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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쓰니 아름다운 '우리 말' (58) 아름다움

[우리 말에 마음쓰기 465] ‘글쓴이 말’과 ‘필자 주’

등록|2008.11.03 11:40 수정|2008.11.03 11:40
ㄱ. 글쓴이 말

스스로 쓰는 글이든, 누군가 써 달라고 해서 써서 보내는 글이든, 저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받아들이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글 사이사이 따로 붙여야 하는 생각조각이 있을 때에는 ‘글쓴이 생각’이나 ‘글쓴이 말’이라는 덧말을 달고서 적바림하곤 합니다.

 ┌ 글쓴이 말
 ├ 엮은이 말
 ├ 지은이 말
 ├ 펴낸이 말
 └ …

지난날 책 만드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던 때에는 ‘엮은이 말’을 곧잘 쓰곤 했습니다. 이제는 글을 쓰면서 살아가니 ‘글쓴이 말’을 쓰는데, 같은 뜻으로 ‘지은이 말’을 쓰기도 합니다.

집에서 받아보는 잡지를 살피면, 잡지를 펴내신 분들이 책머리나 책끝에 ‘펴낸이 말’을 붙이곤 합니다. 그러나 ‘발행인의 말’이나 ‘발행인의 편지’처럼 적는 분이 꽤 있습니다.

 ┌ 필자 주
 ├ 필자 주석
 └ 筆者 註(注)

그리고, 제가 ‘글쓴이 말’이라고 달아 놓은 덧말을 ‘필자 주’나 ‘필자 주석’처럼 고쳐 놓는 분이 꼭 있습니다.

왜 고쳐야 하는지 늘 궁금해서 물어 보기도 하는데, 언제나 돌아오는 대꾸는 ‘글쓴이 말’은 그리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 하나에다가 자기네 매체에서는 여태까지 ‘필자 주(주석)’라고 적었기 때문에, 이 틀대로 따라야 한다는 생각 둘.

 ┌ 덧말
 ├ 덧붙임말
 ├ 붙임말
 └ …

옳은지 바른지 맞는지, 틀린지 어긋났는지 잘못되었는지 들을 따지는 눈길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냥 써 오던 대로 쓰거나, 해 오던 대로 할 뿐입니다. 올바라도 올바른 줄 모르고, 비틀려 있어도 비틀린 줄 모릅니다.

ㄴ. 아름다운덕 또는 아름다움

.. 부도 역시 같은 종류의 것이라 할 수 있다. 진정으로 고귀한 부자는 미덕을 풍부히 갖춘 사람이며 성실하고 신성한 방식으로 재산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다 ..  <자발적 가난>(E.F.슈마허/이덕임 옮김, 그물코, 2003) 86쪽

.. 그렇게 어느 친구가 충고했는데도 <우리 글 바로쓰기>는 아주 확신에 찬 말로 씌어 있다. 실수가 없도록 조심해 말하는 것은 분명히 하나의 아름다운 덕이리라. 그러나 너무도 명백한 것,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믿는 것을 일부러 흐리멍덩하게 말할 까닭이 무엇인가? ..  <우리 글 바로쓰기 (2)>(이오덕, 한길사, 1992) 158쪽

따온 보기글을 통째로 손질해 봅니다. 첫 보기글은 “돈 또한 같다고 할 수 있다. 참으로 훌륭한 부자는 아름다움으로 넉넉한 사람이며, 부지런하고 거룩하게 돈을 쓸 줄 아는 사람이다”쯤으로.

다음 보기글은, “그렇게 어느 친구가 일러 주었는데도 <우리 글 바로쓰기>는 아주 굳센 믿음으로 씌어 있다. 잘못이 없도록 살펴서 말하기란 틀림없이 아름다운 덕 가운데 하나이리라. 그러나 너무도 또렷한 이야기, 달리 생각할 까닭이 없다고 믿는 이야기를 일부러 흐리멍덩하게 말할 까닭이 무엇인가”쯤으로.

 ┌ 미덕(美德) : 아름답고 갸륵한 덕행
 │
 ├ 아름다운 덕
 └ 아름다움

국어사전에는 ‘미덕’ 한 가지만 실려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악덕’만 실리지 ‘나쁜 덕’을 ‘나쁜덕’처럼 한 낱말로 삼아서 싣지 않습니다. ‘아름다운덕’이나 ‘고운덕’처럼 써서 국어사전에 싣기란 우리 형편에서는 이루지 못할 꿈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름다움’이라고, ‘나쁨’이라고, ‘고움’이라고 하면서 얼마든지 한 낱말로 삼아서 쓰는 우리들입니다. 국어사전에 실리지 않아도 넉넉히 쓰는 우리들입니다.

 ┌ 표파는곳 ← 賣票所
 └ 타는문 / 내리는문 ← 乘車門 / 下車門

퍽 긴 세월이 걸렸지만, ‘매표소’라는 말은 거의 사라지고 ‘표파는곳’이라고만 쓰고 있습니다. ‘승차’와 ‘하차’는 거의 안 쓰고 ‘타다’와 ‘내리다’라고만 쓰고 있습니다. 버스에는 ‘타는문’과 ‘내리는문’이라고 한글로만 또박또박 적어 놓습니다.

그렇지만 국어사전에는 ‘표파는곳’을 싣지 않고 ‘매표소’ 하나만 덩그러니 올려놓습니다. 사람들 말씀씀이는 벌써 ‘표파는곳’으로 바뀌었으나, 국어학자들은 꼼짝을 않습니다. 버스고 전철이고 기차고 비행기고, ‘타는문’이지만, 이 또한 국어사전에 실어 주지 않습니다. 더구나, ‘乘下車’ 같은 한자말은 버젓이 국어사전에 실으면서도, ‘타고내리다’ 같은 말은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 미덕을 풍부히 갖춘 사람 → 아름다운 사람
 └ 하나의 아름다운 덕이리라 → 아름다움 가운데 하나이리라

우리는 우리 스스로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아름다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아름다움을 널리널리 나누면서 가꿀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넉넉히. 너끈히. 힘껏. 즐겁게. 웃으면서.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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