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어린이책에 함부로 쓰는 영어 한 마디

[우리 말에 마음쓰기 462] ‘씨’와 ‘유전자’와 ‘DNA’

등록|2008.10.28 10:47 수정|2008.10.29 11:47
.. 특수한 DNA(디앤에이)를 가지고 태어났나? 그런데 더 이상한 건 왜 잘난 아들들이 모두 우리 엄마 친구 아들들이지? 그럼 내가 못난 게 아니고, 나를 뭐든지 잘하는 아들로 못 낳은 엄마 잘못이야. 엄마나 아버지의 유전자가 안 좋은 거야 ..  <엄마 친구 아들>(노경실, 어린이작가정신, 2008) 29쪽

‘특수(特秀)한’은 ‘남다른’이나 ‘뛰어난’이나 ‘남달리 뛰어난’으로 다듬습니다. “더 이상(異常)한 건”은 “더 궁금한 대목은”이나 “더 모르겠는 일은”이나 “더 알쏭달쏭한 일은”이나 “더 얄궂은 대목은”으로 손보고, “못난 게 아니고”는 “못나지 않았고”로 손보며, “안 좋은 거야”는 “안 좋은 탓이야”나 “좋지 않아서야”로 손봅니다. “엄마나 아버지의 유전자”는 “엄마나 아버지 유전자”로 손질합니다.

 ┌ 디엔에이(DNA) : 유전자의 본체 (디옥시리보 핵산)
 ├ 유전자(遺傳子) : 생물체의 개개의 유전 형질을 발현시키는 원인이 되는 인자
 │
 ├ 특수한 DNA(디앤에이)를 (x)
 └ 엄마나 아버지의 유전자가 (o)

영어를 쓰는 나라밖 사람들은 ‘DNA’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한글을 쓰는 나라안 사람들은 ‘유전자’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알파벳 ‘DNA’는 ‘디엔에이’로 읽습니다.

요즈음 우리 나라는 영어를 안 쓰면 마치 덜 떨어지거나 못난 사람으로 대접받습니다. 어른뿐 아니라 어린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막 태어난 아기를 보며 “튼튼하게만 자라 다오” 하고 이야기를 하거나 “무럭무럭 자라거라” 하고 이야기를 하지만, 하루라도 한글을 일찍 떼게 하려고 애쓰는 한편, 아직 어릴 때부터 영어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생각을 넘어 몸으로 보여줍니다. 어린아이는 누구든 어떤 말이든 자기가 살아가는 터전에서 쓸 말 한 가지는 잘 배우기 마련이기에, 아주 어릴 때에는 한글이든 영어든 쉽게 뗍니다. 처음 떼는 이 말이며 글로, 앞으로 살아가며 품을 자기 생각과 넋과 얼과 마음 바탕을 이루어 놓습니다. 그래서 처음 영어를 배운 아이들은 영어로 생각을 하고 말을 합니다. 한글과 우리 말을 배운 아이들은 우리 말로 생각하고 한글로 제 생각을 풀어놓습니다.

말은 쓸모에 따라 배우게 되고, 찾을모에 따라 익히게 됩니다. 어려서 배우지 않았어도 뒷날 자기한테 영어가 그지없이 크고 높다면, 스스로 찾아서 배우고 익힙니다. 외려 이때에는 더 부지런히 배우고 잘 익힙니다. 그렇지만 너무 어릴 적에 두 가지 말을 섞어서 가르친다면, 아이는 생각과 말이 어수선해지고 맙니다. 영어로 생각하지만 한국말로 이야기를 해야 하니. 한국말과 영어가 뒤섞인 채 생각을 하고, 두 가지 말이 뒤섞인 채 말을 하니.

어른들은 겉으로는 ‘착하고 튼튼하게’ 하고 말하지만, 속내는 달라요. ‘남보다 더 지식을 많이 쌓고 돈도 많이 쌓으며 살기’를 바랍니다. 무엇이든 내 아이만 더 잘하거나 더 잘되기만 꿈꿉니다.

이러면서 아이들은 마음이 멍들고 생각이 찌들고 넋이 자라지 못합니다. 말은 말대로 엉성해지는데, 엉성해진 말을 글쓰기 학원에 넣고 웅변 학원에 넣는다고 달라질 수 없어요. 처음부터 마음밭을 엉망으로 들쑤셔 놓았으니, 흐트러진 마음밭 추스르기를 하지 않고 또다른 학원이며 과외며 유학이며로 몸바탕까지 깨어 놓으면, 아이는 아이다움을 잃는데다가 사람다움을 깨우치지 못합니다.

