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한 사진 덕에 맘껏 호사를 누리다
[서평] 김태균의 사진 생태 에세이 1·2
▲ <생명 곁에서 거닐다,곤충>겉그림 ⓒ 지성사
보름 전쯤, 짝짓기를 한 후 산란장소를 찾아 하트 모양으로 공중비행을 하고 있는 잠자리 뒤를 콩콩 뛰는 가슴으로 쫓아가 본적이 있다.
'잠자리들은 대체로 물속에 알을 낳지만, 깃동잠자리처럼 풀숲에 알을 뿌리는 종류도 있으니 집주변 어디쯤에 알을 낳는지 알아둔다면 내년 봄이나 여름쯤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잠자리 애벌레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잠자리를 만난 짧은 순간, 지난해 품었던 다소 어리석은 기대를 다시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신비스런 순간들을 허락할 만큼의 자격을 갖추지 않았음을 잠자리는 올해 다시 내게 말하는 듯, 눈부신 햇살에 한순간 섞이는가 싶더니 감쪽같이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어쨌거나 생명의 변화를 직접 엿볼 수 있음은 이제까지 사진이나 책으로만 만났던 곤충에 대해 좀 더 많은 것들을 알게 하는 기회가 되리라. 잠자리뿐일까? 조급한 발걸음을 조금만 늦추고 나무와 풀, 건물 모퉁이 등에 관심을 둬보면 생각보다 많은 곤충들의 알집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하여 곤충들의 생생한 생명, 그 신비로운 모습을 고스란히 볼 수도 있다.
-먹이를 먹고 있는 암컷에게 날아와 구애를 하는 모시나비 수컷, (암컷이 먹이를 먹는 동안) 짝짓기 한 수컷이 만든 ‘수태낭’을 매단 채 식사중인 모시나비 암컷.
-다른 수컷이 날아오자 거부 표현을 하는 큰줄흰나비 암컷. 짝짓기에 성공한 큰줄흰나비 암컷은 주위에 수컷이 나타나면 배 부분을 치켜들어 이미 짝짓기를 했음을 알린다.
-짝짓기중인 긴꼬리. 뒤쪽에 꼬리처럼 보이는 긴 산란관을 가진 것이 암컷이다. 암컷이 수컷의 등 쪽에서 나오는 유인 물질을 먹는 동안 정자가 들어있는 정포를 암컷의 생식기에 전달해 짝짓기가 된다. -책속에서
<생명 곁에서 거닐다, 곤충>(지성사 펴냄)의 '멀고 먼:짝짓기'편에서 만난 '모시나비'와 '큰줄흰나비', '긴꼬리'의 짝짓기 사진에 대한 설명이다.
책속 섬서구메뚜기는 짝짓기 중에 뒷발을 공중으로 번쩍 치켜드는 독특한 포즈를 취했다. 나뭇잎 위에서 짝짓기중인 팔공산밑들이메뚜기 암컷의 배는 마치 자루처럼 유난히 늘어나 있다. 외에 뽕나무하늘소, 애반딧불이, 개미붙이, 모기류, 노린재, 앞잡이 등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다양한 곤충들의 짝짓기 사진들이 풍성하게 실려 있다.
그리하여 사진들을 보고 설명을 읽으며 ‘아하, 환삼덩굴 잎에서 배를 'ㄱ자'로 치켜든 하얀 나비가 짝짓기를 하려던 것이 아니라 이미 짝짓기 했다고 밝힌 것이었구나! 그것도 모르고 한 마리가 날아가 버려 내가 짝짓기를 방해한 줄 알고 공연히 미안해했네!’ 이처럼 언젠가 보았던 곤충들의 독특한 포즈가 비로소 이해되기도 했다.
짝짓기를 무사히 끝낼 수 있는 수컷은 사람으로 치면 행운아다. 암컷 한 마리를 차지하고자 여러 마리의 수컷이 몰려들어 목숨을 잃는 싸움은 다반사. 대부분의 곤충들이 짝짓기 중에는 행동이 자유롭지 못한데 때문에 쉽게 포식자들의 먹이가 되는가하면, 사마귀처럼 짝짓기 중인 수컷이 배고픈 암컷에게 잡아먹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짝짓기를 마쳤다고 모두 행운아는 아니다. 짝짓기를 끝낸 암컷 잠자리는 또 다른 수컷이 짝짓기를 하려고 머리를 잡아채는 순간 속수무책, 이때 특정 성분의 호르몬이 이미 짝짓기를 끝낸 다른 수컷의 정자를 죽이고 만다나! 때문에 모시나비처럼 암컷과 짝짓기를 한 후 다른 수컷과 짝짓기를 못하도록 암컷의 배 끝에 수태낭을 만들어 놓는 곤충들도 있단다.
