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싯적에 책 사느라고 차비가 떨어지면 부모님으로부터 '책 타고 학교가라'는 면박을 한번쯤 당해본 독자들이 있다. 도서포털 리더스가이드(www.readersguide.co.kr) 리뷰어들은 책을 타고 학교에도 가고 별나라에도 가고 못 가는 곳 없지만, 유독 이 책에서만큼은 책을 놓고 떠나고 싶은 욕구를 감추지 못했다. 서명숙의 <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 걷기 여행>(북하우스)이다. 북하우스와 리더스가이드가 함께 준비한 '서명숙 작가와의 미니간담회'를 앞두고 참석을 신청한 리뷰어들의 리뷰를 분석하여 제주올레를 책으로 걷는 10가지 맛을 뽑아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지만, 책과 글로나마 '제주 올레'를 소개하지만, 그나마 맛보기로 삼았으면 한다. - 기자 주
1. '걷기'와 '제대로 걷기'는 다르다
'걷기'는 두 발이 멀쩡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제대로 걷기'를 할 만큼 축복받은 사람은 많지 않다. "돈 드는 일도 아닌데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파란흙)
용기를 내서 가까운 곳부터 걷기를 시도한다고 하더라도 대개는 "아스팔트를 걸어야 했기에,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차들에 대한 두려움과 소음 그리고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는 걷기 여행의 기쁨을 반감"시켰다.(이환) 좀 더 아름답고 안전한 길에 목말라 하는 사람이라면 제주 올레 서명숙 대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도 좋겠다.
"(내가 생각한 길은) 실용적 목적을 지닌 길이 아니다. 그저 그곳에서 놀멍, 쉬멍, 걸으멍 하는 길이다. 지친 영혼에게 세상의 짐을 잠시 부려놓도록 위안과 안식을 주는 길이다. 푸른 하늘과 바다, 싱그러운 바람이 함께 하는 길이다."(제주 걷기 여행, 39쪽)
2. 역사가 서려 있는 푸르고 아픈 땅, 제주
제주 올레는 단지 '제주'다.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조금이나마 이해한다면 날빛에 반짝이는 제주 올레의 묵직한 풍광에 다가갈 수 있으리라. 옛날의 제주는 유배의 땅이었다. 뿐만 아니라 현대사의 질곡 속에서 좌절과 아픔도 겪었다. 지금의 제주는 육지 사람들의 관광과 소유의 대상으로 비치는 것도 사실이다. (낙서가) 때문에 현지인의 심정으로 바라보면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이 '역설적'이기 그지 없다. 리뷰어 '낙서가'는 정호승의 시 한 구절을 제주 올레에 부쳤다.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내가 사랑하는 사람)
3. '관광'이 아니라 '여행'이다
제주에 대해 한 가지 단어를 떠올리라면 '관광지'나 '관광'을 드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학창시절의 수학여행이거나(낙서가) 렌트카를 빌려 타고 말 그대로 '주마간산'으로 달리는 게(감은빛) 일반적이다. '여행(旅行)'이란 말은 매우 오래된 글자인데, 춘추전국 시절 세 치 혀 하나로 전국을 주유하며 왕을 설득해 자신의 이상을 펼치는 유세가를 떠올리면 여행이라는 의미가 쉽게 들어온다. 목적지로 가기도 전에 산적을 만나서 빈털터리가 되거나 목숨을 빼앗기기도 하고, 그렇게 고생해서 찾아가 보람도 없이 쫓겨나는 경우도 다반사다. 때문에 여행이란 몹시 번거롭고 고단한 일이다. 이 본래의 의미가 '제주 걷기 여행'에는 담겨 있다. 튼튼한 두 발로 힘들게 걷다가 지쳐서 돌출된 바위턱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을 때 바라본 풍광, 이것이 제주 올레를 가장 잘 표현한 순간일 것이다. 우리가 '산티아고 여행'을 '관광'이라고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4. '간세다리 정신' 벌써 잊었어?
