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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감 만들기 도전, 실 묶기 만만찮네

일주일 지나자 말랑말랑한 곶감들이 갈색으로 변해

등록|2008.11.01 11:48 수정|2008.11.01 16:22
상강(霜降)이 지났다. 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계절은 늦가을로 치닫고 있나 보다. 가을 추수도 막바지다. 황금들녘은 빈 자리가 많이 늘었다. 이른 아침, 몸이 움츠러들 정도로 오싹하다.

맑은 햇살이 툇마루 깊숙이 들어온다. 쌀쌀한 날, 따스한 햇살이 너무 좋다. 아내가 기지개를 펴며 햇살을 끌어안으려는 듯 팔을 벌린다.

▲ 처마 밑에서 곶감이 가을햇살에 꾸득꾸득 말라가고 있다. ⓒ 전갑남


"와! 가을햇살에 곶감이 말랑말랑해졌네! 여보, 여기 좀 봐! 감 깎아 널 때만 해도 곶감이 될까 긴가민가했지? 꾸득꾸득 굳어가는 게 신기하지 않아요?"

자기가 한 일이어서 그런가? 아내는 껍질을 벗겨 실로 꿰어 처마 밑에 매단 감들을 보며 즐거워한다.

감은 가을 색깔로 제격이다

아닌 게 아니라 대롱대롱 매달린 감들이 보기 좋다. 색깔이 참 곱다. 가만히 만져보니 말랑말랑하다. 떫은 맛은 이제 없어졌겠지! 한입 베어 물면 노란 단물과 함께 부드러운 맛이 혀끝을 자극할 것 같다.

"하나 맛 봐도 될까?"
"내참! 벌써요? 몇 개나 된다고 미리 입맛을 다셔요?"

하기야 아직 먹기는 이르다. 곶감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진득하게 며칠은 기다려야 할 성싶다.

아내가 감을 쳐다보며 흐뭇한 표정을 짓다가 뜬금없는 말을 꺼낸다.

"당신, 가을은 어떤 색깔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글쎄. 산을 생각하면 울긋불긋하다고 해야 할까? 오색! 당신은?"
"난 노란색. 들판도 황금색이고 노란 은행잎, 그리고 감나무에 달린 감…."
"가을 색깔로 노란색이 참 많네!"

나는 산을 쳐다보고, 아내는 들을 쳐다본 걸까? 그러고 보니 가을에는 산과 들의 색깔이 다르다. 산을 바라보면 울긋불긋 오색 단풍이고, 들판은 죄다 누런 황금색이 아닌가!

따스한 햇살 같은 노란색이 있어 가을은 풍성한지도 모른다. 누렇게 익은 들판에서 넉넉함을 얻는다. 농부들은 황금물결 속에서 가을을 갈무리한다.

▲ 이웃집 감나무. 올핸 감이 엄청 많이 달렸다. 감 색깔에서 가을을 느낀다. ⓒ 전갑남


가을 과일 중에서 유독 노란색인 것이 있다. 감이다. 서리 맞은 감잎이 하나하나 떨어지고 있다. 주렁주렁 달린 노란 감이 나뭇가지 사이로 선명한 모습을 드러냈다. 감나무를 보고 있노라면 가을의 정취를 느끼고도 남음이 있다.

감을 우려먹을까, 곶감을 만들까

감이 여느 해보다 풍성한 것 같다. 감나무가 있는 집집마다 주렁주렁 달렸다. 감뿐만이 아니다. 올해는 가을 과일이 풍년이라고 한다. 큰 비도 없었고, 태풍까지 비껴가 과일이 풍년이다.

옆집 감나무에서도 다닥다닥 감이 달렸다. 아내가 부러워하며 말을 꺼낸다.

"여보, 우리 감나무 심은 지 몇 년째지? 감똑은 달렸는데 감은 하나도 없어!"
"아직은 뒷심을 발휘하지 못한 거야. 내년에는 4년째니까 기대를 해봐야지."

우리 집에도 감나무가 몇 그루 있다. 심은 지가 3년 되었다. 올봄 처음으로 감똑이 달렸다. 감똑이 달릴 때만 해도 가을을 기대했었다. 그런데 웬 걸! 어느 정도 크다 죄다 떨어졌다. 뒷심을 발휘하기까지는 아직 감나무가 어려서 그런 것 같았다.