▲ '하트모양 짝짓기 비행'으로 많이 알려진 잠자리의 짝짓기. 하지만 모든 잠자리가 짝짓기 때 하트 형태를 이루진 않는다.(왼쪽:짝짓기 중 쉬고 있는 큰밀잠자리) 하트 모양의 비행은 짝짓기 후 산란장소를 찾아 날고 있는 것(오른쪽 위:짝지기중인 아시아실잠자리) 짝짓기 후 산란장소를 찾고 있는 방울실잠자리(오른쪽 아래) ⓒ 김태균
▲ 짝짓기 후 암수가 함께 이동하면서 알을 뿌리는 깃동잠자리(위)/알을 낳는 암컷을 보호하는 왕잠자리 수컷(아래 왼쪽)/꼬리부분을 물에담그고 나무줄기에 알을 낳는 물잠자리(아래 오른쪽) ⓒ 김태균
때문에 짝짓기(①수컷이 배 끝의 부속기로 암컷의 머리를 붙잡고② 짝짓기 전에 정자를 교정기로 옮기는 '이정행위'를 마치면 ③암컷이 수컷의 배 앞쪽 밑으로 돌출한 교정기에 배 끝을 붙이는)를 마친 수컷은 암컷이 알을 무사히 낳을 수 있게 최대한 지키고자 한다.
배가 긴 아시아실잠자리는 짝짓기 그대로인 하트 형태로 산란장소를 찾아 공중비행을 한다. 깃동잠자리처럼 일자로 붙어 날면서 산란장소를 물색하는 종류도 있다. 물잠자리처럼 암컷이 알을 낳는 동안 주변을 날며 또 다른 수컷의 접근을 막거나 공격하여 쫒아버리기도 한다. 드물게는 혼자 알을 낳는 잠자리도 발견된다고 한다.(성체로 겨울을 나기도)
어쨌거나 이 모든 행동들은 짝짓기를 한 암컷이 자신의 유전자만 가진 알을 튼튼하게 낳게 하려는 암컷과 수컷의 노력들이다. 아니, '생명의 본능과 신비'라는 표현이 더 옳겠다. 이들의 짝짓기에는 하트 모양에서 연상되는 우리들의 낭만적인 사랑은 없다. 수컷도 암컷도 자신의 유전자가 시키는 대로 할 뿐이기에 말이다.
생명의 본능은 우리들 눈에 보이는 것 훨씬 이상일 것이다. 산란 후 일생을 마무리하는 곤충들은 알에서 태어난 애벌레가 무사히 살아갈 수 있도록 애벌레의 먹이가 풍부한 곳에 알을 낳는다. 또한 천적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무사히 깨어나 자신들의 유전자를 최대한 퍼뜨릴 수 있도록 다양한 모습으로 위장한 알집을 만들기도 한다.
▲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보이는 자나방 애벌레(삼각형 위) ⓒ 김태균
<생명 곁에서 거닐다, 곤충>은 우리 곁에서 어떤 모습으로든 함께 살아가고 있는 곤충들의 일생을 사진으로 들려주고 있는 사진집이다. 수백 장의 사진과 그 사진에 대한 설명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한 종 한 종의 곤충을 집중 관찰하기보다는 ‘겨울-짝짓기-알 낳기-탈피와 우화-비행-죽음’으로 이어지는 곤충의 일생을 시간적 순서로 담으며 먹이, 위장, 집, 이슬과 같은 테마를 추가, 곤충의 생태와 일생을 사진과 사진 설명만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암컷이 산란한 알을 업고 다니며 보호하는 물자라 수컷, 몸을 둥글게 말아 마치 꽃받침처럼 보이는 애벌레, 더듬이가 매우 긴 것을 이용해 나무줄기를 흉내 내고 있는 원통하늘소, 우화에 실패한 호랑나비의 기형적인 날개…,
책을 통해 만나는 곤충들의 새끼를 향한 헌신적인 사랑과 보호, 주변 환경을 어떻게든 극복하려는 적극적인 자세, 실패의 쓰라림 등은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아니, 우리보다 훨씬 뛰어난 삶의 전략과 적극적인 자세로 살아가고 있는 그들에게서 삶의 위안까지 느끼기도 했다. 저자 덕분에 눈과 마음이 호사를 누렸다. 또한 위안을 얻었다.
