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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 보호보다 '서명 실적'이 먼저?

공항공사 노조, 주소·전화번호 쓰여 있는 서명 용지 방치

등록|2008.10.25 14:20 수정|2008.10.26 15:52

▲ 24일 오후 전남 여수공항 청사 2층에 위치해 있는 한 탁자위에 "공항 사유화는 중단되어야 합니다" 라는 서명용지가 놓여져 있었다. ⓒ 최윤석


24일 오후 전남 여수공항 청사 2층에 위치해 있는 한 탁자위에 "공항 사유화는 중단되어야 합니다"라는 서명용지가 놓여 있었다. 그 서명용지에는 한국공항공사 노동조합에서 "공항 사유화 중단"를 요구하며 국민들의 서명을 받는 것이었다.

서명용지에는 수십명이 넘는 시민들이 서명을 한 상태였다. "공항 사유화"에 반대하는 시민들은 적극적으로 서명에 동참했고 자신의 이름과 주소, 개인 전화번호를 적어놓았다. 하지만 서명에 동참한 시민들은 자신의 중요한 개인정보가 아무렇게나 방치된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서명용지가 놓여있는 탁자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서명행사와 관련된 노조관계자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서명용지에 적혀있는 한국공항 노동조합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자 노조관계자는 "절대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며 "아마 담당자가 잠시 자리를 비운 것 같으니 확인 후 즉시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 서명자들의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가 씌여져 있는 서명용지가 탁자위에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다. ⓒ 최윤석



하지만 기자가 사진을 찍고 서명용지에 적혀있는 내용을 다른종이에 옮겨적고 서명용지를 한장 한장 넘겨보면서 서명자의 주소와 개인 전화번호를 꼼꼼히 살펴봤지만 긴시간 동안 노조관계자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공항 내 어느 누구도 제지하지 않았다.

만약 누군가가 악의적인 마음을 먹고 개인정보가 담긴 서명용지를 가지고 간다고 해도 아무도 막을 사람이 없었다. 이렇게 수많은 시민들의 소중한 개인정보들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었다.

기자가 서명용지에 적혀있는 전화번호를 무작위로 선택해 전화를 걸어 이름과 주소를 확인했다. 그리고 서명자에게 상황을 설명하자 그는 상당히 당혹해했다.

그는 "공항이 매각되어 사유화 된다면 이용료 폭등과 같은 폐해가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노조의 주장에 동의하였기 때문에 내가 직접 서명한 사실이 있다"며 서명 사실을 확인 시켜줬다.

그는 이어 "노조의 주장에 동의한다는 뜻에서 서명용지에 썼던 나의 개인정보가 아무렇게나 방치되고 있고 더군다나 기자인 당신이 서명용지에 적힌 나의 개인정보를 통해 전화까지 걸었다는 사실에 정말 할 말이 없다"며 상당히 당혹해했다.

그는 또 "개인정보 유출이 심각하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내가 직접 당하니 무섭다는 생각까지 든다"며 "이렇게 무책임하게 개인의 소중한 정보를 방치한 그들을 국민들이 어떻게 믿고 지지하겠냐"며 노조를 강하게 성토했다.

한국공항공사 노동조합 여수지부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공항청사 내 탁자에 서명용지를 가져다 놓은 것은 노조의 공식적인 서명캠페인이 끝난 18일 이후부터이며 어디까지나 '공항 사유화'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함"이라며 서명 용지를 둔 이유를 밝혔다.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가 담겨있는 서명용지를 아무도 관리하지 않고 방치한다면 누군가에게 고스란히 유출된 위험이 있지 않느냐"는 기자의 지적에 "(한국공항공사 노동조합의) 연락을 받고 서명용지는 이미 회수했으며 개인정보 유출 등에 대한 위험성에 대해서는 미쳐 생각하지 못 했던 것 같다"며 "이번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앞으로는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회수했다"는 노조관계자의 답변과는 달리 서명자들의 개인정보가 적혀있던 서명용지는 기자가 여수공항을 떠나는 시간까지 탁자 위에서 끝내 회수되지 않고 있었다. 1시간 30분이나 그렇게 방치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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