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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궂은 한자말 덜기 (53) 접촉

[우리 말에 마음쓰기 466] ‘사람들과 접촉’, ‘각계 인사들과 접촉’ 다듬기

등록|2008.11.04 11:46 수정|2008.11.04 11:46

ㄱ. 사람들과 접촉

.. 이 세상이 말하는 선량한 사람들, 아니 정확히 말해서 내 자신이 선량한 사람이라고 확언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었음은 확실히 그 힘든 일의 보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부커 T.워싱턴/송효준 옮김-블랙 워싱턴》(평민사,1976) 119∼120쪽

 ‘선량(善良)한’은 ‘착한’으로 다듬고, ‘정확(正確)히’는 ‘좀더 또렷이’로 다듬으며, ‘확언(確言)할’은 ‘믿을’이나 ‘굳게 믿을’로 다듬습니다. ‘확실(確實)히’는 ‘틀림없이’로 손보고, “힘든 일의 보상(報償)이”는 “힘든 일을 갚아 주는 셈이”나 “힘든 일에 돌아온 보람이”로 손봅니다.

 ┌ 접촉(接觸)
 │  (1) 서로 맞닿음
 │   - 접촉 사고 / 신체 접촉
 │  (2) 가까이 대하고 사귐
 │   - 법조인들과 접촉이 잦다 / 이웃과의 접촉을 꺼리는 성격 /
 │     개인적인 접촉 없이 그런 사랑이 가능할까요
 │
 ├ 그런 사람들과 접촉할
 │→ 그런 사람들과 만날
 │→ 그런 사람들과 함께할
 │→ 그런 사람들과 어울릴
 │→ 그런 사람들을 볼
 │→ 그런 사람들을 알게 될
 └ …

 ‘맞닿는다’고 할 때에 흔히 ‘접촉’이라는 한자말을 불러들입니다. 자동차가 살짝살짝 부딪히는 자리에서도 ‘접촉 사고’라고 말할 뿐, ‘스친 사고’나 ‘맞부딪힌 사고’나 ‘살짝 박은 사고’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손이 닿거나 몸이 닿았을 때에도, 또는 살을 비비거나 엉덩이를 주물렀을 때에도 ‘신체 접촉’처럼 말할 뿐, 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가를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지 않아요.

 ┌ 법조인들과 접촉이 잦다 → 법조인들과 자주 만난다
 ├ 이웃과의 접촉을 꺼리는 → 이웃과 만나는 일을 꺼리는
 └ 개인적인 접촉 없이 → 따로 만나지 않고 / 살가이 사귀지 않고 / 사랑놀이를 않고

 곰곰이 생각합니다. 우리들이 맨 처음에 ‘닿다’를 ‘닿다’라 하지 않고, ‘맞닿다’를 ‘맞닿다’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꾸만 얄궂게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고 잎을 틔우면서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이 시들게 했다고. 처음부터 ‘스치다’와 ‘대다’와 ‘건드리다’를 내버리고 있었기에, ‘만지다’와 ‘부딪히다’를 멀리하고 있었기에, 아이들한테 한자를 일찍부터 가르치거나 영어를 일찌감치 가르치기 앞서, 우리네 아이들 스스로 우리 말을 놓거나 버리게 되었다고.

 ┌ 만나다
 │  (1) 누구를 어느 곳에서 마주하거나 보다
 │     <길에서 선생님을 만났다 / 시장에서 엄마를 만나다>
 │  (2) 길, 강, 줄 들이 서로 마주 닿다
 │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 /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곳 /
 │      이리로 가면 학교 가는 길을 만날 수 있다 /
 │      해는 저기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서 떠오른다>
 │  (3) 남다른 사이로 되거나 맺다
 │     <올해는 아주 좋은 담임선생님을 만났다 /
 │      부모를 잘 만나서 아주 부자로 사는 동무 /
 │      남편을 잘못 만나 고생하는 이웃집 아주머니 /
 │      동무를 잘못 만나 나쁜 길로 빠지다>
 │  (4) 어떤 일을 겪다
 │     <힘든 일을 만나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다 / 경사를 만나다 /
 │      어려운 수학 문제를 만나 한참 동안 골치를 썩였다 / 나쁜 일을 만나다>
 │  (5) 어디를 가다가 비, 눈, 바람 들을 맞다
 │     <배를 타고 가다가 비바람을 만났다 / 풍랑을 만나다 /
 │      배가 태풍을 만나 흔들린다 /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소나기를 만났다>
 │  (6) 어떤 때나 세상을 맞거나 살다
 │     <제철을 만난 과일이 몸에 좋다 / 좋은 세상을 만나다 /
 │      어머니 회사는 요새 큰 위기를 만났다>
 │  (7) 어떠한 일이나 사물을 눈앞에서 보게 되다
 │     <쓰라린 운명과 만나다 / 지금 같은 나를 있게 한 책을 만난 서점 /
 │      참과 거짓을 만나다 / 죽음을 만나다 / 쓰라린 운명을 만나다>
 │
 ├ 조우(遭遇)
 │  (1) 신하가 뜻에 맞는 임금을 만남
 │  (2) 우연히 서로 만남
 ├ 상봉(相逢): 서로 만남
 ├ 상면(相面)
 │  (1) 서로 만나서 얼굴을 마주 봄
 │  (2) 서로 처음으로 만나서 인사하고 알게 됨
 ├ 대면(對面) :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대함
 └ 해후(邂逅) : 오랫동안 헤어졌다가 뜻밖에 다시 만남

