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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 산업시설, 문화예술 새 옷 입고 단장한다

문화예술공간으로 변신 꾀하는 근대산업 건축물 '안양 유유 부지'

등록|2008.10.24 21:01 수정|2008.10.24 21:01

▲ 문화유산들의 보물창고 (구)유유 안양공장 부지 전경 ⓒ 최병렬


전국 각지에 산재한 근대 산업 시설 인프라들이 근대사의 흐름을 조명할 수 있는 문화 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히 있음에도 인식 부족과 개발논리에 밀려 훼손 또는 멸실되거나 방치되어 왔으나 최근 문화예술공간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광부)는 최근 창고, 공장, 기차역 등 폐 산업시설을 지역 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 '지역근대산업유산을 활용한 문화예술창작벨트 조성' 관련, 23일 시범사업 5개를 선정했다.

이번에 선정된 시범사업은 전북 군산의 내항 근대유산(근대사, 공연), 전남 신안의 염전, 소금창고(미술관, 공연장 및 소금문화체험공간 조성), 경기 포천의 폐채석장(창작스튜디오 조성, 조각 분야 특성화 프로그램), 대구의 구 KT&G 연초창(문화창작발전소 조성, 예술창작), 충남 아산의 구 장항선(도고온천역 등 구 역사의 문화공간화) 등이다.

비록 '문화예술창작벨트 조성 2009년 시범사업 선정'에서 탈락했지만 경기도가 지난 7월 문광부에 후보지로 추천한 3개의 사업지 중 한 곳이 안양시가 현재 문화예술공간으로 변신을 꾀하려 시도하고 있는 유유 안양공장 부지다.

건축가 김중업 작품 (구) 유유 안양공장과 문화재 보물창고

▲ 국전 작가 작품이 설치된 공장동 건물 ⓒ 최병렬


안양 유유공장은 한국의 손꼽히는 건축가 김중업(金重業,1922∼1988)이 설계한 초기작품이자 50년대를 대표하는 산업건축물이다. 이번 사업은 이 공장을 리모델링하는 것으로 안양시가 한국문화관광연구원(KCTI)에 용역을 의뢰해 현재 수행중에 있다.

건물의 사무동 지붕은 역보로 되어 있고 생산동은 캔트리버로 형성돼 삼성천 시야를 확보하고자 하는 디자인 요소가 가미된 건축학적으로 의미있는 건물이다. 특히 공장입구에 자리한 2층 원형으로 된 수위실 역시 톡특한 형태로 문화유산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평이다.

또 공장동 건물 외벽에는 조각가 박종배씨(제14회 국전 대통령상 수상)의 작품 '파이오니아(pioneer)'와 '모자상(母子像)'이 설치돼 있어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대문장식, 건물 유리창문의 철창 등을 쌍와이(Y)자로 일관되게 배치한 것과 공장건물과 조각품의 이질적인 면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건축가의 심미안이 놀랍기만 하다.

뿐만 아니라 생산동 냉난방 연통의 구멍을 유두(乳頭) 형태의 붉은 조형물로 가려 놓은 것은 당시의 공장 건물로선 실로 파격적인 시도가 아닐 수 없다. 어려운 시대에 공장에 예술을 가미해 건축했다는 점은 높은 안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지붕이 톡특한 역보로 설계된 사무동 건물 ⓒ 최병렬


사실 (주)유유 공장 부지는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피웠던 통일신라 흥덕왕 때 건립됐던 중초사(中初寺) 터다. 정문을 들어서면 통일신라시대 유물로서 조성년대(造成年代) 명문이 유일하게 새겨진 보물 제4호 '당간지주(幢竿支柱)'가 고색창연한 빛을 띠고 서 있다.

당간지주 서쪽 지주에 새겨진 6행 123자의 명문(銘文)에 의하면 신라 흥덕왕 원년(元年)인 826년8월6일에 채석하여 그 이듬해인 흥덕왕 2년(827) 2월30일에 이 지주가 세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명문으로 수많은 당간지주 중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것이다.

그 옆에는 고려 중기에 축조된 것으로 알려진 유형문화재 제164호 중초사지삼층석탑이 있다. 아쉽게도 상륜부(相輪部-탑 꼭대기 부분)는 분실된 상태로 1959년 공장신축 당시 80m가량 떨어진 현재의 자리로 옮겨지며 보물 제5호에서 지방문화재로 강등(?)당했다.

특히 (주)유유 안양공장 이전부지는 예전부터 향토사학자들 사이에서 고려태조 왕건이 창건했다는 안양사(寺) 터일 것이라는 설이 제기되고 안양공장 건설당시 유적조사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청동용두와 사자향로발 등 유물들이 발굴되기도 했다.

