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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행은 저항하겠다는 의지, 검경은 비겁한 수사 멈춰야"

[인터뷰] 박원석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

등록|2008.11.04 10:35 수정|2008.11.04 10:35

▲ 지난 10월 29일 118일 간의 조계사 내 농성을 정리하고 잠행농성에 나선 박원석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을 3일 서울 시내 모처에서 만났다 ⓒ 이경태


"처음 조계사로 간 것은 단순 도피가 아니었다. 무기력하게 잡히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조계사 농성장이 수배자들의 자기 신변 보호지로 축소됐다… 조계사에서 나가서 농성을 정리하자는 말도 있었다. 그러나 이는 일종의 투항으로 보였다. 할 수 있는 만큼 저항을 하다가 잡히는 것이 떳떳하다고 생각했다."

3일 저녁 서울 시내 모처에서 만난 박원석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은 지난달 29일 조계사에서 스스로 나와 '잠행 농성'을 벌이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경찰에게 쫓기고 있는 몸이지만 여유가 있어보였다. 그는 "다만 한 곳에 오래 머무를 수 없고 심리적으로 긴장한 상태라 식욕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웃음을 지어보였다.

박 실장은 "촛불정국에서 시민사회운동이 정체돼 있는 이유를 알았다"며 "지난 5월 2일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올 줄 아무도 몰랐고 나온 뒤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동안 우리가 너무 계몽식 소통에 익숙했던 것 아닌지 반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5년간 시민사회 운동이 부문화, 특성화된 측면이 있다"며 "이는 결과적으로 공권력을 마구 동원하는 이명박 정부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주요한 시민사회단체의 임원 중 한 사람으로서 국민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대안을 논의하고 싶은데 현 상황이 이래서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박 실장의 '잠행 농성'이 무기한 지속될 수는 없다. 그 역시 '잠행 농성'을 적절한 시점에 정리할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박 실장은 "어느 시점에 스스로 저항의 행렬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잡히고 처벌이 되더라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 실장 등 촛불농성자 6명이 조계사를 감쪽 같이 빠져나가자 일부에서는 총무원이 도왔다는 의심의 목소리도 던지기도 했다. 그러자 박 실장은 한마디 던졌다.

"우리는 아무 도움도 받지 않았고 실제로 총무원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았다. 경찰이 책임을 회피하려 그런 핑계를 대는 모양인데…이 때문에 다시 불교계를 격앙시킬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다음은 박원석 상황실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조계사 농성이 신변보호 의미로 축소 돼 정리"

▲ 지난 10월 11일 저녁 서울 견지동 조계사에서 열린 촛불수배자 농성 100일 대동한마당에서 수배자들이 무대에 올라 직접 오카리나, 기타 등을 연주하며 노래 공연을 하고 있다. ⓒ 권우성


- 지난 10월 29일 조계사에서 나와 '잠행농성'을 시작한 이후 어떻게 지냈나?
"나와서 계속 이동했다. 잠도 충분하게 잤고, 밥도 먹었다. 그러나 한 곳에 오래 머무를 수 없고 심리적으로 긴장한 상태라 식욕이 떨어지는 것 같다."

- 잠행농성을 단행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처음 조계사로 간 것은 단순 도피가 아니었다. 정부 탄압이 본격화될 때 국민대책회의 수배자들이 무기력하게 잡히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한 것이었다. 또 당시 촛불 이후의 대안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던 상황이었는데 대책회의 상황실장이 잡히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조계사 농성이 말 그대로 수배자들의 자기 신변 보호로 축소됐다. 또 민생민주국민회의가 출범한 이상 더 이상 농성을 진행할 필요가 없었다."

- 잠행농성이 적절한 선택이었는지 일부에서 의문을 제기하는데.
"자진출석해 농성을 정리하자는 요구도 있었다. 기자회견을 통해 그간 수배자들에 대한 지원과 함께 결의를 밝히고 조계사를 나서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일종의 투항으로 보였다. 촛불의 정신과 수배자들을 지지했던 시민들의 뜻에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봤다. 할 수 있는 만큼 저항을 하다가 잡히는 것이 떳떳하다고 생각했다."

- 조계사 총무원이 잠행농성을 도운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터무니없는 오해다. 우리는 아무 도움도 받지 않았고 실제로 총무원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았다. 경찰이 책임을 회피하려 그런 핑계를 대는 모양인데... 이 때문에 다시 불교계를 격앙시킬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 반대로 조계종 총무원이 정치적인 부담 때문에 수배자들에게 농성을 정리할 것을 압박한 것은 아닐까 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 10월 중순경 조계종 총무원에서 수배자들에게 앞으로의 진로를 물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것 역시 사실과 다르다. 총무원에서 진로를 물어봤을 때 우리 스스로 대구·경북지역 범불교도대회 이전에 농성을 정리하겠다고 말했다. 118일 동안 수배자들을 받아준 총무원장을 비롯한 조계사 분들과 신도들에게 인사도 못하고 나와 오히려 죄송하다."