시사IN의 전 편집국장인 문정우씨는 제주올레를 걷고 나서 아들과 함께 동네 걷기를 하다가 아들에게 혼이 났다고 한다. 평소처럼 과속을 하는 아버지를 보고 "아빠 '간세다리 정신' 벌써 잊은 거야?" 하는 통에 몹시도 민망했다는 후문이다. 리뷰어들도 문정우씨처럼 '병'을 앓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나는 이미 '빨리, 빨리' 병에 걸려 있었다. 무엇이든 빨리 해야 하고, 남들보다 앞서 가야하며, 결과를 기다리지 못하고 안절부절하는 조급병에 걸린 것이다.(poison)
'간세다리'란 나무늘보 같은 게으름뱅이를 뜻하는 제주도 방언이라고 한다. 속도가 주는 오만함과 위협을 생각하면서 걷는 길은 '아스팔트'가 아니라 천연의 '흙길'이다. 흙에서 나고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이 걷기에는 안성맞춤인데, <제주 걷기 여행>을 읽을 때도 '간세다리 정신'을 잊지 말라는 리뷰어의 충고는 새겨들을 만하다.
"책을 천천히 그야말로 놀멍 쉬멍 읽었다. '간세다리'가 되어 읽어야지 이 책이 맛있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누워 읽다가, 쭈그리고 앉아 읽다가, 엎드려 읽다가, 화장실 변기에 앉아 읽다가, 지하철에서도 읽었다. 이맛살 찌푸려가며 앞뒤 맞춰 읽어야 할 필요도 없고, 심지어 순서대로 꼭 읽을 필요도 없다고 여겼다. 편안한 책이다." (파란흙)
5. 제주의 '산티아고'를 그리며
저자 서명숙은 나이 50줄에 800킬로미터 산티아고 도보순례에 도전한다. 물론 주위에서 다 뜯어말렸지만, 막무가내로 탈출에 성공한다. 그렇게 23년의 기자생활을 그만두고 홀로 떠난 산티아고 길에서 자주 떠올렸고 돌아오면서 올레 길을 만들고자 마음을 먹었고 실천에 옮기어 현재는 여덞 코스 105킬로미터의 길을 만들었다고 한다.(red7370)
많은 사람들이 품고 있을 산티아고 로망, 하지만 직접 그 길을 걸어본 사람은 훨씬 적다. 하지만 산티아고 로망은 더 이상 가슴 속에서만 자맥질하지 않는다. 제주 올레 서명숙 대장의 노력 덕분에 그들은 "이제는 산티아고의 길보다는 제주올레를 먼저 찾게 될" 테니까.(롤러코스터)
6. '서명숙'을 모르고서 '제주 올레'를 논하지 말라
제주 올레를 기획하고 한땀한땀 일군 올레 대장 서명숙을 알면 제주 올레를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인생부터가 드라마틱하다.
<시사저널> 창간멤버 서명숙은 1989년 6월부터 2003년 4월까지 15년 동안 정치부 기자·정치부장·취재1부장·편집장을 거쳐 2005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을 역임하는 등 23년 동안이나 기자 생활을 하면서 광화문에서 '놀았다'. 섬의 정기를 머금고 태어났지만 아스팔트 길게 뻗은 도시에서, 그것도 세상사에 가장 민첩하게 반응하는 기자 생활을 20여 년이나 하다가 이를 단호히 버리고 다시 '느림'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까칠한 기자들을 호령하는 편집장 역할을 하며 '여성'보다는 '남성'의 삶에 익숙한 그가 '여성'으로 돌아왔다. 50줄에 그가 얻은 두 개의 키워드는 '느림'과 '여성'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수십 년 동안 지나온 '속도'와 '남성'의 여정이다.
