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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동영상] 동영상 보고 갑자기 곰인형 때리는 아이

옳고 그름의 가치관 혼란 속, 생각없이 미디어 폭력 받아들이는 아이들

등록|2008.10.29 13:36 수정|2008.10.29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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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애정 장면 본 아이는 어떤 반응 보일까? ⓒ 윤태



놀부를 칼로 죽이고 어두운 곳에 버린다고 대답하는 7살 아이

제가 독서토론 지도하는 7살 남자아이가 있는데요. 착하고 평범하며 귀여운 아이입니다. 그런데 토론을 하다 보면 좀 엉뚱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를 들어 "욕심 많은 놀부와 가난한 흥부가 잘 지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물어봤습니다. 그러면 놀부가 욕심을 버리고 흥부에게 나눠주고 사이좋게 지내면 된다고 대답하면 좋을텐데 이 아이는 "놀부를 잡아다가 칼로 찌르고 어두운 곳에 버려요"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왜 칼로 찌르느냐고, 어디서 그런 것을 봤느냐고 물어보면 컴퓨터 게임과 빌려온 DVD 게임에서 봤다며 자기 방에 있는데 보여줄지를 묻습니다. 이 아이 어머니는 바쁜 직장 생활 때문에 할머니께서 돌봐주고 계십니다. 연로한 할머니가 이런 부분을 통제하기란 사실상 어렵습니다. 마냥 귀엽기만 한 손자니까요. 어머니께 이 사실을 말씀드리고 통제해주실 것을 당부드렸습니다.

며칠 전에 발생한 서울 논현동 고시촌 살인사건 있죠? 언론보도에 따르면 범인 정씨가 폭력, 액션 영화를 보고 멋있다고 생각하면서 가스총, 칼 등의 범행도구를 준비한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나타났습니다.

이 밖에 게임이나 영화 등 미디어 속 장면을 모방해서 발생한 크고 작은, 끔찍한 사건, 범죄가 여럿 있었습니다. 자세히 언급하진 않겠습니다.

오늘은 바로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미디어가 아이에게 주는 영향을 직접 실험해본 건데요. 부모님 특히 취학전 아이들을 두신 부모님들은 주의 깊게 동영상을 보시고 자녀들의 향후 교육 자료로 활용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게임이나 만화 영화 등 미디어를 통해 폭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 윤태


사랑장면과 폭행장면 중 폭행에 더 관심이 많은 아이
-폭행 본 후 이유도 모르고 곰돌이 인형 때리는 아이

곰인형을 칼로 찌르고 발로 때리는 장면과 뽀뽀해주고 쓰다듬어주는 장면을 각각 연출해 동영상에 담았습니다. 컴퓨터에 옮겨 놓고 4살 아이(생후 39개월)에게 아무런 설명 없이 이 장면을 풀(Full) 화면으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뒤에서 몰래 카메라 형식으로 아이의 표정 등 반응을 살핍니다. 관찰 결과 곰인형을 예뻐해줄 때는 '실실' 웃더니 폭행하는 장면에서는 깔깔거리며 웃었습니다. 폭행 장면에 더 흥미를 느끼고 관심을 더 많이 보입니다.

이 동영상을 보여준 직후 실험장소인 거실로 내보냅니다. 거실에는 방금 전 동영상에서 봤던 곰돌이 인형과 플라스틱 칼이 놓여 있습니다. 저는 미리 빠져나와 저쪽 방에서 관찰카메라 형식으로 아이의 행동을 담습니다.

아이는 곰돌이 인형이 나쁘다며 집어 던집니다. 왜 나쁜지 물어봐도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계속 곰돌이를 미워합니다. 폭행당하는 동영상을 보고 곰돌이가 뭔가를 잘못해 매질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가 평소 잘못 했을 때 엄마 아빠에게 혼나는 장면과 오버랩되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아이의 판단 같습니다.(인형을 때리는 역할이 제가 아닌 제 3자의 낯선 어른이었다면 아이가 그 낯선 어른을 무서워했을지도 모르죠.)

엄마는 '곰돌이 인형 사랑해야지'라고 하고 아이는 '안사랑해'라고 반박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실랑이가 벌어집니다. '사랑한다'는 말에 더욱더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판단은 어느 정도 정립돼 있는데 왜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이유를 잘 모릅니다. 그것을 따지기 앞서 어떤 현상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고 자신화하여 행동으로 표출하는 경우가 많죠.

해당 동영상을 다시 한 번 보여주고 반응을 보니 조금 수그러들긴 했지만 여전히 곰돌이 인형에 거부감이 있음을 실험 동영상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아이는 곰인형을 사랑하고 쓰다듬어 주는 장면도 있는데 왜 자꾸 폭력 장면에만 신경을 쓸까요? 남자아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액션이 큰 폭력장면이 아이들이 좋아하는 단순한 칼싸움 놀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이 부분은 좀더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이번에는 곰인형을 사랑해주는 동영상만 연거푸 3번 보여줍니다. 보여주면서 "아빠가 곰인형을 예뻐해주네"라는 멘트를 각각 한번씩 해줍니다. 아이가 약간 지루해하는 표정을 보입니다.

꾸준한 관심과 대화 등 부모의 손길만이 아이를 바르게

이 동영상을 보고 나서 아이는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곰인형을 껴안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요? 왜 껴안았느냐고 물으니까 "곰인형이 나빠서"라고 대답합니다. 왜 나쁜지에 대해서는 설명을 못합니다. 마음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행동은 긍정적으로 변화됐는데 마음은 여전히 곰돌이를 거부합니다.

마지막으로 곰돌이를 사랑하는 동영상을 두 번 보여주면서 왜 곰돌이를 때리면 안되는지, 왜 사랑해야 하는지 등을 예를 들어 한참을 설명해줍니다. 부모의 관심과 사랑과 대화가 아이에게 집중된 후 아이는 확실히 달라집니다. 곰돌이에 대한 반감은 완전히 없어지고 곰인형을 업고 재우기까지 합니다.

이 시기 아이들은 옳고 그름에 대한 도덕적 가치, 판단은 어느 정도 서 있지만 그것이 왜 옳고 그른지를 따져보거나 파악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악 기준의 가치관에서 혼란을 겪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시기에 폭력이나 엽기적인 장면들을 미디어에서 접하고 그것을 받아들여 자신화하면 문제가 됩니다.

이번 실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아이는 폭력 장면을 보면서 옳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왜 그렇게 하면 안되는지 이유를 따지지 않고 흡수, 모방했습니다. 안좋은 것을 그렇게 흡수했더라도 부모님께서 자세한 대화와 관심과 어깨 다독이는 사랑으로 아이를 훈육한다면 바로 잡아나갈 수 있습니다. 위 동영상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 일반화할 수는 없습니다. 이와 다른 사례도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실험이 생각할 만한 참고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결국 엄마의 관심과 사랑으로 아이는 곰돌이와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었다. ⓒ 윤태

덧붙이는 글 티스토리 블로그에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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