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아' 다르고 '어' 다른 언어 이야기

"예"와 "야"의 차이

등록|2008.10.31 16:54 수정|2008.10.31 21:14
"아, 그년이 주인이 시켰으면 '예'하고 답하고 일을 해야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손 내젖으며 일 안하겠다는 건 뭐야? 당신 같으면 속이 안 상해?"

참 이럴 땐 웃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사장님이 멱살을 잡으며 '너 베트남으로 돌아 가'라고 해서 억울해서 쉼터를 찾았다"는 똠(22)의 이야기를 들은 후, 똠의 사장과 통화를 하면서 '이건 아이들 장난도 아니고, 서로 핑계거리 찾으며 욕을 해대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사실 똠도 아니고, 똠의 사장도 아니었습니다. 비닐하우스에서 채소를 재배하는 농장에서 일하는 다른 나라 노동자들이 밤마다 술을 마시는 통에 골이 날대로 나 있던 똠의 사장은 중년 여성(55)이었습니다.

사장에 의하면, 사람을 고용해 쓰는 입장에서 직원들이 매일 밤 술을 마시고, 아침까지 풀풀 술 냄새를 풍기며 일하는 것이 여간 못마땅한 것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난 수요일(29)에 매일 밤 술판을 주도하는 직원 한 명을 해고시키고, 직원들을 채근할 셈치고, 잘 간섭하지 않던 작업장에 나갔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작업을 시작할 즈음에 사장은 키가 큰 사람에겐 조금 높은 곳의 비닐을, 키가 작은 똠에겐 그보다 조금 낮은 곳의 비닐을 걷어 올리는 작업을 시켰다고 합니다. 작업량으로만 보면 낮은 곳에 있는 비닐을 걷는 사람이 조금 힘들다고 합니다. 문제는 거기에서 발생했습니다.

사장이 작업을 지시하자, 똠이 "야"라고 하며, 손을 내젖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속이 상해 있던 사장은 똠이 일이 조금 힘들다고 자신의 작업 지시를 거부한다고 생각하고, 냅다 멱살을 잡고 "주인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 일 안하겠다는 건 뭐야?"하며 마구 화를 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똠은 그런 사장의 태도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사장의 지시에 대해 "예"라고 즉답했고, 알았다는 표식으로 손을 들어 OK로 화답했었기 때문입니다. 그 부분에 대해 똠은 한국에 온 지 넉 달밖에 되지 않아, 우리말이 서툴고 제가 묻는 말에도 순간순간 베트남어로 답을 하곤 했기 때문에 똠에게 넌지시 물어 봤습니다.

"예라고 할 때, 베트남 말로 했어요? 한국말로 했어요?"
"……?"
"야(ya)라고 대답했어요? '예'라고 대답했어요?"
"……."


그쯤 되자 상황이 어떠했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갔습니다. 그런데 사건의 발단과 똠이 쉼터를 찾아오기까지 경위를 알게 된 건, 두 사람과의 대화가 끝난 지 한 시간이 조금 지난 뒤, 똠이 일하고 있던 농장 바로 옆 화원 사장의 전화를 통해서였습니다. 그 사장은 우리 쉼터에서 진행했던 '이주노동자 고용주를 위한 외국어교실'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아이고, 사실은 똠이 ***사장이 멱살을 잡고 흔들며 '너 집에 가라'고 했다면서 울고 있길래, 그리로 보냈어요. 아이가 싹싹해서 종종 우리 집에 마실도 오가고 하는 아인데, 괜히 끼어들었다가 이웃 간에 의 상할까 봐서요. 그리고 그 집 사장이 나이가 그렇게 많지 않은데, 가는귀가 먹어서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그냥 막 화를 내는 것 같기도 해요."

말이란 것이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인데, 젊은 사람이 어른의 지시사항에 "야"라고 대답했으니 화가 날만 했고, 젊은 사람은 귀가 어두운 사람이 멱살을 잡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으니 역시 화가 날만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발생한 문제인 만큼, 오해를 풀고 똠에게 농장으로 돌아가 일할 것을 권하고, 사장에게도 사과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시무룩한 표정의 똠은 "이번은 돌아가지만, 다시 그런 일이 있으면 더는 그곳에서 일을 못할 것 같다"며 쉼터를 나갔습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확인케 해 준 사건이었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