1980년대부터 생태사진을 찍어온, 그리하여 국내 생태학 관련 책이나 참고서 등에 그동안 수많은 사진들을 제공해 온 저자는 주변에서 흔하게 보는 곤충, 하지만 그간 쉽게 볼 수 없었던 그 곤충만의 생태적 특징들을 순간포착, 생생하고 멋진 사진으로 들려준다. 그리하여 다소 께름칙해 선뜻 다가가지 못했던 곤충들을 친근하게 다시 바라보게 한다.
▲ <생명 곁에서 거닐다,새> ⓒ 지성사
물속에 사는 곤충들을 잡아먹는 꼬마물떼새 수컷이 알 낳기에 적당한 장소를 골라 다리와 부리를 사용, 모래와 자갈을 헤치고 둥지를 만들었다. 이렇게 수컷이 둥지 만들기를 끝내면 암컷이 찾아와 산란하기에 마땅한 자리인지를 심사, 이중 마음에 드는 둥지가 있으면 알을 낳는다. 이때 암컷이 마음에 드는 둥지를 찾을 때까지 십여 개의 둥지를 만들기도 한다고.
♪~“동무들아 오너라. 달맞이 가자. 종다리도 높이 떠 노래 부른다”
어렸을 적 자주 불렀던 노래 속 종다리는 알고 보니 자신의 세력권 주장을 위해 높이 날아오른 뒤 수직으로 내려오면서 울음소리를 냈던 것, 노랫말을 쓴 이에게는 즐거워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보였나보다. 낮은 풀밭에 알을 낳는 이 새의 알은 풀색, 둥지에서 알을 품은 어미 새도 주변의 풀과 구별하기 힘들다.
먹이를 문 어미 새는 곧장 둥지 쪽으로 날지 않는다. 일단 잠시 멈추고 주변을 경계한 후 안전하다는 것이 확인돼야 둥지로 조심스럽게 이동한다. 둥지 주변과 새끼들의 털색은 구별하기 힘들다. 하지만 먹이를 문 어미가 나타나는 순간 새끼들은 유난히 붉은 입을 쩍쩍 벌려 모성을 자극한다. 대부분의 새들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이렇게 새끼들을 기른다.
-호랑지빠귀가 이끼를 사용해서 갈라진 나뭇가지 사이에 둥지를 만들었다. 나무가 우거져 습한 숲에서 주로 번식을 하는데, 낮고 가는 울음소리는 슬픈 듯 음침해 귀신새라 불리기도 한다.
-변환깃을 한 원앙 수컷. 암컷과 무늬가 비슷하지만 수컷의 붉은색의 부리로 암수 구별이 가능하다. 화려한 번식깃을 가진 수컷은 번식이 끝난 뒤부터 다시 짝을 이룰 때까지는 암컷과 같은 수수한 색깔이 되는데, 이것을 변환깃이라고 한다. (원앙은 자신의 솜깃털을 뽑아 둥지를 만든다)-책속에서
책에는 둥지 틀기, 짝짓기, 저마다 다른 둥지와 알, 알 낳기와 품기 등, 새들의 생생한 생태현장이 다양하게 실려 있다. 게다가 혼인깃이나 변환깃, 탁란, 난치나 유인 등 일반인들은 좀체 알아차리기 힘든 새들의 비밀까지 들려주고 있어서 훨씬 흥미롭다.
이 두권의 사진생태 에세이는 그동안 우리 주변에서 늘 이뤄지고 있었으나 우리들이 미처 보지 못했던 생생한 삶의 현장들을 보여줌으로써 주변을 다시 바라보게 하고 건강한 자연환경을 위해 우리들이 해야할 일들을 생각하게 한다.
덧붙이는 글
<생명 곁에서 거닐다, 곤충><생명 곁에서 거닐다, 새>(사진과 글:김태균/지성사/2008.8/각권 값 2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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