한국사람으로 한국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우리 말과 글을 옳고 바르고 알맞고 살갑게 쓰기도 해야 할 터이나, 말에 담아낼 사랑과 믿음과 나눔 또한 알맞춤하며 애틋하고 깊고 너를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식은 수두룩하게 담긴 말이요 글이지만, 사랑이 없다면? 나불나불 ‘원어민’처럼 읊는 말이요 글이지만, 믿음이 없다면? 잘 먹고 잘 살 뿐 아니라 넘쳐나게 누리고 있으나, 나눔이 없다면? 이런 아이도 아이라 할 수 있는가요. 이런 사람도 사람이라 할 수 있는가요. 지금 우리는 이 땅 이 나라 아이들한테, 바로 우리 아이들한테, 그리고 우리 이웃집 아이들한테 사람으로서 참되게 꾸리고 엮어 나갈 길은 죄 가로막거나 숨긴 채, 사람 아닌 돈으로 크는 길만 열어 놓고 있지는 않습니까. 무엇이든 돈이면 다 되도록, 힘이면 뚫리도록, 이름값이면 높이게 되도록 바꾸거나 뒤틀어 놓지 않습니까.

 ┌ 남달리 좋은 씨를 받아 태어났나?
 └ 엄마나 아버지 바탕이 안 좋은 탓이야

영어로 ‘DNA’라 하고, 한자말로 ‘遺傳子’라 가리키는 무엇인가를 나타낼 만한 마땅한 토박이말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릅니다. 꼭 그 말에 걸맞는 토박이말은 아직 없어서 새말을 빚어내야 하는지 모르며, 새말 짓기가 너무 힘들면 ‘디엔에이’든 ‘유전자’이든, 이 낱말 그대로 써야 하는지 모릅니다.

다만 한 가지, 예부터 우리들이 써 온 낱말이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씨’. 또는 ‘씨앗’.

 ― 씨 / 씨앗 / 밑씨 / 씨알

우리한테 우리 말로 우리 생각을 키우고 우리 넋을 담아내려는 마음씨가 있다면 ‘씨’라는 낱말을 살려서 씁니다. 또는 ‘씨’를 밑말로 삼아 앞뒤에 알맞는 꾸밈말을 붙여서 새롭게 낱말을 빚어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북돋우고, 우리 손으로 우리 말을 가꾸며, 우리들 누구나 우리 깜냥껏 우리 말을 껴안고자 한다면.

어느 옛문학에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 하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임금님 씨”가 따로 없고 “백성들 씨”가 따로 없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씨를 내고, 어머니는 씨를 받아들여 몸에 있는 밭에서 새 목숨을 빚어낸다고 했습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씨’ 한 마디에 뭇 목숨을 일으키는 바탕이 있음을 담았고, 한 사람을 이루는 바탕이 무엇인가를 가리킬 때 썼습니다.

씨돝과 씨암탉, 볍씨와 풀씨, 씨받이와 씨뿌리기, 여러 가지 말을 곱씹어 봅니다. 예부터 익히 써 왔을 뿐 아니라, 두루 쓰고 깊이 헤아리던 ‘씨’가 이제는 왜 안 쓰이는가를, 왜 뒷전으로 밀리는가를 되짚어 봅니다. 사람 목숨이 아주 껍값이 되고, 우리 손으로 우리 밥거리를 키워내지 않는 가운데 ‘씨’ 또한 아주 푸대접이요 껍값이 되면서, 이 낱말마저 우리 품에서 멀어져 가지 않느냐 싶습니다.

콩씨든 박씨든 알뜰히 갈무리하던 우리들 마음결은 차츰 잊히거나 사라집니다. 풀씨뿐 아니라 사람씨도 알뜰히 여기어, 사람한테는 위아래가 없고 일자리에도 높낮이가 없으며 배움에도 크고작음이 없다고 하던 우리 삶은 뿌리가 뽑혔다고 할 만합니다. 나누는 사랑이 아니라 자지보지 놀이만이 사랑이 되고, 함께하는 믿음이 아니라 외곬로 치달아 이웃을 깎아내리는 믿음이 되며, 서로서로 골고루 가지게 되어 기쁜 나눔이 아니라 부자가 되어 떡고물 조금 떼어 주면 그만인 나눔이 되어 버렸습니다. 세상이 흔들리고 삶이 뒤바뀌었습니다. 흔들리는 세상에서 말이 안 흔들릴 수 없고, 뒤바뀌는 삶인데 말이 안 뒤바뀔 수 없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어린이책 글월 하나에 가벼이 ‘DNA’ 한 마디 튀어나왔다고 여길 수 있고, 요새 아이들이야 워낙 영어 배우기를 일찍부터 하니까 이런 낱말을 보아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지나치리라 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모습,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된 아이들 매무새가 몹시 무섭습니다. 두렵습니다. 안쓰럽습니다. 딱합니다. 말 한 마디라고 가벼이 여기게 되는 매무새가 무섭고 두렵습니다. 우리 삶을 아름다이 추스르는 길에는 자기 곁에 늘 도사리고 있는 작은 일 하나부터 단단히 붙잡고 살뜰히 보듬는 데에서 비롯함을 놓치고 있으니 안쓰럽습니다. 부스럼 하나라고 업수이 여겼다가 몸이 아예 망가지게 되기에 딱합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