 우리한테는 ‘만나다’라는 토박이말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모두 일곱 가지 뜻으로 쓰이는데, 앞으로는 새 쓰임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쓰임새가 외려 줄거나 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만나면서 ‘만난다’고 하지 않으니, ‘조우’를 하고 ‘상봉’을 하고 ‘상면’을 하며 ‘대면’을 하다가 ‘해후’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나니 헤어지지만, 접촉을 하거나 대면을 하면 이별이나 석별을 합니다. 닿았으니 떨어지지만, 접촉을 하니까 분리가 되거나 이탈을 합니다.

 하나가 뿌리요, 하나가 밑거름이요, 하나가 모두입니다. 처음 한 알을 어떻게 씨뿌리느냐에 따라서 열매가 달라집니다.


ㄴ. 각계 인사들과 접촉

.. 그때 박 대통령은 언론계를 포함한 각계 인사들과 부지런히 접촉하였다 ..  《남재희-언론ㆍ정치 풍속사》(민음사,2004) 136쪽

 ‘각계(各界)’는 ‘여러’나 ‘여러 곳’으로 다듬습니다. “언론계를 포함(包含)한”은 “언론사 사람을 비롯한”이나 “언론사 사람을 아울러”로 손질합니다.

 ┌ 각계 인사들과 접촉하였다
 │
 │→ 각계 인사들과 만났다
 │→ 여러 곳 사람들과 만났다
 │→ 온갖 사람들과 어울렸다
 └ …

 예전부터, 아마도 육십 년대나 칠십 년대 뒤부터가 아닐까 싶은데, 정치하는 사람이나 경제하는 사람이 서로 만나는 자리에서 ‘만난다’라는 말을 쓰는 일을 보기 몹시 어려워졌습니다. 우리 나라 대통령과 일본 수상이 만날 때에도 ‘접촉’을 쓰지, ‘만난다’고 하지 않습니다. 북녘에서 내려보낸 간첩들은 ‘접선(接線)’을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고 보면, 무언가를 붙일 때 ‘붙인다’고 하기보다 ‘접착(接着)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붙일 때 쓰는 물건은 ‘풀’이지만, ‘접착제(接着劑)’라고 해야 단단히 들러붙일 수 있다고 여기기까지 합니다.

 ┌ 서로 추월하려다 접촉하여 사고가 발생하였다
 │→ 서로 앞지르려다 부딪혀서 사고가 났다
 ├ 앞에 서 있던 아가씨와 불가피하게 접촉하게 된
 │→ 앞에 서 있던 아가씨와 어쩔 수 없이 몸이 닿게 된
 ├ 이성과 접촉해 볼 기회가 없었다
 │→ 이성을 만나 볼 자리가 없었다
 └ …

 우리들은 어이하여 우리 낱말과 말투로 우리 생각과 느낌과 일과 놀이를, 그러니까 우리 말로 우리 삶을 나타내려고 하지 않을까 궁금합니다. 우리들은 우리 깜냥껏 써 온 말을 부끄러이 여기고 있을까요. 우리 삶을 담아낸 말은 남우세스럽다고 느끼고 있을까요. 우리 넋을 싣고 있는 말은 어수룩하다고 생각하고 있을까요.

 아니, 우리 말이 무엇인지, 우리가 서로 나눌 말이 무엇인지, 우리가 즐거이 함께할 말이 무엇인지를 처음부터 조금도 헤아리지 않는지 모릅니다. 유전자를 건드린 곡식이든 아니든 아랑곳하지 않고 좀더 값싼 밥을 먹으면 그만이라고 여기는 우리들이니까요. 국가경쟁력과 국민소득과 경제성장률이라는 숫자를 내세우는 우리들은 우리 손으로 우리 삶을 밟고 누르고 멀리하고 벼랑으로 밀어내고 있으니까요.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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