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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부수지 말라 읍소에도 와당탕 쿵쾅 환자도 끌어낸 70년대식 철거현장 재현"

[부동산 빈곤층③] '철거폭력' 시달리는 상도4동 사람들

등록|2008.11.03 10:29 수정|2008.11.03 10:54
정부가 '10.21 대책'으로 부동산 살리기에 나섰다. 국민 세금으로 그동안 폭리를 취했던 건설사를 살리는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지만 정부는 "가계 주거부담 완화"라는 명분을 내건다. 더구나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든 폭락하든 항상 주거 불안에 시달리는 빈곤층을 위한 대책은 어디에도 없다. <오마이뉴스>는 몇 평짜리 보금자리에서마저 내쫓기고 있는 '부동산 빈곤층'의 절규를 듣고 대안을 모색해본다. [편집자말]

▲ 서울 동작구 상도4동 산 65번지 달동네 전경. ⓒ 장윤선


"기자를 왜 안 불렀냐고요? 방송사·일간신문 다 연락했지만, 단 한 명도 안 왔어요. 전쟁터와 같은 아주 절박한 순간이었는데. 경찰도 수수방관, 법원 집달관도 우리 편이 아니었어요. 하긴,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서겠습니까. 돈이 없는데."

철 지난 빨간 장미꽃이 파란 잉크를 뿌려놓은 것 같은 가을 하늘과 어우러져 한편의 수채화를 보는 듯했던 10월 29일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4동 산 65번지 재개발 11구역 세입자 예닐곱은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20여 일 전 400명의 젊은 철거용역들이 어머니나 아버지뻘 되는 아줌마, 아저씨, 할머니들에게 어떻게 했는지 하나씩 기억할 때마다 그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10월 10일 오전 순식간에 벌어진 '철거폭력'은 그들에게 뚜렷한 공포의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 10월 10일 금요일 9:00 am

"엄마,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딸아이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가방을 둘러메고 대문을 나섰다. 서울 동작구 상도4동 산 65번지에 살고 있던 김아무개(45)씨는 잘 다녀오라 배웅했지만 전날 우편부가 전달한 '집행문 부여통지'가 께름칙했다. 애를 학교에 보낸 뒤, 그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주민들과 함께 동네 어귀에 집결해 있었다.

"죽여 버리기 전에 다 나와! 나와, 이 XX년들아!"

전투경찰과 같은 색깔의 옷을 입은 건장한 청년 400여 명이 마을을 덮쳤다. 촛불집회를 진압하던 경찰처럼 이들도 세입자들의 얼굴에 소화기를 분사하며 '철거 작전'을 시작했다.

맨 몸뚱이뿐인 50, 60대 여성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밀면 밀렸고, 머리채를 잡아 흔들면 그대로 내동댕이쳐졌다. 청년들이 어머니 뻘 되는 여자들의 목 뒷덜미를 붙잡고 빗물을 받아놓은 널따란 고무대야 속에 죽지 않을 만큼 넣었다 뺐다 했다고 한다. 고문경찰 이근안이 했다던 '물고문'이 바로 그것이었다고.

"내 집 부수지 말라"고 읍소하던 아저씨들에게는 장독대 항아리를 던졌다. 이 동네 사람들의 1년치 고추장, 간장, 된장들이 참혹하게 뒤섞여 버렸다.

얼굴은 찢어졌고 이는 부러졌으며 갈비뼈엔 금이 갔다.

뇌진탕·늑골 골절·수장부 열상·상완부 타박상·흉부 좌늘 관절 좌상·경추부 염좌·양측 족부 찰과상·다발성 타박상·흉부 타박상·다발성 손상·하악관절부 염좌상·눈꺼풀과 눈 주위 타박상·머리덮개 손상 등은 이 동네 세입자들이 그날 용역에게 얻어터지면서 얻은 병명들이다.

▲ 서울 동작구 상도4동 산 65번지 달동네. 지난 10일 용역들이 살던 집을 부쉈다. ⓒ 장윤선


# 10월 10일 금요일 2:00 pm

"엄마, 우리 집 왜 이렇게 됐어?"

