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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직불금 파문...풍작에도 농부들은 속이 탑니다

농부의 한숨-애물단지가 돼 버린 논농사

등록|2008.10.28 10:58 수정|2008.10.29 12:19
요즘 우리 동네는 추수가 막바지에 접어들었나 봅니다. 일손이 없어서 그런 건지, 영농기계화가 되어서 그런 건지 모르지만, 낫을 들고 벼를 베는 모습을 볼까 기대했는데, 아침저녁 출퇴근길에 잠시나마 볼 수 있는 모습은 콤바인으로 수확하는 모습밖에 없더군요. 그나마 뒷짐을 지고 논두렁에 서 계시던 어느 어르신이 콤바인이 미치지 않는 둥그런 모서리에 한 단도 되지 않을 벼를 베는 모습은 콤바인을 몰아본 적이 없는 촌놈에겐 정겹게 다가왔습니다.

애물단지-농부의 한숨
- 고기복
똥강아지 손주들
호한 마마 넘기듯
병충해에 태풍까지 다 견뎌
한 백성 멕여 살릴 장한 들녘

애기 똥싼 듯
좌아악하니
싸발린 황금 황금

그리고

장한 들녘
푹 꺼지는 한숨 한숨
드러눕는 수매가

황금변은 쾌변이라
냄새에도 싱글벙글한다지만,
애기똥밭인냥 누런 들녘 언저리엔
향긋한 풍작에도 울성 글성

세계화의 오늘은
향긋한 황금도 버려야 할 꿈.
애물단지일 뿐...
콤바인을 모는 농부나 낫을 들고 계시던 어르신이나 어떤 심정일까 가늠해 봤습니다. 논농사를 짓지 않는 입장에서도 쌀 직불금이니 뭐니 하는 소식에 맘이 편치 않은데, 정작 농사를 짓는 분들은 속이 더 타들어갈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쌀 수매제도가 없어져 벼농사를 짓지 않는 입장에서는 요즘 쌀 한 가마가 얼마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대형마트에서 도정한 쌀 20kg들이 포장이 4만원은 넘게 줘야 하는 걸로 봐서, 15만원 받고 팔면 잘 파는 것일 거라는 짐작은 해 볼만 합니다.

제가 사는 곳은 도농지역이라 그런지 종종 아파트 게시판에 비료 판매 안내도 나오고, 종자 안내도 나옵니다. 파종이 막 시작되던 봄 어느 날엔가, 농협에서 조합원들에게 단체 구매 신청을 받는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는데, 허리가 구부정하신 어르신이 복합비료와 요소비료 가격이 적혀 있는 걸 보고, "무슨 놈이 비료 값이 해년마다 올라" 하시며 역정을 내시던 것을 들었던 기억이 또렷합니다.

아마 어르신께서 역정을 내셨던 비료 값만 아니라, 농약 값, 품삯도 만만치 않게 올랐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쌀값은 오르기는커녕, 미국산 쌀 수입이다 뭐다 하면서 점점 떨어지다 보니, 정부에서 쌀 직불금이다 뭐다 하면서 생색낸다고 했던 건데, 그나마 있는 놈들이 다 해먹었으니 어디 농사짓는 재미가 나겠습니까?

▲ ⓒ 고기복


그나마 제 논에서 농사짓는 농부들이라면, 자식들 앞으로 보낼 쌀 가마라도 챙기며 스스로 위로라도 하시겠지만, 남의 논 빌어서 농사짓는 농부들이야 어디 농사짓고 살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평생 농사만 짓고 오신 분들이 땅을 놀리시기엔 맘 한 구석이 편할 리 없습니다. 한 마디로 가을에 속 터지는 거지요.

속 터진 감가을이 터졌다. 속도 터졌다. 보는 이의 ⓒ 고기복


농사를 짓지 않고 산 지 이십 년이 넘지만, 큰 태풍이 온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가장 먼저 걱정되는 게 농작물입니다. 도시에 살고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촌놈입장에서는 요행 그 큰 태풍을 견딘다 해도 거대자본 시장의 논리를 거스를 수 없는 농촌 현실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제가 존경하던 한 지인은 3년 동안 머물던 어느 농촌에서 했던 경험을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곳의 농부들. 논을 준경작지로 허가받아 밭 작물을 심어보기도 하고, 손이 너무 많이 가므로 감당할 수 없어 다시 물대어 벼를 심기도 하고...결국 유휴지로 한숨과 함께 그냥 두기도 하고... 그들의 절망에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하고 도망쳤습니다. 그들 한숨 밟고 올라서는 오늘의 세계화!" 라고.

올 가을에는 풍작에도 한숨만 내쉬는 농부들이 없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덧붙이는 글 쌀 수매제도는 2005년도에 폐지되어, 쌀 농사를 짓는 분들의 소득 보전이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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