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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외면하는 정부, 헛발질하는 관료 벼랑 끝 한국 경제, '핵겨울' 맞이하나

경제위기 부채질하는 정부 정책,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등록|2008.10.24 21:41 수정|2008.10.24 21:41

▲ 장중 주가 1,000선이 붕괴된 24일 결국 주가를 회복하지 못한 채 코스피 지수가 938.75로 마감되었다. 오후 3시 마감된 직후 카메라 기자들이 시황판앞에서 취재를 하고 있다. ⓒ 권우성


"이제 우리도 핵겨울을 준비해야지 않을까 싶어."


2주전 쯤이다. 금융계 한 고위인사는 기자와 소주를 기울이며 이처럼 내뱉었다. 그는 요즘 '뱅커'로서의 25년 가까운 시간을 정리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주변의 선배 뱅커들이 짐을 쌀 때를 회고하면서, "나도 얼마 안 남았다"며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밤 늦게 자리를 뜨면서, 그는 "경제가 정말 위험하다", "언론이 중요하다"고도 했다.

그리고, 지난 19일 정부는 은행권에 대한 1000억달러 규모의 지급 보증을 발표했다. 이어서 금융과 기업, 부동산시장 안정을 위한 대책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금리인하를 단행했고, 9·11테러 이후 처음으로 시중에 수조원이 넘는 돈을 풀었다.

하지만 시장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외국인은 한국 시장에서 연일 돈을 빼내갔고 금융시장은 혼란을 거듭했다. 급기야 24일엔 심리적 마지노선이던 주가지수 1000선이 무너졌다. 원-달러 환율은 1424원에 이르렀다. 

정부와 일부 언론, 국책연구소 등에선 아직도 "지나치다"는 반응이지만, 일반 국민들까지도 이젠 믿지 않는다. 시장에선 오래 전부터 믿지 않았다. 공황과 분노를 넘어서, 체념의 목소리가 넘치고 있다.

누가 한국경제를 망치고 있나... 외국인 또는 외국언론?

한국경제는 분명 '위기'다. 정부는 이제라도 실상을 국민에게 똑바로 알려야 한다. 정부 국책연구소의 한 연구위원은 24일 "왜 금융당국에서 정보를 제대로 내놓지 않고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국민 세금으로 얻은 것을 우리에게도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스스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결국 드러나게 마련이다. 문제는 그땐 이미 늦다는 점이다. 한 민간경제연구소의 연구위원도 "정부가 마켓(시장)과 제대로 소통해야 한다"면서 "미국에서도 볼수 있듯이 (부실을) 숨긴다고 해서 숨겨지기도 어렵고 결국 드러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유력 외국언론에서 한국 경제를 비관적으로 보는 이유 중의 하나도 정보가 투명하게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주가 1000선이 무너졌던 24일에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 등 신흥국가를 상대로 구제금융 지원을 고려중"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물론 정부는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홍종학 경원대 교수(경제학)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일부 언론은 낙관적 전망만 반복하고, 방송을 장악하려는 정부로 인해 공영방송도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또 "이미 시장의 신뢰를 잃은 경제팀과 관료들, 언론 기능의 마비로 제대로 위기관리에 대한 공론화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면서 "국책 연구소장이나 정부 눈치 보기에 급급한 보수적 경제학자들도 한몫하고 있다, 최고 통치자인 대통령은 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연일 헛발질하는 정부의 위기관리 대책

▲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19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전광우(오른쪽) 금융위원장, 이성태(왼쪽) 한국은행 총재와 고위 당정회의를 거쳐 확정한 '국제금융시장 불안 극복방안'을 공식 발표한 후 손을 맞잡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배재만


굳이 정부가 인정하고 싶지 않더라도, 일반 국민들은 이미 차가운 겨울을 나고 있다. 연일 계속된 주가 폭락과 부동산 하락은 서민을 비롯해 중산층의 몰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치솟는 환율과 물가로 이들의 삶은 더욱 궁핍해지고 있다.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잘 나가던 수출도 증가세는 반토막 난 지 오래다. 무역수지는 외환위기 이후 사상 최대 규모의 적자를 보이고, 비상식량인 '외환보유고'라는 곳간은 날로 줄고 있다.

뒤늦게 정부가 팔을 걷고 나섰지만, 약발은 전혀 먹혀들지 않고 있다. 미국을 따라 정부가 국내 은행의 달러 빚을 국민 세금으로 메꾸겠다고 발표했지만, 미흡했다. 건설회사의 미분양 아파트나 토지를 사들이는 것 역시 특혜에 불과하다. 이마저 시장에선 뒤늦은 뒷북 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연일 한국시장에서 철수하는 외국인에게 한국은행의 금리인하는 더없는 '굿뉴스'였다. 원-달러 환율의 안정을 위해 외국자본의 이탈을 막기 위해선 정책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지적에 정부는 정반대의 카드를 꺼냈다. 외국인들의 '탈(脫) 코리아'에 가속도가 붙었다. 증시는 폭락을 거듭했고, 환율은 뛰어올랐다.

김광수 <김광수경제연구소> 소장은 최근 <한겨레>에 쓴 글에서 "한국경제가 최근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원-달러 환율 폭등과 외환위기 차단"이라며 "이같은 상황에서 금리를 내리는 것은 외국인 투자자들을 더 빠져나가게 하고, 수출기업들에는 달러를 팔지 말며 투기자들에게는 환투기를 더 하라고 부추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한국은행이 오히려 환율 폭등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리더십과 신뢰 회복하고 서민을 살려야 한다

▲ 물가급등과 경제 불황으로 자영업자들의 살림살이가 어려워지고 있다. ⓒ 연합뉴스


홍종학 교수도 "현재와 같은 시점에서 정부가 나서 증시를 부양하는 대책을 내놓으면 외국인의 자금 이탈이 더 커질 것"이라며 "이제부터라도 다시 경제운용 계획을 짜고, 제대로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대로, 이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핵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제대로 해야 한다.

우선 이미 바닥이 드러난 정부의 위기관리능력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이준구 서울대 교수(경제학과)는 "현재와 같이 위기 상황에선 슬기롭게 헤쳐나갈 리더십이 필요하다"면서 "하지만 현 정부가 그동안 보여준 것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리더십과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정부의) 무능력과 소통 부족으로 국민들에게 실망감만 안겨줬다"면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현재의 위기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홍 교수도 "현재 같은 위기 상황에서도 정부는 부자와 재벌만을 위한 정책을 내놓고, 금산분리 완화 같은 대책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하고 있다"면서 "신뢰를 잃은 정부가 전혀 다른 방향의 해법을 내놓고 있는데, 시장에서 어떻게 보겠는가"라고 주장했다.

김광수 소장은 "한국경제가 심각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지만 정부는 현 상황을 거의 통제하지 못하고 있을 뿐더러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면서 "이유는 현실 경제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있고, 무지로 인해 정책실패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정부의 신뢰 회복과 함께 결국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서민을 살려야 한다. 홍 교수는 "서민과 중산층이 뒷받침이 되면, 경제위기를 대처하는 데 그나마 낫다"면서 "정부는 서민과 중소기업이 살아날 수 있도록 재정지출을 확대하는 등의 대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래야, 서민과 중산층이 살고 중소기업이 살면, 부자와 대기업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정부가 이같은 대안에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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