여덟 살 꼬마 여자아이는 폐허더미가 돼버린 집 앞에서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아침에 학교 갈 때까지만 해도 분명 있던 집인데, 학교 갔다 왔더니 살던 집이 '건설 폐기물'로 변해 있었다.

"으응. 아저씨들이 우리한테 새 아파트 주려고 헌 집 부순 거야."

김씨는 '헌 집 주고 새 집 받는 두꺼비'에 빗대 둘러쳤다. 목구멍 위로 분노가 치받쳐 올랐지만 애 앞에서 울 수는 없었다. 지난달 29일 기자와 함께 페허가 된 동네를 한 바퀴 돌던 김씨는 13년째 살던 집이 허물어진 현장에서 끝내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정말 억울하고 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동거하던 우리 부부는 이 집으로 이사 온 뒤 결혼식을 올렸어요. 우리 애도 이 집에서 낳았고, 정이 많이 든 집인데. 지붕부터 폭삭 무너져 내리는데, 아, 이렇게 살던 집이 허물어지는구나 했습니다."

▲ 철거된 집에 아직도 남아 있는 딸 아이의 생활계획표. ⓒ 장윤선

20년 전 상도4동 산 65번지 달동네에 들어온 김씨는 1995년 1000만원 주고 이 집을 전세로 얻었다.

토지의 소유주는 왕족의 사당을 관리하는 '사당 관리인'이었다. 그러나 그 땅위에 무허가 주택이 지어졌고, 매매와 전월세 계약도 자유롭게 이뤄졌다. 가옥주가 싼값에 임대해 줬고, 김씨는 가격에 만족해 이 집을 선택했다.

김씨뿐 아니라 이 동네에 둥지를 튼 대개의 사람들은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10만원, 전세 200만원 등 아주 저렴한 값에 전월세를 살고 있다.

그런데 지난 2006년 이 사당관리인이 한 민간주택 건설회사인 S사에 이 일대의 땅을 팔면서 무허가 주택들에 대한 '부당이익금 반환 및 건물 퇴거·철거 소송'이 진행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7년 5월 서울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는 이 동네를 주택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했다. 그해 12월 20일 재개발조합 설립인가가 났고, 이 일대 5만9114㎡(1만7882평)에 대한 재개발 사업이 본격화 됐다.

이 사업에 따라 이 지역에는 용적률 236.69% 이하, 층고 17층 이하 범위에서 56㎡(17평형-임대) 160가구, 79㎡(24평형-일반 아파트) 176가구, 109㎡(33평형) 366가구, 161㎡(49평형) 159가구 등 모두 861가구가 들어설 예정이었다.

아무리 넓은 토지를 소유해도 재개발이 시작되면 아파트 분양권은 소유주 당 1장뿐이다. 동작구청의 재개발사업 진행에 따라 S사는 결과적으로 아무런 이익을 보지 못하게 됐다.

상황이 이쯤에 이르자 S사는 동작구청이 추진하는 재개발사업을 인정할 수 없다며 세입자들과 구청을 상대로 무려 12개의 민사소송과 5개의 행정소송을 냈다.

세입자와 동작구청에 걸린 17개의 민사와 행정소송들

동작구청 도시관리과의 한 관계자는 "S사는 재개발 추진에 제동을 거는 소송을 줄곧 제기하고 있다"며 "이 소송이 다 끝나야만 세입자들에 대한 이주대책도 세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원 소유주인 사당 관리인과 현 소유주인 S사가 동작구청과 재개발조합, 이 지역 세입자들을 상대로 낸 소송은 크게 4가지다.  ▲ 부당이익금 반환 및 건물 퇴거·철거 소송 ▲ 재개발 구역지정 결정취소 소송 ▲ 조합설립인가 취소 소송 ▲ 재개발사업 추진위원회 승인처분 무효 확인소송 등이다.

이 가운데 승소한 '퇴거·철거 소송'을 기반으로 S사는 상도4동 달동네를 철거하고 있다. 철거하는 과정에서 집을 못 비워주겠다고 버티는 세입자들과 용역 사이에 '폭력사건'이 불거졌다.