7. '속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다
News는 '새로운 정보'를 '빠르게' 대중에게 전달해야 한다. News 간에 경쟁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News의 생산자인 기자는 소비자 보다 항상 빠르게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당연히 기자는 다른 직업보다 빠름이 생명이다. 그리고 빠름은 바로 자본주의의 생명이 아니던가. 단위 시간당 생산성, 시속 몇 킬로미터 등 빠른 움직임은 이 시대의 복음처럼 우리의 삶의 가치를 지배하고 있다. 느리다는 것은 어쩌면 죄악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환)
걷기와 뛰기의 차이. 뛰면 걷는 것보다 '많은 곳'을 볼 수 있지만, 걸으면 뛰는 것보다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인간의 원초적 본능은 석기시대의 걷는 생활에 적응되어 있기에(이환) 빠른 삶은 왠지 낯설고 빠름에서 오는 편리함보다는 빠름을 위해 들이는 비용이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독서와 여행의 공통점은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달려간다면 돌아오는 것을 기약할 수 없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고향을 엄마 뱃속을 외면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8. '제주어'를 만나는 재미
<제주 걷기 여행>에서는 제주어(사투리)와 표준어가 병기돼 있는데, 덕분에 리뷰어들은 제주어를 만나는 즐거움을 누렸다. 제주 출신 친구가 엄마나 친구와 통화하는 소리를 듣고 충격에 빠지는 이유는 제주어가 외국어처럼 매우 생소하기 때문이다. '간세다리'라는 말부터가 그렇다. 리뷰어 오로지 관객은 '무엇보다 제주어로 쓰여진 글과 해석, 제주단어의 풀이가 몹시 인상적'이었다고 썼다. 리뷰어 '롤러코스터'도 어렵게 한 단어를 익혀서 써먹는 데 성공했다.
"겅허민(그러면), 떠나기만 하면 되는 것?"
9. '제주 올레'를 위협하는 인스턴트 관광지
제주 올렛길을 연결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명당자리마다 들어앉은 '관광지'다. 특히 제주 올레의 가장 중요한 길목 중의 하나인 '섭지코지'는 '보광'이라는 회사가 지은 대규모 관광단지가 동강내 버렸다.
제주를 갔을 때, 섭지코지의 불행을 목격했다. 대규모 관광단지를 짓는 듯 온통 공사 중이어서 차도 막히고 경관도 훼손되어 있었다. 거기에 무슨 드라마의 세트장인지가 경관을 훼손하면서 버젓이 관광객들에게 돈을 받고 영업을 하고 있어서 씁쓸했는데, 뭔가 더 어마어마한 게 지어지는 모양을 보니 다음부터 섭지코지는 절대 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감은빛)
이외에도 제주를 위협하는 대형 괴물들은 속속 태어나고 있다. 하지만 대형 괴물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 어디 제주뿐이랴.
제주는 '여성'의 섬이다. 모든 자연 경관과 사람들의 마음이 섬세하고 온화하다. 하지만 제주를 방문해서 '여성'의 이미지를 찾기는 매우 힘이 든데, 그것은 남성적인 힘에 지배를 많이 당해서 '보이는 부분'은 이미 남성화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탑동 부근에 이마트가 생겨난 이후로 제주 동문시장과 재래시장 등 상권이 거의 붕괴되었는데, 얼마 전 신제주에 이마트 2호점이 생겼고 롯데마트도 생겼다. 성산일출봉의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볼 수 있는 신양리 해수욕장에는 삼성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 보광이라는 회사에서 대규모 호텔단지를 조성해서 순식간에 '인스턴트 관광지'가 되고 말았다. 이 외에도 제주는 '패키지'라는 치밀한 괴물에 산채로 잡혀 여성성은 아주 깊은 곳으로 숨어버렸다.(승주나무)
제주올레가 제주의 숨은 혈맥을 이어 피가 통하게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10. '제주 올렛길'이 자꾸 자란다
<제주 걷기 여행>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서명숙의 본문과 무적전설의 별책부록이다. 별책부록에는 제주 올레를 여행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들이 세심하게 담겨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책 본문에서는 올레길 6코스까지 밖에 안 나오지만, 무적전설의 별책부록에는 7코스까지 나온다"(감은빛) 본문이 편집 작업에 들어가 있는 동안 7코스가 개발되었고, 편집 막바지에 작업했을 별책부록에는 그 내용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길이도 늘어나고 있다. 현재 7개 코스 101.1 킬로미터에 달하는데, 2008년10월30일자 신문에 보니 10코스까지 200 킬로미터로 길이가 추가되었다고 전한다. 거기다 내년 초 12코스까지 만들어질 것이고, 11박12일의 일정으로 전 세계 도보여행자들과 함께 '제주 걷기 축제'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제주 올렛길이 자꾸 자라나는 것이다.