▲ 입구에 자리한 중초사지당간지주(보물 제4호)와 삼층석탑(경기도 유형문화제 164호) ⓒ 최병렬


판도라 상자같이 수수께끼를 담고 있는 유유 문화예술 활용지

또 (주)유유 뒷편 암벽에는 스님이 종루에서 종치는 모습을 새긴 국내 유일의 마애종(磨崖鍾·경기도 유형문화재 92호.신라말-고려초 추정)이 자리해 '중초사지'와의 연관성도 제기되며 최근 민예총안양시지부는 이를 보물로 격상시키기 위한 사업을 본격 추진중에 있다.

특히 1973년 10월20일 이곳에서 출토된 금동불상을 다음날 인사동 공동품상에서 구입, 소장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조상하(캐나다 퀸스대학 교수)씨가 책자(도서명: 百濟漢山光德(安養)寺址出土金銅阿彌陀如來坐像. 저자 조상하. 출판사 有韓社)를 발행하기도 했다.

조씨는 책 머리에 "경기도 시흥군 동면 안양리에 있는 광덕(중초)사지에서 출토된 금동불상이 천축(현 인도)에서 파견된 傳敎僧 마라난다(摩羅難陀)가 백제에 전수한 원시불상(元始佛像)으로 고증되는 과정은 그야말로 기적의 연속이었다"고 기록했다.

조씨를 만난 수집가 문형식씨는 이 금동불상은 인도 굽타왕조 찬드라 굽타 2세(재위 375-414) 때 간다라 지방에서 조상된 傳敎佛像(일명 傳道佛)이라 밝혔으나 중초사지까지 온 경위 등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들은 마치 판도라상자 같이 더욱 궁금증을 자아낸다.

▲ 유일하게 현존하는 마애종(경기도 유형문화재 92호) ⓒ 최병렬


안양시는 유유 공장에 대한 문화재적 가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매입을 추진했다. 그 결과 지난 2006년 (주)유유가 공장부지 및 건물 매각의사를 전달해 왔고 이후 시의원과 전문가 20여명이 현장을 방문하는 등의 보존 및 매입을 위한 본격적인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그 뒤 안양시는 2007년 6월 (주)유유와 240억원을 3년 분할해 내는 것으로 해당부지의 매입계약을 체결한 후 활용방안 용역조사를 벌였다. 이후 지난 1월 기본설계를 공모하고 실시설계 완료가 임박한 상태로 박물관 건립을 위해 국·도비 등을 신청했으나 15억원만을 배정받은 상태다.

특히 (주)유유 부지 매입 과정에서 고 김중업 건축가의 유유공장 설계도면을 입수했으며, 2007년에는 김중업 선생의 훈장, 상장, 사진, 설계도면과 미니어쳐 등 유품 및 기록물 등 140여점을 아들(김희조. (주)대교하와이 대표)로부터 기증받기도 했다.

안양시 관계자는 "주한 프랑스대사관을 설계한 공로로 프랑스 정부로부터 수여받은 '프랑스 국가공로훈장'(1963년)과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1988년) 등이 포함돼 있다"며 "향후 개관될 예정으로 있는 구 유유산업내 '김중업관'에 전시될 계획"이라고 밝혔다.

▲ 근대문화유산 유유 안양공장 전경 ⓒ 최병렬


천년세월 마애종과 공장 건물을 활용한 문화공간

현재 KCTI는 유유산업지를 ▲근대건축 ▲복합전시 ▲이벤트/휴식 ▲문화체험 ▲수변(水邊) ▲문화재 영역 등 6개 영역으로 나누고 도로와 길 등을 통해 유기적으로 연계함으로써 전체가 하나의 마을처럼 기능하도록 설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주)유유 이전 부지를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 과정엔 콘텐츠 종류 및 성격 결정, 인근 안양예술공원과의 연계 등 각종 정책뿐 아니라 문화.예술단체들의 이해관계도 맞물려 있어 정책의사결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박물관 하나 없어 지역과 연관된 문화유산 대부분이 타 지역 대학 박물관 등에 보관된 현실에서 안양지역 정서를 반영하고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 조성되기를 바라고 있다.

안양에는 국어교과서 소장가로 유명한 김운기 안양시검도회장, 중국명품 도자기 수집가인 이원균 안양문화원 이사, 잡지 수집가로 알려진 안정웅 안양시 만안구청장, 국내외 콜렉션 수집가로 익히 알려진 김민석 솔로몬 대표 등 수집가들이 많기 때문이다.

비록 유유 부지 활용화 사업이 문광부의 2009년도 시범사업 선정에서 탈락했으나, 용역 결과가 나오는 대로 현상 공모를 통하여 내년이면 좀처럼 보기 드문 문화예술공간이 안양시민들 앞에 선을 보이게 된다. 공장건물을 활용한 문화공간이라니 기대해봄직 하다.

▲ 보호각속의 천년세월 마애종은 언제 울릴까 ⓒ 최병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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