조약돌'. 2006년 '하얀 그릇'(공근혜갤러리) 2005년 '김수강사진전'(백해영갤러리, 서울) 2003년 '내 마음에(In My Hand)' 성곡미술관. 2000년 '있음(Being)'(갤러리룩스) 1998년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 (갤러리2000, 서울).
미국 휴스턴미술관. 덴마크 사진예술박물관. 서울 대림미술관 등에 그의 작품이 소장됨.
*** 2008년 11월14일~2009년 1월10일까지 미국 필라델피아 화랑에서 개인전 예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