문제는 이들이 동작구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동작구청이 패소하면 상도4동 세입자들은 얼마 안 되는 주거이전비조차 받을 길이 없게 된다는 점이다. 동작구청이 승소해도 쥐꼬리만한 주거이전비로 적당히 갈 곳도 없지만, 그마저도 받을 길이 끊기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 동네 주민들은 더 애를 태우고 있다.

4인 가족과 장인·장모가 함께 산다는 박아무개(53)씨는 갈 곳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여기 살던 사람, 딴 데 가 살기 어려워요. 저만해도 보증금 150만원에 월세 10만원을 내고 삽니다. 이렇게 5년만 버티면 재기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재개발 때문에 쫓겨나게 되면 정말 갈 곳이 없어요."

▲ 서울 동작구 상도 4동 산 65번지 달동네 철거 예정지역. ⓒ 장윤선

고아무개(54)씨도 마찬가지다. 1996년 사업하던 남편이 70억원 부도를 맞고 파산한 뒤 10년이 넘도록 재기를 못하고있다.

"중학생 늦둥이가 있어요. 아이 책상 옮길 대안만 있어도 이사하겠지만 지금은 그것도 없습니다. 사업에 실패한 뒤 남편은 1년에 생활비 140만원 줍니다. 그걸로는 도저히 생계를 유지할 수도 없는데, 도대체 어디로 가란 말인가요. 저는 죽어도 이 집에서 못 나갑니다."

12년째 당뇨합병증으로 간질환을 앓고 있는 김아무개(53)씨는 집안에 누워 있다 변을 당했다. 갑자기 쿵쾅쿵쾅 포클레인 소리에 깜짝 놀랐으나 기력이 없어 일어나지도 못했다. 용역들은 그에게 나가라 소리쳤지만 그는 눈물로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항상 누워 있어 동네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몰랐다, 그날 젊은이 3명이 절 들것에 싣고 나가 병원으로 보냈다"며 "돌아와 보니 우리 집은 없어졌다, 철거반들이 살던 집에 누워 있는 사람도 쫓아낼 권리가 있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김씨는 같은 동네에 사는 방 두 칸짜리 동생 집으로 일단 거처를 옮겼다. 아내는 파출부로 생활비와 병원비를 번다.

"애엄마가 무척 고생하고 있어요. 아들은 군대에 갔고 딸은 중학교 3학년인데, 전세 400만원에서 20년째 살았는데. 우린 이제 어디로 가나요?"

방안에 있는 연탄 보일러 앞에서 몸무게 50kg도 안 되는 중년의 남자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흐느껴 울었다.

▲ 서울 동작구 상도4동에 살고 있는 김아무개(53)씨. 당뇨합병증으로 간질환 등을 앓고 있는 그는 누운 채로 용역들에게 둘러싸여 들것에 실려 나왔다. ⓒ 장윤선


"죽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입니다"

지난달 10일 폭력사태를 지켜본 나정숙 빈민해방 철거민연합 집행위원장은 "1970년대 철거방식과 전혀 다를 게 없었다"며 "울지 않으려고 그렇게 애를 썼는데도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나 위원장은 "젊디 젊은 사내 아이들이 할머니들에게도 'XX년' 하면서 치고 달려드는데 여기가 민주국가 대한민국이 맞나 싶었다"며 "여성과 노인들이 맞아 쓰러지는데도 경찰과 공무원들은 팔짱을 끼고 수수방관했다"고 분노했다.

그는 "지금으로서는 분명한 생계대책이 설 때까지는 이 자리에서 싸울 수밖에 없다"며 "이 동네 주민들은 밤마다 공포에 시달리고 있지만 이곳을 떠나서는 딱히 갈 곳도 없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힘들지만 버틸 수밖에 없다"고 씁쓸해했다.

자식처럼 의지하며 살던 이들이 청년 용역들에게 맞아 쓰러질 때 윤 할머니(78)는 "이놈들아! 사람 죽이겠다"고 외쳤다. 그러다 윤 할머니도 얻어맞았다. 요즘도 파스를 붙이고 병원에 왕래한다. 윤 할머니는 그날 상황을 한 마디로 전했다.

"죽지 않은 것만 해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 서울 동작구 상도4동 철거예정지에 걸린 플래카드 ⓒ 장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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