"시민사회 전체적인 이슈 대응력 높여야"

▲ 박원석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 ⓒ 이경태

-지난 촛불정국 이후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압박이 커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시민사회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는다. 지난 10년 동안 시민사회단체는 정부와 갈등·대립을 하면서도 일종의 '거버넌스'를 구축했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뉴라이트 등 관변단체와만 '거버넌스'를 구축할 뿐이다. 이들은 사실상 정부의 제2중대에 불과해 시민사회라 보기 힘들다. 정부와 시민사회의 관계가 경직될 수밖에 없다."

- 시민사회운동 자체도 반성해야 할 점이 있지 않나? 
"촛불정국에서 시민사회운동이 정체돼 있는 이유를 알았다. 지난 5월 2일 그토록 수많은 누리꾼들과 여중고생이 거리로 나올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나온 뒤에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동안 우리가 너무 계몽식 소통에 익숙했던 것 아닌지 반성하게 됐다.

지난 15년간 시민사회 운동이 부문화, 특성화된 측면이 있다. 이는 시민사회의 활동을 풍성하게 했지만 절차적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공권력을 투입해 비판세력을 깨뜨리는 이명박 정부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게 한 측면도 있다. 전체 운동의 과제나 역할을 고민하는 시야를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양자가 같이 수행되어야 할 문제인데 지금 보면 단절됐다는 느낌이 든다. 지난 15년간은 전체 사회 변혁 운동에 대한 전망을 고민할 필요가 없었던 시기였던 면도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와 같은 정치적인 환경에서 그 취약점이 드러났다. 전체적인 한국사회의 변화를 위해 시민사회운동의 과제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고 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 민생민주국민회의가 그와 같은 고민 아래 출범한 것 아닌가.
"그렇다. 하지만 이에 대해 시민사회단체가 소극적인 경향이 있다. 당장 자기 단체의 생존과 운영에 큰 관계가 없는 것처럼 받아들인다. 민생민주국민회의는 개별 단체들의 세부적인 이슈를 넘어 전체적인 이슈를 포괄해야 한다. 개별 의제들도 전체적인 이슈에 대한 대응력이 없으면 돌파할 수 없다."

- 민생민주국민회의가 애초의 기대와 다르게 활동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민생민주국민회의의 의제가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의 그것에 비해 불분명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1% 특권층을 위한 정책에 반대하고 대안을 제시하겠다고 했지만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의 '재협상을 실시하라'는 명쾌한 의제에 비해 복합적이다. 또 스스로 핵심의제들을 보여주고 그에 대한 국민의 동의를 얻는 과정이 쉽지 않다.

또 그 의제를 추진하는 방식도 고민된다. 국민대책회의 때는 촛불을 들고 거리와 광장에 나와 싸우면 됐는데 민생민주국민회의도 그렇게 싸울 것인가? 쉽지 않다. "

"자기가 한 말도 지키지 않는 정부, 국민 신뢰회복 해야 경제위기 극복"

▲ '쇠고기 파동'과 관련한 특별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 연합뉴스 조보희


- 요새 경제침체 극복을 위한 정부 정책이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오늘(3일) 나온 대책은 부동산 규제 풀고, 돈을 확 풀어 경기 부양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돈을 푼 것을 어떻게 어디에 구체적으로 사용할 것인지가 없다. 다수의 서민, 저소득층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특정 계층, 대기업들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각종 규제 완화로 투기 과열도 우려된다. 감세도 누구를 위한 감세인가. 상속세·양도세·법인세·종부세 등등에 대한 감세는 다수 서민과는 무관한 감세이다. 결국 저소득층과 다수 서민들이 더 큰 피해를 입는 동시에 박탈감에 직면하는 상황이 이어지리라 보인다."

- 대통령은 직접 라디오 방송을 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국민과의 대화도 아니라 정부정책에 대한 일방적인 홍보다. KBS 내부에서도 문제제기가 많지 않나.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능력이 바닥을 보이고 있다. 촛불집회 때도 두번이나 사과를 해놓고 지금은 떼법이고, 괴담이다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시 사과는 잠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시늉이었나. 신념이나 용기가 없다. 차라리 괴담이라 생각했다면 끝까지 굽히지 않았어야 했다. 국가지도자로서나 정치인으로서 자질이 없다."

"검·경은 촛불 시민에 대한 비겁한 수사 당장 중단해야"

-지금 이명박 정부와 국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국민들은 촛불정국 속에서 지난 20년의 민주주의 성과를 고스란히 안으며 혁신된 민주주의 시스템을 요구하는 높은 수준의 역량을 보여줬다. 그런 의미에서 승리라 평가한다. 그에 대해 큰 감동을 느꼈고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또 수배자들에게 지지를 보내 준 것에 대해 너무나 감사하다.

만약 정부가 이를 외면하고 이전으로 돌아가 계속 민의를 거스르는 국정운영을 한다면 형식적으로 권력을 유지한다 하더라도 국민으로부터 고립될 것이다. 실패한 정부가 될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책임 있는 집권세력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검·경은 촛불 시민에 대한 수사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 국민대책회의의 수배자들에 대해 자신들이 생각하는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것은 좋다. 그러나 일반 시민들에게 그런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졸렬하고 비겁한 것이다. 권력이 모여서는 안 될 모습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잠행농성을 무한정 계속할 수는 없다. 적절한 시점에서 국민들 앞에 나서 촛불집회와 그 이후의 저항을 잇는 '접합점'이 될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스스로 저항의 행렬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잡히고 처벌이 되더라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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