책을 사면 올렛길이 늘어나고, 친구들과 함께 올렛길을 밟거나 올렛길을 여기저기 소문내고 다니면 역시 올렛길이 신이 나서 늘어난다. 이 글을 쓰는 나도 제주 사람이지만, 올렛길이 더욱 쑥쑥 자라나서 대규모 관광단지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인간과 자연의 길'이 태어나기를 바라고, 산티아고보다 더 아름답고 편안한 제주올레 완결판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1. '걷기'와 '제대로 걷기'는 다르다
▲ <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 걷기 여행>은 오랜 세월 감정의 앙금이 쌓인 동생과의 재회 과정과 서명숙의 유년을 살지게 했던 '길'이 주는 성찰적 힘,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림들에 대한 회상이 저널리스트의 대중적인 문체로 기록돼 있다. ⓒ 북하우스
'걷기'는 두 발이 멀쩡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제대로 걷기'를 할 만큼 축복받은 사람은 많지 않다. "돈 드는 일도 아닌데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파란흙)
용기를 내서 가까운 곳부터 걷기를 시도한다고 하더라도 대개는 "아스팔트를 걸어야 했기에,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차들에 대한 두려움과 소음 그리고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는 걷기 여행의 기쁨을 반감"시켰다.(이환) 좀 더 아름답고 안전한 길에 목말라 하는 사람이라면 제주 올레 서명숙 대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도 좋겠다.
"(내가 생각한 길은) 실용적 목적을 지닌 길이 아니다. 그저 그곳에서 놀멍, 쉬멍, 걸으멍 하는 길이다. 지친 영혼에게 세상의 짐을 잠시 부려놓도록 위안과 안식을 주는 길이다. 푸른 하늘과 바다, 싱그러운 바람이 함께 하는 길이다."(제주 걷기 여행, 39쪽)
2. 역사가 서려 있는 푸르고 아픈 땅, 제주
제주 올레는 단지 '제주'다.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조금이나마 이해한다면 날빛에 반짝이는 제주 올레의 묵직한 풍광에 다가갈 수 있으리라. 옛날의 제주는 유배의 땅이었다. 뿐만 아니라 현대사의 질곡 속에서 좌절과 아픔도 겪었다. 지금의 제주는 육지 사람들의 관광과 소유의 대상으로 비치는 것도 사실이다. (낙서가) 때문에 현지인의 심정으로 바라보면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이 '역설적'이기 그지 없다. 리뷰어 '낙서가'는 정호승의 시 한 구절을 제주 올레에 부쳤다.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내가 사랑하는 사람)
3. '관광'이 아니라 '여행'이다
제주에 대해 한 가지 단어를 떠올리라면 '관광지'나 '관광'을 드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학창시절의 수학여행이거나(낙서가) 렌트카를 빌려 타고 말 그대로 '주마간산'으로 달리는 게(감은빛) 일반적이다. '여행(旅行)'이란 말은 매우 오래된 글자인데, 춘추전국 시절 세 치 혀 하나로 전국을 주유하며 왕을 설득해 자신의 이상을 펼치는 유세가를 떠올리면 여행이라는 의미가 쉽게 들어온다. 목적지로 가기도 전에 산적을 만나서 빈털터리가 되거나 목숨을 빼앗기기도 하고, 그렇게 고생해서 찾아가 보람도 없이 쫓겨나는 경우도 다반사다. 때문에 여행이란 몹시 번거롭고 고단한 일이다. 이 본래의 의미가 '제주 걷기 여행'에는 담겨 있다. 튼튼한 두 발로 힘들게 걷다가 지쳐서 돌출된 바위턱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을 때 바라본 풍광, 이것이 제주 올레를 가장 잘 표현한 순간일 것이다. 우리가 '산티아고 여행'을 '관광'이라고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4. '간세다리 정신' 벌써 잊었어?
시사IN의 전 편집국장인 문정우씨는 제주올레를 걷고 나서 아들과 함께 동네 걷기를 하다가 아들에게 혼이 났다고 한다. 평소처럼 과속을 하는 아버지를 보고 "아빠 '간세다리 정신' 벌써 잊은 거야?" 하는 통에 몹시도 민망했다는 후문이다. 리뷰어들도 문정우씨처럼 '병'을 앓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나는 이미 '빨리, 빨리' 병에 걸려 있었다. 무엇이든 빨리 해야 하고, 남들보다 앞서 가야하며, 결과를 기다리지 못하고 안절부절하는 조급병에 걸린 것이다.(poison)
'간세다리'란 나무늘보 같은 게으름뱅이를 뜻하는 제주도 방언이라고 한다. 속도가 주는 오만함과 위협을 생각하면서 걷는 길은 '아스팔트'가 아니라 천연의 '흙길'이다. 흙에서 나고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이 걷기에는 안성맞춤인데, <제주 걷기 여행>을 읽을 때도 '간세다리 정신'을 잊지 말라는 리뷰어의 충고는 새겨들을 만하다.
