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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왔어? 어디 가는 거야? 왜 걸어가?"

[우즈베키스탄 도보횡단기 4] 도보여행 2일(킵차크 -> 망기트)

등록|2008.10.31 11:39 수정|2008.10.31 14:57

망기트 가는 길이른 아침의 모습 ⓒ 김준희


사막 주변이라서 그런지 역시 일교차가 심하다. 어제 낮에는 더위 때문에 분통이 터졌는데 오늘 새벽에는 쌀쌀한 아침 기온 때문에 침대에서 나가기가 싫다. 나를 재워준 집의 할아버지는 어젯밤에 나에게 벽돌처럼 두꺼운 이불을 안겨주었다. '한여름에 이렇게 두꺼운 이불이 필요할까'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 이불 속에서 이른 아침의 게으름을 즐기고 있다.

여기서 망기트까지 25km라고 했으니까 시간은 충분하다. 천천히 일어나서 짐을 정리한 나는 할아버지가 끓여준 차를 몇잔 마시고 감사와 작별의 인사를 했다. 그리고 다시 출발이다. 단 하루 만에 바뀐 주위의 풍경. 어제는 삭막한 사막이었는데 오늘은 도로 양옆으로 푸른 목초지가 펼쳐진다. 그리고 간간히 나타나는 현지인들의 집.

주위 여건이 이렇다면 오늘은 무척 즐거운 도보가 될 것이다. 앉을 만한 곳이 없더라도, 나무 그늘 속으로만 들어가면 훌륭한 휴식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거리의 식당에서 빵으로 아침식사를 때우고 1.5리터 짜리 물 한병을 샀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이런 식당을 '차이하나'라고 부른다.

이 차이하나는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식당인데, 단순한 식당 이상의 역할을 한다. 대부분 넓은 마당에 평상 여러 개와 작은 테이블을 늘어놓고 영업을 한다. 장거리 운전을 하는 운전자에게 잠깐 눈을 붙이는 휴게소가 되기도 하고, 나처럼 배고프고 목마른 사람에게는 거리의 카페가 되기도 한다. 식수와 음료수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매점의 역할도 한다. 나는 아마 앞으로 도보여행을 하면서 이런 차이하나의 도움을 톡톡히 받게 될 것이다.

빵을 먹고 나서자 눈앞에는 아무다리야 강이 펼쳐진다. 제대로 된 강이 아니라 관개사업의 영향 때문에 메말라가는 강이다. 어떤 지점에서는 허연 모래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마치 참혹한 흉터자국을 바라보는 기분이다. 과거에 실크로드의 상인들도 이 강을 건넜을까? 당시에는 이 강도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며 아랄해를 향해서 흐르고 있었을 것이다.

시간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다지만, 이 아무다리야 강은 정말 심하게 변해버렸다. 수십년 전에 구소련에서 아무다리야 강의 물을 목화밭으로 끌어들이겠다고 결정했을 때, 그들은 아랄해가 망가질거라는 사실을 짐작조차 못했을까. 아니면 넓은 땅덩어리 때문에 '아랄해쯤이야'라고 생각했을까.

어느쪽이건 당시의 결정은 지금 우즈베키스탄 국민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어떤 이유에서건 인간이 파괴한 자연의 흔적을 바라본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강 가운데로 바닥이 울퉁불퉁한 부교가 놓여 있다. 나는 핸드카를 밀면서 걷다가 아무래도 바퀴가 걱정되서 통째로 들고 걸음을 옮겼다.

