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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들녘엔 고소한 냄새와 추억이 넘실거린다

[포토] 바람개비 깨타작과 한겨울 할머니가 해주던 들깨강정

등록|2008.11.02 16:59 수정|2008.11.0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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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들녘에는 고소한 냄새와 추억이 넘실거린다!! ⓒ 이장연


지난 31일(금) 가을비가 새벽부터 아침까지 내려, 이날 하루는 도서관에 출근치 않고 집에서 '골프장에 포위된 국가사적지'에 대한 숙제(블로깅)를 했습니다. 점심 때가 훌쩍 넘어서야 숙제를 모두 끝낸 뒤, 경서동 인천녹청자도요지 사료관에서 전날 아침부터 시작해 꼬박 32시간 동안 진행하는 전통가마 소성시연회를 보기 위해 자전거에 올랐습니다.

가을비에 촉촉히 젖은 거리를 내달려, 한창 도자기가 구워지고 있는 전통가마를 둘러본 뒤 인근 산 속에 자리한 인천기념물 류사눌묘를 찾아가 휙 둘러보고 집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 때 한가롭게 골프 삼매경에 빠진 사람들이 노니는 골프장과 맞닿은, 가을걷이가 끝나지 않은 황금빛 들녘에서, 고소한 냄새가 가을바람에 실려 풍겨왔습니다. 대체 어디시 이렇게 고소한 냄새가 나는 건지 자전거에서 재빨리 내려 주위를 둘러봤습니다.

▲ 망할 골프장과 맞닿은 논과 밭을 지날때였다. ⓒ 이장연


타작을 끝낸 밭에서 눈부신 오후의 가을볕에 바짝 말라가는 들깨에서 나는 냄새였습니다.
어쩐지 코를 자극하는 낯익은 냄새라 생각했는데 바로 들깨였습니다.

들깨는 쌍떡잎식물 통화식물목 꿀풀과의 한해살이풀로 원래 인도 고지와 중국 중남부 등이 원산지인데, 국내에서는 통일신라시대 때 참깨와 들깨를 재배했다는 기록이 있다 합니다. 들깨잎은 특유의 냄새와 맛이 있어 삼겹살 등 고기 등을 싸먹을 때 쓰이고, 종자인 씨앗은 기름을 짜 사용합니다.

▲ 깨타작이 끝난 들깨밭 ⓒ 이장연


저희 집에서도 기름을 짜기 위해 부모님이 들깨뿐만 아니라 참깨도 매해 심어 가을이면 깨수확을 합니다. 어렸을 적 추수철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깨타작 하는 것을 도와드리곤 했는데, 그 때 어린 저와 동생이 한 일은 검불을 날리기 위해 사용하는 "윙윙윙" 거리는 바람개비를 돌리거나 털어낸 깨줄기를 아궁이 한편에 차곡차곡 쌓아놓는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지게를 짊어지고 산에 가서 나무를 해와 아궁이마다 불을 지펴 난방을 하던 때라, 바짝 마른 깨줄기는 겨울철 지푸라기와 함께 훌륭한 불쏘시개이자 땔감이 됐습니다.

생각해보니 바람개비를 돌리는 게 처음에는 신나고 재미나지만, 여간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도리깨로 깨를 털어낸 뒤 할머니와 어머니가 키질을 하며 검불을 날려보내기 위해서는 쉴 새 없이 바람을 일으켜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강한 세기의 바람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정신없이 손잡이를 돌려야 했습니다. 지치면 동생이 교대하고 그 동안 저는 다른 일을 하고 그런 식이었습니다.

▲ 깨를 털어낸 줄기는 겨울철 불쏘시개로 땔감으로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 이장연


그렇게 온가족이 깨타작도 끝내고 벼수확도 마치고 겨우내 쓸 땔감도 넉넉히 준비해 놓고 겨울을 맞았죠. 할머니는 오랜만에 동네를 찾은 뻥튀기 장수에게 쌀을 주고(예전에는 농가에 돈이 없어 쌀이나 농작물로 그 값을 치렀다. 한마디로 물물교환) 튀긴 튀밥·들깨와 엿물(조청)을 가지고 손수 쌀강정과 들깨강정을 해주시곤 했습니다.

요즘처럼 초콜릿이다 과자다 뭐다해서 주전부리가 많지 않던 시절이라,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고 절대 빼앗길 수 없는 맛난 것이었습니다. 아무튼 가을 들녘에서 맡은 고소한 깨냄새 때문에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들깨강정이 먹고 싶어졌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입안에는 군침이 맴돌더군요.

▲ 깨타작을 끝낸 뒤 한겨울 할머니가 해주던 들깨강정이 떠오른다.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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