"책을 천천히 그야말로 놀멍 쉬멍 읽었다. '간세다리'가 되어 읽어야지 이 책이 맛있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누워 읽다가, 쭈그리고 앉아 읽다가, 엎드려 읽다가, 화장실 변기에 앉아 읽다가, 지하철에서도 읽었다. 이맛살 찌푸려가며 앞뒤 맞춰 읽어야 할 필요도 없고, 심지어 순서대로 꼭 읽을 필요도 없다고 여겼다. 편안한 책이다." (파란흙)
5. 제주의 '산티아고'를 그리며
저자 서명숙은 나이 50줄에 800킬로미터 산티아고 도보순례에 도전한다. 물론 주위에서 다 뜯어말렸지만, 막무가내로 탈출에 성공한다. 그렇게 23년의 기자생활을 그만두고 홀로 떠난 산티아고 길에서 자주 떠올렸고 돌아오면서 올레 길을 만들고자 마음을 먹었고 실천에 옮기어 현재는 여덞 코스 105킬로미터의 길을 만들었다고 한다.(red7370)
많은 사람들이 품고 있을 산티아고 로망, 하지만 직접 그 길을 걸어본 사람은 훨씬 적다. 하지만 산티아고 로망은 더 이상 가슴 속에서만 자맥질하지 않는다. 제주 올레 서명숙 대장의 노력 덕분에 그들은 "이제는 산티아고의 길보다는 제주올레를 먼저 찾게 될" 테니까.(롤러코스터)
6. '서명숙'을 모르고서 '제주 올레'를 논하지 말라
▲ 구릿빛으로 검게 그을른 데다 소녀처럼 해맑게 웃고 있는 왼쪽의 아줌마가 바로 서명숙. ⓒ 오승주
제주 올레를 기획하고 한땀한땀 일군 올레 대장 서명숙을 알면 제주 올레를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인생부터가 드라마틱하다.
<시사저널> 창간멤버 서명숙은 1989년 6월부터 2003년 4월까지 15년 동안 정치부 기자·정치부장·취재1부장·편집장을 거쳐 2005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을 역임하는 등 23년 동안이나 기자 생활을 하면서 광화문에서 '놀았다'. 섬의 정기를 머금고 태어났지만 아스팔트 길게 뻗은 도시에서, 그것도 세상사에 가장 민첩하게 반응하는 기자 생활을 20여 년이나 하다가 이를 단호히 버리고 다시 '느림'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까칠한 기자들을 호령하는 편집장 역할을 하며 '여성'보다는 '남성'의 삶에 익숙한 그가 '여성'으로 돌아왔다. 50줄에 그가 얻은 두 개의 키워드는 '느림'과 '여성'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수십 년 동안 지나온 '속도'와 '남성'의 여정이다.
7. '속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다
News는 '새로운 정보'를 '빠르게' 대중에게 전달해야 한다. News 간에 경쟁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News의 생산자인 기자는 소비자 보다 항상 빠르게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당연히 기자는 다른 직업보다 빠름이 생명이다. 그리고 빠름은 바로 자본주의의 생명이 아니던가. 단위 시간당 생산성, 시속 몇 킬로미터 등 빠른 움직임은 이 시대의 복음처럼 우리의 삶의 가치를 지배하고 있다. 느리다는 것은 어쩌면 죄악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환)
걷기와 뛰기의 차이. 뛰면 걷는 것보다 '많은 곳'을 볼 수 있지만, 걸으면 뛰는 것보다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인간의 원초적 본능은 석기시대의 걷는 생활에 적응되어 있기에(이환) 빠른 삶은 왠지 낯설고 빠름에서 오는 편리함보다는 빠름을 위해 들이는 비용이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독서와 여행의 공통점은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달려간다면 돌아오는 것을 기약할 수 없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고향을 엄마 뱃속을 외면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8. '제주어'를 만나는 재미
<제주 걷기 여행>에서는 제주어(사투리)와 표준어가 병기돼 있는데, 덕분에 리뷰어들은 제주어를 만나는 즐거움을 누렸다. 제주 출신 친구가 엄마나 친구와 통화하는 소리를 듣고 충격에 빠지는 이유는 제주어가 외국어처럼 매우 생소하기 때문이다. '간세다리'라는 말부터가 그렇다. 리뷰어 오로지 관객은 '무엇보다 제주어로 쓰여진 글과 해석, 제주단어의 풀이가 몹시 인상적'이었다고 썼다. 리뷰어 '롤러코스터'도 어렵게 한 단어를 익혀서 써먹는 데 성공했다.