메마른 아무다리야 강을 건너서

메마른 아무다리야 강의 부교곳곳에 강 바닥이 드러나있다. ⓒ 김준희


도보여행을 무사히 마치기 위해서는 이 핸드카의 상태에도 계속 신경써야만 한다. 1200km를 걷는 동안 내 몸이 버텨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이 핸드카도 별 탈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핸드카가 망가지는 경우는 몇가지 안된다. 하중을 견디지 못해서 바퀴축에서 바퀴가 분리되는 경우, 아니면 바퀴를 축에 고정시켜 주는 부품이 부러지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또 다른 이상은 핸드카의 관절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발생할 수 있다. 역시 하중과 덜컹거림을 견디지 못해서 연결부분의 부품이 부러지는 경우다. 이런 고장에 대해서는 나 혼자서도 충분히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정말 심각한 상황은 바퀴 자체가 망가지는 경우다. 바퀴살이 부러지거나 바퀴를 감싼 고무가 심하게 찢어질 수도 있다. 이럴 때 나에게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그때는 배낭을 짊어지고 수리할 수 있는 곳, 그러니까 자동차 정비소 같은 곳으로 달려가는 수밖에 없다. 내가 내 몸상태에 신경을 쓰는 것처럼 핸드카에도 관심을 가져주면 이 녀석도 아마 나에게 그만큼의 보답을 해줄 것이다.

핸드카를 사용하게 된 것은 걸어서 실크로드 전체를 혼자서 주파했던 프랑스의 베르나르 올리비에 덕분이다. 그는 배낭의 무게에서 벗어나기 위해 작은 자전거를 개조해서 손수레를 만든다. 거기에 에브니(EVNI, 미확인 주행물체라는 뜻)라는 센스넘치는 이름을 붙이고 리어카를 끌듯이 끌고 다녔다.

나도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걷는다는 원칙'을 포기하지 않는 범위에서 좀더 체력소모가 적은 방법으로 타협을 본 것이다. 그 덕분에 지금은 비교적 편하게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도 내가 짐작 못했던 부작용이 있다. 핸드카를 한손으로 잡고 걷다보니까 팔이 아픈 현상이 생긴 것이다. 오래 걸어서 생기는 다리의 통증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어쨋건 이것도 신경쓰이는 부분이다. 팔이 아프면 왼손 오른손 바꿔가면서 핸드카를 밀면 되긴 하지만.

지금같은 속도로 걷는다면 한시간에 약 4km가 된다. 이렇게 10시간을 걸으면 40km, 그 정도면 적당하지 않을까. 다리의 통증도 걷는 동안에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니 10시간 걷고, 7시간 쉬고 나머지 7시간 잠을 자면 적당한 분배가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내 몸상태가 최적일 경우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그나저나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자신의 수레에 에브니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나는 이 핸드카에 뭐라고 이름을 붙일까?

현지인의 점심초대를 받다

망기트 가는 길독립기념축제를 준비하는 사람들 ⓒ 김준희


아무다리야 강을 건너자 강변에는 생선요리를 파는 음식점들이 주욱 늘어서있다. 물이 귀한 나라라서 그런지 생선요리는 상대적으로 비싸다. 나를 바라보는 현지인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조용한 강변에 외국인이 나타나서 혼자 걷는 일은 흔하지 않다. 이들에게는 모처럼의 구경거리가 생긴 셈이다.

식당에서 식사하던 사람들이 큰 소리로 나를 부르고 나는 그때마다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아이들도 연신 나를 쳐다보며 웃는다. 혼자서 고독하게 사막을 걷던 어제와는 모든 면에서 대조적이다.

강변을 벗어나자 도로 양옆에는 커다란 나무들이 주욱 서있다. 걷다가 힘들면 나무 그늘에 앉아서 물을 마셨다. 날씨는 화창하고 울창한 나무에서 만들어주는 그늘도 많다. 오늘 갈길이 멀지 않기 때문에 서두를 필요도 없다. 이렇게 도보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하면서 천천히 걸어도 좋을 것이다.

나무 숲을 빠져나오자 버스정거장이 보인다. 정거장은 도보여행하는 사람이 쉬기에 적당한 곳이다. 우선 그늘이 있는데다가 정거장 안에는 의자도 있다. 나는 그 의자에 앉아서 모자를 벗고 주먹으로 다리를 두드리며 쉬었다. 어느새 12시가 넘었다. 그러자 내 옆으로 하나 둘 현지인들이 모여든다.

"어디서 왔어? 어디 가는 거야? 왜 걸어가?"

나는 내가 아는 러시아어를 총동원해서 한국에서 왔다, 누쿠스에서 타쉬켄트까지 걸어간다, 도보여행중이다, 라는 말들을 늘어놓았다.

