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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지치고 힘들 때, 몰운대로 가라

[그 품에 안기고 싶다 102] 하늘과 사람 경계 가르치는 정선 산신령

등록|2008.11.05 18:43 수정|2008.11.05 19:27

몰운대화암팔경 중 제7경인 몰운대 ⓒ 이종찬



그대, 아찔한 벼랑 끝에 서 보았는가
켜켜이 깎아지른 바위 틈에 무엇이 매달려 있던가
이 앙다물고 바싹 엎드려 있는 이끼
바람을 부채질하며 위태로이 흔들리는 샛대
안간힘 쓰며 연보랏빛 꽃 한 송이 피워내는 쑥부쟁이
그들이 무어라 속살거리던가
세상살이는 이처럼 악을 쓰며 사는 것이라고
삶과 죽음은 늘 벼랑 끝이라고 하던가
그래 그것만 보이고 들리던가
저 아스라한 벼랑 아래 사람 사는 마을
바람 찬 다랑이밭 곳곳에 뿌리째 버려져
꽁꽁 얼어붙은 조선무와 조선배추
벼랑 끝자락에 뿌리박은 고사목이 죽어도 죽지 못하고
마을을 보듬고 징징 울고 있는 까닭을 이젠 알겠는가     
세상은 곧 사람이 끌고 가는 것
세상살이는 곧 사람과 싸우며 살아가는 사람살이
몰운대는 그걸 가르치려 거기 서 있다네
누가 몰운대를 모른다 하는가
누가 벼랑이 두렵다 하는가
거기 벼랑이 있어 마을이 있고
거기 사람이 있어 희망이 흐른다는 것을
그래, 우리 사랑도 그러한 것을
몰운대는 이 세상 거울이었네

- 이소리, '몰운대' 모두

탄다. 산봉우리도 타고 계곡도 타고 물도 타고 그대 눈빛도 탄다. 제법 쌀쌀한 늦가을, 화암팔경(畵岩八景)으로 널리 알려진 강원도 정선으로 가는 길. 눈에 비치는 모든 것, 삼라만상이 울긋불긋 황홀하고도 아름다운 단풍불을 활활 태우고 있다. 여기가 어딘가. 여기가 무릉도원 아닌 무릉단원이 아닌가.  

강원도 정선 출신 작가 강기희는 말했다. "내 눈에 핏발이 붉게 선 것은 모두 화암팔경을 활활 태우는 단풍불이 옮겨 붙었기 때문"이라고. 그래. 붉은 단풍잎 떠도는 티 없이 맑은 물가에 비치는 길라잡이(나)의 눈빛에도 단풍불이 붙어 붉게 붉게 타고 있다. 저만치 켜켜이 쌓인 몰운대 바위틈에도 어김없이 단풍불이 혀를 날름거리고 있다.

백두대간이 태백산을 숨 가쁘게 지나다가 한숨을 고르고, 구름도 절경에 취해 산마루에 걸터앉아 한동안 정선아리랑 한 구절 들으며 놀다 가는 곳이라는 강원도 정선. 그곳 몰운대에 가면 세상살이에 지친 시름이 절로 싸악 가시게 된다. 그 고사목을 바라보는 순간 스스로 하늘과 사람의 경계를 알게 된다.

지금 강원도 정선은 몰운대를 비롯한 화암팔경뿐만 아니라 눈에 비치는 모든 풍경이 그대로 정선백경, 정선 만경이다. 그 만경 속에 정선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먹을거리 또한 지천으로 널려 있다. 곤드레나물밥, 콧등치기 국수, 메밀감자부침, 감자전, 산채 정식, 민물고기 매운탕, 송어회, 황기백숙, 가시오갈피밥, 더덕, 도라지 등.

몰운대몰운대 가는 길목에서 만나 스레이트집 ⓒ 이종찬


몰운대거기 '몰운대'라 씌어진 표지석 하나가 정선을 지키는 산신령처럼 우뚝 서 있다 ⓒ 이종찬



"몰운대요? 모르겠는데요"

10월 31일(금) 오후 1시. 강원도 정선군 화암면 몰운1리 곤드레만드레 마을회관에서 저녁 5시에 열리는 '2008 몰운대 문학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정선으로 가는 길. 영월을 지나 정선으로 들어서자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울긋불긋한 풍경이 "히야~ 우와~" 하는 감탄사를 절로 나오게 만든다.

