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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함과 스산함이 함께한 고향 가을

등록|2008.10.25 20:02 수정|2008.10.25 20:02
가을이라 가을바람 / 솔솔 불어오니
푸른 잎은 붉은 치마/ 갈아 입고서
남쪽 나라 찾아가는/ 제비 불러 모아
봄이 오면 다시 오라/ 부탁하노라.  <가을> -백남석 노랫말 현제명 작곡

가을이라 가을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고향은 벌써 가을을 지나고 있었다. 감은 홍시가 되어 빨갛게 익었고, 아내와 제수씨는 장대로 저 높이 달려 있는 홍시를 땄지만 떨어지는 홍시를 받지 못하여 그만 뭉게져버렸다. 뭉게진 홍시지만 단맛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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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 따는 아내와 제수 ⓒ 김동수


▲ 아내가 딴 감이다. 홍시가 다 된 감이 땅에 그냥 떨어지는 바람에 뭉게져버렸다. ⓒ 김동수


막내 녀석이 엄마 따라 홍시를 따겠다고 나선다. 하지만 자기 키에 비하여 서너배나 긴 장대를 이길 수 없다. 허탕이다. 허탕이지만 열심이다. 어디든 빠지지 않고 나서는 막내 녀석을 막을 수가 없다.

▲ 엄마가 감 따는 모습을 보고 자기도 따 보겠다고 나선 막내. 하지만 하나도 따지 못했다. ⓒ 김동수


바람조차 쓸쓸한 가을이 고향 하늘 아래 펼쳐지고 있었다. 나무에 달린 몇개 되지 않는 단감이 가을 하늘과 만났지만 풍성함보다는 쓸쓸함을 준다. 지난 여름 내리쬐는 뙤약볕을 이겨냈지만 비가 오지 않아 씨알이 작다. 작은 씨알이지만 무농약이라 한 입에 넣었다. 아삭아삭하는 소리와 함께 입안에 단맛이 스며 들어왔다.

▲ 가을 하늘과 만난 단감 나무다. 거의 다 따버린 단감이다. 풍성함보다는 왠지 스산한 느낌이 들었다. ⓒ 김동수


올해 고추 농사는 별로다. 비 때문이다. 여름가뭄이 가을까지 이어졌다. 다른 해같으면 서리가 내리면 고추를 뽑았지만 올해는 벌써 뽑았다. 한 놈씩 뽑혀 올라오는 모습을 보면서 주인 잘못 만나 물 한 모금 제대로 마시지 못했는데 미안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이 놈들 때문에 내년 고춧가루와 고추장 걱정을 하지 않으리라. 가만히 생각하니 올해는 고추를 심기만 했지 딴 적이 없다. 다 어머니께서 하셨다.

▲ 고추 나무를 뽑았다. 다른 해 같으면 고추를 더 딸 수 있었지만 올해는 여름부터 가뭄이 들어 작황이 좋지 않아 빨리 뽑았다. ⓒ 김동수


고추를 다 뽑고나서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께서 검은콩을 말리고 계셨다. 검은콩을 심지 않았는데 궁금했다. 큰 형님이 조금 주셨다고 했다. 두 되 밖에 되지 않지만 나누어 먹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검은콩을 밥에 넣어 먹으면 맛있다. 콩은 농약을 치지 않기 때문에 무엇보다 친환경 식품이다.

▲ 어머니께서 검은콩을 말리고 있다. ⓒ 김동수


메주에 곰팡이가 피었다. 깔린 볏짚 위에 누워있는 메주는 생명 그 자체다. 간장과 된장으로 거듭나기 위하여 해님과 공기, 많은 미생물이 만나 사람에게 사람이 결코 줄 수 없는 선물을 메주는 준다. 자연은 이토록 귀한 생명을 선물하지만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못생긴 얼굴을 메주같이 생겼다고 하지만 메주는 어느 누구보다 귀하다.

▲ 메주에 벌써 곰팡이가 피었다. 나쁜 곰팡이가 아니라 생명을 주는 곰팡이다. ⓒ 김동수


가을걷이가 끝낸 논은 풍성함보다는 스산함 마저 들었다. 새싹이 보이지만 이 놈들은 아버지와 어머니 처럼 주인에게 나락을 선물할 수 없다. 겨울을 이겨낼 수 없기 때문이다. 서리가 내리면 파릇파릇한 싹은 한 순간 메말라 생명을 놓는다.

▲ 벼 베기가 끝난 논은 왠지 헹하다. 싹이 다시 나고 있지만 저들은 생명을 이어가지 못한다. 겨울을 날 수 없기 때문이다. ⓒ 김동수


가을은 풍성함이지만 풍성함을 다 준 가을은 스산하다. 스산한 가을이 고향을 찾아왔다. 스산한 가을은 겨울로 가는 길목이다. 풍성함과 스산함이 함께 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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