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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

가장 암울하던 시절에 부르던 어느 젊은이들의 노래

등록|2008.10.30 14:00 수정|2008.10.30 14:00
1967년에 젊은 연인들의 헤어짐을 노래한 차중락의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은 앨비스 프리슬리가 1962년에 불러 미국에선 성공하지 못했던 노래였다고 한다.

늦가을 오버코트를 걸치고 필동 쪽에서 우리는 동국대학 쪽으로 걸어올라 가고 있었다. 그 사람은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그 사람의 과 주임교수를 만나 우리 문제에 대한 마지막 조언을 듣기로 한 것이다.

그는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을 부르며 아느냐 물었다. 엘비스가 불렀던 기억은나나 그 사람이 부른 차중락의 노래는 알지 못하였다. 엘비스는 우리나라 최고 여성 상아탑인 이화여자대학에서 공연을 하였고 정숙한 우리의 여대생들이 공연장에서 속옷까지 벗어 던지며 열광한 사건이 있어 여대생들이나 그 미국가수에 대하여 나는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갈색 코트를 입은 그 사람이 부르는 노래는 번안가사도 좋았으나 왠지 내 가슴에 와 닿았고, 우리가 가야 할 곳은 꽤 거리가 있었으나 바쁠 것 없이 한가로이 걷던 차라 가사를 익히며 따라 불렀다. 교수실에 도착하였을 때 이미 이 노래를 혼자서 부를 수 있을 정도였다.

IMG_0110월유신을 보도하는 동아일보 (1972년 10월 18일자) ⓒ 라영수


박정희가 장기집권을 작심하고 개헌을 단행하였고, 얼마 뒤 바로 박정희는 10월유신으로 단말마적인 끝머리를 장식하고 있었다. 4월혁명의 감격이 채 식기도 전에 해방조국의 가장 어두운 시대를 박정희가 열어가고 있었다. 

나는 앞길을 선택하여야 하는 심각한 기로에 서있었고, 결혼문제는 뒤로 밀리는 어려운 너무 무거운 문제들로 짓눌려있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가득 혼기가 차있었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태에 와있어 최후의 결정을 그 사람의 주임교수에게 맡기기로 한 것이다. 

교수실에는 비서학생이 메모지를 보며 말했다. “교수님이 아주 급한 일이 생겨 1시간 이후에 오신다고 연락을 주셨습니다”.

나는 그의 소매를 끌고 나오면서 말했다. “교수님이 줄 수 있는 조언이라면 아마 내가 하는 것과 다름이 없을 거야…. 그도, 이 시대, 이 땅의 남자이니까.”

그리고 교정을 빠져나오며 차중락의 노래를 함께 불렀다.

IMG_02”황혼의 길손” 2회 디지털 카메라 작품전 수상작 ⓒ 라영수


그리고 우리는 돌아섰다.

미쳐 깨닫기도 전에 어언 40년도 넘게 세월은 흘렀다. 그러나 내가 작업하는 PC는 부팅이 되면서 차중락의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이 흘러나오게 되어 있다. 

70년이나 무디어져 온 가슴이언만 아직도 이 노래에 젖어 든다.
덧붙이는 글 '나의 가을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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