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신세대고 싶지만 내가 고른 가을노래는?
원더걸스 '노바디'부르고 싶지만 입에서는 통기타시절 노래가 술~술~
▲ 여러분의 가을 노래는?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합니다. 단풍도 좋지만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가을노래가 하나씩은 있을 것입니다. 단풍놀이도 좋지만 가을노래를 들으며 추억에 젖어보는 것도 가을을 즐기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사진은 계룡시민의 쉼터인 괴목정의 가을 풍경입니다. ⓒ 김동이
마음속에는 최신곡, 하지만 선곡한 노래는?
'아무리 가을노래만 선곡한다 해도 최신곡도 몇 곡 넣어야 겠지?'
마음속으로는 이렇게 몇 번을 되뇌며 본격적인 선곡에 들어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머리 속은 예전에 들었던 통기타 가요들의 제목들로 채워졌다. 그것도 모자라 어느새 내 입은 그 노래들을 흥얼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가을이라 해서 꼭 제목에 '가을'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노래만 선곡한 건 아니다. 왠지 가을하면 어울리겠다 싶은 노래나, 가을을 자주 타는 내 마음을 대변해 줄 멜로디와 가사가 있는 노래를 선택했다. 그게 바로 가을노래지 않을까.
▲ 마음은 NOBODY 부르고 싶은데내가 네비게이션에 담고 듣는 가을노래는 최신곡보다는 7080세대가 많이 부르던 통기타곡이 많이 담겨져 있다. ⓒ 김동이
이날 내가 선곡해 요즘 차 안에서 즐겨듣고 있는 노래 목록을 보면 이 계절에 잘 어울리는 가수인 마로니에가 부른 '동숭로에서', '칵테일사랑'을 비롯해 변진섭의 '숙녀에게', 박인수, 이동원의 '향수', 그리고 왠지 내 마음을 대변해주고 있는 것 같은 노래인 마음과 마음의 '그대 먼 곳에' 등이다. 10월하면 생각나는 대표곡인 이용의 '잊혀진 계절'도 좋지만 이 노래를 리메이크해 여성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더욱 감미로워진 서영은의 '잊혀진 계절'도 가을 감성을 자극한다.
이 노래들 이외에도 내가 선곡한 가을 노래는 조용필의 'Q', '꿈', '바람의 노래', 박상민의 '멀어져간 사람아', 김연숙의 '초연', 30~40대 남성이 노래방에서 가장 많이 부른다는 나훈아의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여성이 가장 많이 부른다는 지영선의 '가슴앓이', 소리새의 '그대 그리고 나', 이문세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이선희의 'J에게'와 대표적인 가을 노래로 시적인 표현이 인상적인 이정옥의 '숨어 우는 바람소리' 등이다.
나와 내 차를 자주 타는 한 동료는 "어떻게 듣는 노래가 젊은 사람 같지 않고 노티가 난다"며 옆에서 비웃기도 하지만 이런 말을 할 때마다 난 "노래 듣는데 나이가 있나요? 그냥 자기가 좋은 노래 찾아서 들으면 되는 거죠. 뭐"하며 웃어 넘기곤 한다.
군 재직시절 노래와 관련된 에피소드
이러한 내 가을 노래 리스트 중엔 군 시절 추억과 관련된 노래가 하나 있다.
갈대밭이 보이는 언덕 ♪~ 통나무 집 창가에
길 떠난 소녀같이 하얗게 밤을 새우네
김이 나는 차 한 잔을 ♬~ 마주하고 앉으면
그 사람 목소린가 숨어 우는 바람소리
둘이서 걷던 갈대밭 길에 달은 지고 있는데 ♪~
잊는다 하고 무슨 이유로 눈물이 날까요
아~아 ♬~ 길잃은 사슴처럼 그리움이 돌아오면
쓸쓸한 갈대숲에 숨어 우는 바람소리
둘이서 걷던 갈대밭 길에 달은 지고 있는데 ♪~
잊는다 하고 무슨 이유로 눈물이 날까요
아~아 ♬~ 길잃은 사슴처럼 그리움이 돌아오면
쓸쓸한 갈대숲에 숨어 우는 바람소리
바로 1993년 MBC 신인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이정옥의 '숨어우는 바람소리'라는 곡이다. 이 곡은 대중가요이지만 마치 성악가가 부르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드는 명곡이다.
1997년 10월초 육군 소위 임관 후 강원도 철원에 있는 중부전선 최전방부대로 배치를 받은 난 그해 가을, 겨울을 꼼짝없이 철책선 안에서 보냈고, 해가 바뀐 다음해 가을 1년 여 만에 철책선에서 나와 연대가 있던 후방으로 나오게 되었다.
1년여 만에 느껴본 자유 아닌 자유로운 생활에 그간 누릴 수 없었던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촌구석이라 문화시설이 별로 없었던 곳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다. 당구장도 가보고, 읍에 하나밖에 없는 볼링장도 가보고, 특히 동료들과 술 한 잔 마시면 어김없이 노래방도 갔다.
부대가 외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보니 하루에 몇 번밖에 다니지 않는 버스를 타거나, 히치 하이킹을 해서라도 이렇게 나름대로 문화생활을 즐기고 있던 어느 날, 부대에서 상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회식 자리가 마련되었다. 부대 간부식당에 마련된 회식자리에서 '건배'를 외치며 한두 잔 받아 먹다보니 어느덧 취기가 올라왔고, 회식 자리는 이내 여흥 분위기로 바뀌고 있었다.
사회자의 명령(?)에 따라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일명 '트로트'가 열창되고 있을 무렵, 사회자가 초급장교 대표로 나에게 노래를 시키는 게 아닌가! 순간 방심하고 있던 난 갑작스런 명령에 무슨 노래를 할까 고민하다가 '지금까지 쭈욱 트로트만 불렀으니까 분위기 전환이 필요하다' 싶어 계절과 어울리는 '숨어우는 바람소리'를 선택했다. 그런데 반주가 흐르고 노래가 시작되자 분위기는 일순간 다시 술먹는 분위기로 바뀌었고 난 1절만 부를 수 있었다.
"아직 초급장교라 분위기를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시켜보겠습니다."
'끝난 줄 알았는데... 또 하라고?'
노래가 중지되자 끝난 줄 알았는데, 사회자는 다시 분위기를 띄워 보라며 마이크를 건넨다.
'누가 분위기 띄우는 노래 못 불러서 안 한 건가? 하두 비슷한 노래만 불러대니까 분위기 좀 바꿔 볼라고 부른건데...'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는 평소 친구들과 노래방 가면 분위기 업(UP)용으로 즐겨 부르던 '아파트'를 과격한 몸짓과 함께 불렀다. 순간 처졌던 회식 분위기는 다시 시끄러운 여흥 분위기로 바뀌었고, 그렇게 회식자리는 밤늦도록 흘러갔다.
이날 난 아무리 좋은 노래도 분위기에 맞게 불러야 한다는 교훈 아닌 교훈을 얻게 되었고, 가을 이 맘 때면 항상 '숨어 우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이제는 추억이 돼 버린 군생활을 회상하며 실소를 자아내기도 한다.
'가을노래'. 앞으로 아무리 더 좋은 노래가 나와도, 나이가 더 들어도 내 가을 노래 리스트는 큰 변화가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고, 특히 내 추억의 한편을 장식하고 있는 이 노래는 내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나의 가을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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