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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쓴 겹말 손질 (44) ‘지킴’과 ‘보호’

[우리 말에 마음쓰기 461] ‘지켜 주고 보호해 주리라는’ 다듬기

등록|2008.10.27 11:29 수정|2008.10.27 11:29

.. 어머니가 언제나 우리를 지켜 주고 보호해 주리라는 믿음, 그 어리석음. 어머니에게도 수줍은 열일곱 살이 있었고, 서른이 있었다는 걸, 그러기에 쉰이 되시고 예순이 되어 가신다는 걸 나는 이제야 실감한다 ..  《신경숙-아름다운 그늘》(문학동네,1995) 111쪽

 “있었다는 걸”은 “있었음을”로 다듬고, “되어 가신다는 걸”은 “되어 가심을”로 다듬습니다. ‘실감(實感)한다’는 ‘느낀다’나 ‘깨닫는다’나 ‘살갗으로 느낀다’로 손질합니다.

 ┌ 보호(保護)
 │  (1) 위험이나 곤란 따위가 미치지 아니하도록 잘 보살펴 돌봄
 │   - 보호를 받다 / 중소기업의 보호가 시급하다 /
 │  (2) 잘 지켜 원래대로 보존되게 함
 │   - 민족 유산의 보호 / 문화재 보호
 │
 ├ 지켜 주고 보호해 주리라는
 │→ 지켜 주리라는
 │→ 지켜 주고 보살펴 주리라는
 │→ 지켜 주고 사랑해 주리라는
 │→ 지켜 주고 어루만져 주리라는
 └ …

 한자말이 일으키는 말썽은 여럿입니다. 이 가운데 가장 크다 할 만한 말썽이라면, 알맞고 제대로 쓰이는 토박이말 뜻과 쓰임새를 흐리멍덩하게 한다는 대목입니다. 우리들은 예부터 이제까지 ‘지키다’ 한 마디로 우리 삶을 잘 여미어 왔습니다. 비슷한 뜻과 쓰임새로 ‘돌보다’와 ‘보살피다’를 썼고, ‘아끼다’와 ‘사랑하다’와 ‘감싸다’와 ‘껴안다’와 ‘어루만지다’ 같은 낱말을 때와 곳에 따라서 알맞춤하게 쓰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한자말 ‘保護’가 이 땅에 들어온 뒤로는 이 모든 토박이 낱말이 자취를 감출 판이 되었습니다. 마치 그동안 우리 말 가운데 ‘保護’라는 한자말이 가리키는 뜻으로 쓸 만한 낱말이 하나도 없는 듯 여기면서.

 ┌ 보호를 받다 → 보살핌을 받다
 ├ 중소기업의 보호가 시급하다 → 중소기업을 하루빨리 지켜야 한다
 ├ 민족 유산의 보호 → 겨레 유산 지키기
 └ 문화재 보호 문화재 지키기 → 문화재 돌보기

 국어사전에서 ‘보호’ 뜻풀이를 찾아보면 ‘보살피다-돌보다-지키다-보존’ 이렇게 네 가지 낱말이 쓰입니다. 그러면 ‘보살피다-돌보다-지키다-보존’은 어떤 뜻이냐, 다시 한 번 국어사전을 찾아봅니다.

 먼저 ‘보살피다’를 찾아보면, “정성을 기울여 보호하며 돕다”로 풀이합니다. ‘돌보다’를 찾아보면 “관심을 가지고 보살피다”로 풀이합니다. ‘지키다’를 찾아보면 “침해당하지 아니하도록 보호하거나 감시하여 막다”로 풀이합니다. ‘보존(保存)’을 찾아보면 “잘 보호하고 간수하여 남김”으로 풀이합니다.

 ‘보살피다’가 ‘보호’이고, ‘보호’가 ‘보살피다’인 셈이며, ‘돌보다’와 ‘보살피다’가 같은 말이고, ‘지키다’는 또 ‘보호’이며, ‘보존’ 또한 ‘보호’와 같은 말인 셈입니다.

 어쩌면, ‘보호’나 ‘보존’ 같은 한자말을 끌어들인 지식인들은 우리 말과 글을 올바르게 쓸 줄을 모르거나 올바르게 쓰고 싶지 않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러면서 이 나라에서 국어학을 파고들거나 갈고닦는 이들은 우리 말과 글을 알뜰히 살피거나 보듬는 일에 게으르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과 글을 ‘지키’거나 ‘돌보’거나 ‘보살피’거나 ‘간수’할 마음은 없이, 한자문화권이라는 허울만 ‘보호’하거나 ‘보존’하려는 마음이 아니었나 궁금합니다.

 ┌ 자연보호 (x)
 │
 ├ 자연지키기 / 자연돌보기 / 자연보살피기
 ├ 자연가꾸기 / 자연살리기
 └ 자연사랑

 아주 흔히 쓰는 ‘자연보호’라는 외침말은 ‘자연지키기’부터 ‘자연사랑’까지 두루두루 담아내는 듯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자연보호’를 무엇이라고 느끼거나 받아들여서 살아가고 있는가를 헤아린다면, ‘자연보호’는 ‘자연지키기’도 ‘자연살리기’도 ‘자연사랑’도 못 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뜻과 느낌을 두루 담는 듯 생각하지만, 정작 어느 한 가지도 제대로 담기지 못하는 ‘자연보호’입니다. 우리가 쓰는 한자말이 이와 같은 모습이요 이러한 얼거리라고 느낍니다.

 이제라도 우리들이 할 일은 ‘자연지키기’여야 합니다. 또는 ‘자연살리기’여야 합니다. 또는 ‘자연가꾸기’여야 합니다. 또는 ‘자연사랑’이어야 합니다. ‘자연지키기’를 하려고 한다면 저절로 ‘자연살리기’와 이어지고 끝내 ‘자연사랑’이 됩니다. ‘자연사랑’을 하니 스스럼없이 ‘자연돌보기’와 ‘자연가꾸기­’를 하게 됩니다.

 우리가 쓰는 말부터 알뜰살뜰 풀어내야 합니다. 우리 삶을 담는 말부터 시원시원 뚫어야 합니다. 우리 넋이 스미는 말부터 아름다이 여미어야 합니다. 이러는 가운데 우리 꿈을 펼치고 우리 일에 몸바치며 우리 놀이를 즐길 터전이 마련됩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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