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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나무는 왜 하나같이 빵모자를 쓰고 있는가

[동래 ㅈ씨 선산 '화지공원'을 산책하면서]

등록|2008.11.04 14:45 수정|2008.11.04 14:45

향나무 길정문 쪽에서 바라본 길 ⓒ 김영명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큰길만 건너면 숲이 우거진 공원에 닿는다. ㅂ시 한복판에 이런 숲이 있다니 정말 감사할 일이다. 이런 고마운 일은 동래 ㅈ씨 문중에서 문중 소유 선산을 공원으로 만들어, 시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새벽마다 이 공원을 찾아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산책을 한다. 산책길은 정문(현경문)에서 시작되는 약 200m의 향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길이다. 향나무에서 뿜어 나오는 독특한 향내! 코끝이 싱긋하고 심신은 상쾌해 진다.

향나무 길안 쪽에서 바라본 길 ⓒ 김영명


잡귀를 물리친다는 나무답게 이 나무냄새를 맡고 있으면 온몸이 정화되는 느낌이 든다. 이 길에 들어서면 도시의 온갖 소음은 세석을 밟는 발자국 소리에 멀리 밀려나고, 이름 모를 산새들의 지저귐이 귀를 즐겁게 한다.

이 유쾌한 산책길에서 나는 두 가지 궁금한 점을 발견하고는 독자 여러분과 함께 풀고 싶어서 이 글을 쓴다. 하나는 곧게 만들 수 있는 길을 왜 약간 굽어지게 했을까. 또 하나 향나무는 왜 하나같이 찐빵 모양을 하고 있을까.

동래 ㅈ씨 선산 정문화지공원 입구도 됨 ⓒ 김영명


완만하게 굽어진 길을 만든 것은 짐작컨대 우리 조상들의 지혜의 소산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곧게 뻗은 길은 입구에서부터 안쪽의 모든 것이 드러난다. 그러나 길을 약간 굽어지게 함으로써 내부를 서서히 드러나게 하는 효과를 얻는다. 따라서 시조를 모신 선산의 엄숙함과 신비감을 간직하게 하는 보호막 역할을 굽은 길이 해준 것이 아닐까.(내 짐작이 틀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빵모양의 향나무에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인가. 이곳만이 아닌 전국 어디를 가도 향나무는 빵모자에 여러 개의 도넛을 단 동글동글한 모습을 하고 있다. 공간의 제한을 받는 조그마한 개인 정원도 아닌 이 넓은 공원에 자라는 향나무를 저렇게 몽땅 빗자루 아니면 도넛 모양으로 가지치기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창덕궁 향나무천연기념물 제194호 ⓒ 김영명


인터넷을 뒤졌다. 2006. 12. 8일자 한겨레신문 인터뷰 기사가 눈에 잡혔다.

"동글동글하게 가지치기하는 것은 일본식 유산이지요. 일본인은 단지 눈을 즐겁게 하기위해 인위적으로 모양을 만듭니다."(이선. 전통문화학교 전통조경학과 교수)

이선 교수의 말대로라면 찐빵모양의 전정은 일본 정원에 적합한 일본인 취향의 조경정리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일본식이라서 마음에 안 든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너무 획일적이고 단조롭고 인위적이라는데 있다. 아름다운 모양도 주위 환경과 어울려야 그 가치를 빛낼 수 있고, 그 아름다움도 변화를 수반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식상하게 된다.

우리나라 “창덕궁 향나무”는 수령이 700여 년, 나무높이가 약 12m로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 보조국사(고려시대)의 전설이 깃든 송광사의 “곱향나무”도 800여 년 동안 우람한 덩치(둘레4.1m)와 높은 키(12m)를 자랑하며 보는 이를 즐겁게 해 주고 있다.

송광사 곱향나무천연기념물 제88호 ⓒ 김영명


동래 ㅈ씨 시조 묘소로 가는 길 양옆으로 심어진 향나무가 일본식 전정으로 다듬어진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향나무가 원래 원추형 모양으로 곧게 자란다고 하니까, 우리 조상들이 하던 전통적인 방식으로, 하늘 높이 죽죽 뻗어 나가게 하면 안 될까.

새벽마다 향나무의 싱그러운 향내를 맡으며 나는 행복감에 젖는다. 그런데 빵모자를 덮어쓴 향나무보다 곧게 하늘 높이 뻗은 향나무가 나를 맞아준다면 더 행복해질 수 있겠다.

길은 굽어져도 향나무는 곧게 자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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