그야말로 만산홍엽이다. 날씨가 꽤 흐리고 간혹 빗방울이 떨어지긴 했지만 단풍불 속에 삐쭉뾰쪽 솟은 바위와 온통 단풍불이 출렁이는 산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오매 단풍 들 것네 / 장광(장독대)에 골 붉은 감잎 날아 오아 / 누이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 오매 단풍 들 것네'라는 김영랑 시가 입에서 절로 삐져나온다. 

오후 4시 30분. 단풍빛에 포옥 물들어 김영랑 시를 읊으며 화암면에 다다르자 는개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날씨가 어둑해진다. 온통 몸과 마음을 단풍불로 활활 불태우던 산들도 는개 속에 스르르 몸을 감춘다. 때 아닌 어스럼이 슬슬 내리기 시작하면서 으슬으슬 추워지기까지 한다.

저만치 슈퍼가 하나 보인다. 행여 길을 잘못 들었나 싶어 그곳에 내려 몰운대로 가는 길을 묻는다. "몰운대요, 모르겠는데요". 몰운대를 모른다? '몰운대'와 '모른다'란 발음이 엇비슷해 잠깐 헛갈리다 이내 웃음이 나온다. 작가 강기희에게 전화를 걸어 다시 확인한 뒤 몰운대를 향해 달린다. 근데, 이번에는 차가 또 말썽이다. 

몰운대몰운대 바위틈에도 어김없이 단풍불이 혀를 날름거리고 있다 ⓒ 이종찬


몰운대몰운대요, 모르겠는데요 ⓒ 이종찬



세 잔만 마시면 곤드레만드레 되는 옥수수 막걸리

"어디가 문제야?"
"아, 아무것도 아냐. 차가 열을 좀 받아서 그래."
"구조차 불러야 되는 거 아냐?"
"5분쯤 지나면 괜찮을 거야."

그렇게 5분쯤 지나 시동을 걸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차 시동이 걸린다. 하지만 차는 몰운대 곤드레만드레 마을로 가는 산길 곳곳에서 몇 번이나 말썽을 피운다. 곤드레만드레 마을 가까운 곳에서는 결국 구조차를 불러 해결해야 했다. 언뜻 몰운대가 자기를 처음 만나러 오는 우리 일행들에게 골탕을 먹이는 것만 같았다.

"몰운대를 모르니까, 몰운대가 우리를 모르는가 보구먼."이란 우스개 소리를 하며 곤드레만드레 마을에 닿은 시각은 저녁 5시30분. 행사장 들머리에는 장작불이 활활 타고 있고, 그 장작불을 중심으로 50여 명 남짓한 사람들이 웅성웅성 불을 쬐며 커피 혹은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이 마을에서 직접 빚었다는 옥수수 막걸리. 한 잔 입에 대자 술술 잘도 넘어간다. 뒷맛이 아주 깔끔해 안주조차 필요 없을 정도다. 두 잔째 입에 대자 마을 이장님이 "이 막걸리, 마실 때는 아주 좋지만 세 잔만 마시면 곤드레만드레 되는 술이니 알아서 잡숴" 한다. 하지만 길라잡이가 누군가. 자칭 막걸리의 달인이 아닌가.

술맛이 너무 좋아 행사 도중에도 은근슬쩍 빠져나와 대여섯 잔을 거푸 마셨지만 끄떡없다. 저녁 6시, 작가 강기희 사회로 시작된 몰운대문학축전에는 작가 박도와 몰운대 출신 작가 유시연, 시인 이승철, 유승도, 박정대, 손세실리아, 윤일균, 박선욱, 성희직, 가수 인디언 수니 등 문학예술인 30여 명과 일반인 30여 명이 참석했다.

몰운대5백년이 넘은 노송(고사목)이 좌우 건너편 3형제 노송과 함께 절벽 아래 세상을 굽어보며 우뚝 서 있다 ⓒ 이종찬


몰운대그 절벽 아래 저만치 아스라한 곳에 농가 몇 채 보이고, 비닐하우스와 다랑이논이 사이좋게 눈 맞춤을 하고 있다 ⓒ 이종찬



구름도 쉬어가는 마을, 몰운대 왜 모른대

시월의 마지막 밤 저녁 7시 30분께. 곤드레만드레 마을에서 옥수수 막걸리와 함께 늦은 저녁을 먹고 숙소인 곤드레빌로 올라갔다. 숙소에 짐을 푸는 동안 막걸리와 안주가 여기저기 놓이기 시작했다. 쉬이 잠 들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렇게 새벽 4시쯤이 되어서야 일행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잠이 들었다.