며칠 전, 우리는 감을 선물 받았다. 처형께서 감을 보내주신 것이다. 처형은 해마다 늦가을 서리가 내릴 때쯤 뜰에 있는 감나무에서 감을 따서 우리에게 기쁨을 안겨주신다. 올해도 미리 따서 보낸 모양이다.

▲ 선물로 받은 감이다. 탐스럽고 색깔이 아름답다. ⓒ 전갑남


▲ 곶감을 만들려고 껍질을 깎았다. ⓒ 전갑남


감이 도착한 날, 상자를 열어보니 감 빛깔이 너무 좋았다. 샛노란 색깔이 눈을 즐겁게 하였다. 어떻게 해서 먹어야 좋을까? 아내가 수선을 피웠다.

"여보, 우릴까요? 아냐, 언니가 곶감 만들라고 했지. 당신, 깎아줄 수 있지?"
"이 사람, 그냥 놔두면 홍시가 되잖아. 힘들게 곶감은!"
"곶감 만드는 거 어렵지 않아요. 대롱대롱 매달기만 하면 되는데."
"실로 꿰서 매달아야 하고, 여러 날 말리는 게 만만찮잖아."

처형은 감꼭지를 여유 있게 따서 보냈다. 아내에게 곶감을 만들어 먹으라는 의도가 담겨있었다.

예전 생각을 하며 곶감을 만들어보다

감을 깎는데, 예전 생각이 났다. 내가 클 때 고향집에는 커다란 감나무가 있었다. 할아버지께서 심은 거라고 했다. 우리는 그 감을 '또아리감'이라고 불렀다. 납작하게 또아리처럼 생겨서 부르지 않았나 싶었다.

우리 형제들은 감 색깔이 노래지면 긴 장대를 사용해 조심조심 감을 땄다. 한 가마니 남짓 땄다. 땡감을 어머니는 소금물에 담가 뜨뜻한 아랫목에 두고 떫은맛을 우려내었다. 작 익은 놈들은 선선한 광에다 오래 놔두면 말랑말랑한 홍시가 되었다. 우린 감과 홍시는 겨울철 최고로 맛난 주전부리였다.

예전 먹었던 추억의 맛은 잊을 수 없나 보다. 아내는 자기가 클 때는 집에서 곶감을 만들었다고 한다. 옛 생각을 떠올리며 곶감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 처마 밑에 매단 감들이 참 보기 좋다. ⓒ 전갑남


▲ 언제나 곶감이 되려나. ⓒ 전갑남


하나하나 껍질을 깎는다. 꼭지를 남기고 주위부터 오려내 과도로 깎으면 된다. 깎기는 했는데 실로 묶는 일이 만만찮다. 굵은 실을 찾아 단단히 묶었다. 그런데 대롱대롱 매다는 일에 시행착오가 많다.

"여보, 대충 빨랫줄에 달아놓으면 돼! 밑으로 떨어지지 않게만 묶자구!"

처마 밑 빨랫줄에 감이 대롱대롱 매달렸다. 질서가 없다. 아내는 겹치지 않게 무진 애를 썼다.

일주일이 지났다. 말랑말랑한 곶감들이 갈색 비슷하게 변해간다. 정말 맛난 곶감이 될까? 좀더 시일이 지나면 쭈글쭈글해지고 분도 생기겠지!

▲ 일주일이 지나자 말랑말랑해졌다. ⓒ 전갑남


곶감은 꼬챙이에 꽂아놓은 감이라 해서 원래는 꽂감이라고 했다. 맛있는 곶감에는 재미나는 말도 많다.

알뜰살뜰 모아 둔 재물을 시나브로 축을 낼 때 '곶감 꼬치에서 곶감 빼먹 듯한다'고 말한다. '당장 먹기엔 곶감이 달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쉬운 일일 때 쓴다. 남을 비웃을 때는 '곶감 죽을 쑤어 먹었나?'라며 핀잔을 준다. 연달아 운수가 좋으면 '곶감 죽을 먹고, 엿 목판에 엎드러졌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아무튼 곶감이 달고 맛있어서 나온 말일 것이다. 옛사람들은 어떻게 곶감을 만들면 떫은 맛이 없어지고, 오래두고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까?

집에서 만든 곶감 맛이 궁금해진다. 입이 심심할 때 하나하나 빼먹으면 정말 쫀득쫀득하고 달짝지근한 맛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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