"겅허민(그러면), 떠나기만 하면 되는 것?"
9. '제주 올레'를 위협하는 인스턴트 관광지
제주 올렛길을 연결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명당자리마다 들어앉은 '관광지'다. 특히 제주 올레의 가장 중요한 길목 중의 하나인 '섭지코지'는 '보광'이라는 회사가 지은 대규모 관광단지가 동강내 버렸다.
제주를 갔을 때, 섭지코지의 불행을 목격했다. 대규모 관광단지를 짓는 듯 온통 공사 중이어서 차도 막히고 경관도 훼손되어 있었다. 거기에 무슨 드라마의 세트장인지가 경관을 훼손하면서 버젓이 관광객들에게 돈을 받고 영업을 하고 있어서 씁쓸했는데, 뭔가 더 어마어마한 게 지어지는 모양을 보니 다음부터 섭지코지는 절대 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감은빛)
이외에도 제주를 위협하는 대형 괴물들은 속속 태어나고 있다. 하지만 대형 괴물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 어디 제주뿐이랴.
제주는 '여성'의 섬이다. 모든 자연 경관과 사람들의 마음이 섬세하고 온화하다. 하지만 제주를 방문해서 '여성'의 이미지를 찾기는 매우 힘이 든데, 그것은 남성적인 힘에 지배를 많이 당해서 '보이는 부분'은 이미 남성화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탑동 부근에 이마트가 생겨난 이후로 제주 동문시장과 재래시장 등 상권이 거의 붕괴되었는데, 얼마 전 신제주에 이마트 2호점이 생겼고 롯데마트도 생겼다. 성산일출봉의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볼 수 있는 신양리 해수욕장에는 삼성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 보광이라는 회사에서 대규모 호텔단지를 조성해서 순식간에 '인스턴트 관광지'가 되고 말았다. 이 외에도 제주는 '패키지'라는 치밀한 괴물에 산채로 잡혀 여성성은 아주 깊은 곳으로 숨어버렸다.(승주나무)
제주올레가 제주의 숨은 혈맥을 이어 피가 통하게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10. '제주 올렛길'이 자꾸 자란다
<제주 걷기 여행>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서명숙의 본문과 무적전설의 별책부록이다. 별책부록에는 제주 올레를 여행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들이 세심하게 담겨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책 본문에서는 올레길 6코스까지 밖에 안 나오지만, 무적전설의 별책부록에는 7코스까지 나온다"(감은빛) 본문이 편집 작업에 들어가 있는 동안 7코스가 개발되었고, 편집 막바지에 작업했을 별책부록에는 그 내용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길이도 늘어나고 있다. 현재 7개 코스 101.1 킬로미터에 달하는데, 2008년10월30일자 신문에 보니 10코스까지 200 킬로미터로 길이가 추가되었다고 전한다. 거기다 내년 초 12코스까지 만들어질 것이고, 11박12일의 일정으로 전 세계 도보여행자들과 함께 '제주 걷기 축제'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제주 올렛길이 자꾸 자라나는 것이다.
책을 사면 올렛길이 늘어나고, 친구들과 함께 올렛길을 밟거나 올렛길을 여기저기 소문내고 다니면 역시 올렛길이 신이 나서 늘어난다. 이 글을 쓰는 나도 제주 사람이지만, 올렛길이 더욱 쑥쑥 자라나서 대규모 관광단지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인간과 자연의 길'이 태어나기를 바라고, 산티아고보다 더 아름답고 편안한 제주올레 완결판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다음 블로거뉴스에도 올렸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