"밥 먹었어? 우리 집에 가서 같이 밥먹자"

'마흐수드'라는 이름을 가진 중년의 남자가 날 이끈다. 쉬면서 동시에 공짜밥까지 얻어먹다니, 예상하지 못했던 행운이다. 난 고맙다고 말하고 그를 따라나섰다. 큰 길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넓은 집이다. 마흐수드가 집에 들어서며 뭐라고 말을 하자 사람들이 마당 한쪽으로 커다란 식탁을 두개 놓았다. 그리고 그 위로 음료수, 차, 물, 과일 등을 올려놓는다. 간단하게 식사하는 줄 알았는데, 만찬을 벌일 모양이다.

10여명의 마을 사람들이 식탁 주위에 둘러앉았다. 이들 중에서 영어나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없다. 어떻게 의사소통을 해야할까. 말이 안 통하면 그림을 이용해서라도 대화하면 된다. 나는 커다란 우즈베키스탄 지도를 꺼내서 내가 갈 길을 설명했고, 사람들은 지도를 들여다보면서 나에게 이것저것 말해준다.

그러는 사이에도 사람들이 연신 음식을 내온다. 커다란 접시에는 양고기 볶음밥이 가득 담겼고, 큰 대접에는 토마토 샐러드가 그득하다. 누구는 숟가락으로 밥을 먹고 어떤 사람은 그냥 손으로 밥을 먹는다. 이들은 '먹는다'는 표현을 할 때 손가락을 모아서 입에 대고 '쩝쩝' 소리를 낸다. 아마 손으로 음식을 먹는 습관이 만들어낸 제스처일 것이다.

마흐수드는 계속 나에게 고기와 샐러드를 권하고 차를 따라준다. 배불러서 그만 먹겠다는데도 막무가내다. 걷다보면 금방 소화된다면서 계속 음식을 권한다. 에라 모르겠다. 기왕 이렇게 된거 한번 배터지게 먹어보자. 이렇게 작정하고 나도 꾸역꾸역 먹었다. 이들 말대로 망기트까지 걷다보면 다 소화되고 다시 배가 고파질 것이다. 그때는 이 음식들이 그리워질지도 모른다.

쉽게 도착한 작은 도시 망기트

망기트 가는 길나를 초대한 마흐수드와 마을 사람들 ⓒ 김준희


망기트 가는 길볶음밥을 배부르게 먹었다. 옆은 마흐수드 ⓒ 김준희


푸짐하게 밥을 먹고나서 마당에 모여 우리는 단체사진을 찍었다. 나는 가지고 다니던 작은 태극기를 선물로 마흐수드에게 주었다. 망기트까지 차로 태워주겠다는 사람들에게 웃으면서 걸어간다라는 말을 아마 10번은 했을 것이다. 호의를 거절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난 다시 도로로 나와서 길을 걸었다.

작은 도시 망기트에 도착한 것은 오후 3시. 어제와 비교해보면 정말 가벼운 코스다. 나는 천천히 길을 걸으면서 망기트의 거리를 구경했다. 그때 누가 옆에서 튀어나오면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

나는 아까 마흐수드에게 했던 얘기를 이 친구에게 다시 반복해서 들려주었다. 그리고 오늘 밤 잠잘 만한 호텔이 망기트에 있냐고 물었다.

"그냥 우리집에 가자. 내가 재워줄게."

오늘따라 유난히 행운이 이어진다. 그래서 난 '루스탐'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친구를 따라나섰다. 작은 연립주택같은 집이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재래식 화장실은 집 바깥에 있고, 상수도 시설이라고는 현관 옆에 붙은 작은 수도꼭지 하나가 전부다. 씻기만해도 피로가 풀릴텐데, 샤워나 머리감는 것은 엄두를 못내게 생겼다. 짐을 풀고 조금 쉬고나자 루스탐이 나를 이끈다.

"밖으로 나가자. 술 한잔 해야지!"

기나긴 밤이 시작될 것만 같은 기분이다.

망기트에서나를 재워준 루스탐과 그의 가족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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