1일(토) 아침, 곤드레나물밥과 곤드레국으로 아침을 먹고 몰운대를 찾아 떠난 시각은 오전 9시. 몰운대로 가는 산길 저만치 잎이 모두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은 감나무 사이 한두 채씩 서 있는 스레이트 집이 몹시 외롭고 쓸쓸해 보인다. 하지만 그 외롭고 쓸쓸한 풍경도 잠시. 눈을 돌리면 이 산 저 바위 곳곳에 단풍빛이 예쁘게 물들어 있다.

티 없이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돌아 산길을 조금 오르자 거기 '몰운대'라 씌어진 표지석 하나가 정선을 지키는 산신령처럼 우뚝 서 있다. 그 곁에 서 있는 두 개의 장승에 씌어진 "몰운대 왜 모른대, 구름도 쉬어가는 마을"이란 글씨도 재미있다. 표지석을 뒤로 하고 조금 더 오르자 거기 널찍한 바위가 촘촘촘 박혀 있다.

바로 그 앞. 그곳이 고사목이 가지를 넓게 펼치고 있는 몰운대 아스라한 절벽이다. 그 절벽 아래 저만치 아스라한 곳에 농가 몇 채 보이고, 비닐하우스와 다랑이논이 사이좋게 눈 맞춤을 하고 있다. 몰운대 절벽 아래는 청자빛 하늘을 담은 물이 단풍에 취한 기기묘묘한 바위를 간질이며 굽이쳐 흐르고 있다. 

몰운대몰운대에서 바라본 다랑이밭 ⓒ 이종찬


몰운대몰운대 절벽 아래는 청자빛 하늘을 담은 물이 단풍에 취한 기기묘묘한 바위를 간질이며 굽이쳐 흐르고 있다 ⓒ 이종찬



세상살이 고달플 때면 몰운대에 서 보라

화암팔경 중 제7경인 몰운대(동면 몰운 2리)는 수백 척의 암석을 깎아 세운 듯한 절벽 위에 5백년이 넘은 노송(고사목)이 좌우 건너편 3형제 노송과 함께 절벽 아래 세상을 굽어보며 우뚝 서 있다. 고사목을 붙잡고 위태로운 절벽 아래 펼쳐진 세상을 바라보자 그곳에 그동안 아등바등 살아온 길라잡이의 삶이 실루엣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래. 이곳이 천상선인들이 선학을 타고 내려와 시흥에 도취되었고, 구름도 아름다운 경관에 반해 쉬어 갔다고 하는 그 몰운대다. 정선군 안내자료에 따르면 몰운대 절벽 아래에는 수백 명이 쉴 수 있는 널찍한 반석이 펼쳐져 있으며 계곡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어 여름철에는 소풍객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길라잡이는 그곳에는 가지 못했다. 굳이 그곳에 가보지 않아도 몰운대가 왜 그토록 수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락내리락했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대신 몰운대 고사목 앞에 서서 몰운대 출신 작가 유시연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 속에 몰운대가 영원히 살아남아 길라잡이가 힘들 때마다 동무되어 주기를 바라며. 

그날, 몰운대를 가슴에 품고 서울로 향하는 길에서 길라잡이는 '몰운대'란 시를 한 편 썼다. 몰운대는 세상살이 근심 걱정 하나 없는 하늘나라 신선들이 내려와 놀다 가는 곳이 아니라 고된 세상살이에서 지쳐 다시 일어서고 싶지 않을 때 찾는, 가난한 민중들에게 세상살이를 가르쳐주고 새로운 희망을 품게 하는 구원처라고.  

몰운대몰운대 출신 작가 유시연. 몰운대를 닮았지 않습니까 ⓒ 이종찬


덧붙이는 글 ☞가는 길/서울-영동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영월-정선 남면 신동읍-증산(좌회전)-421번 지방도-몰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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