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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집서 주인에게 예쁨 받고 잘 살아라"

손자 같았던 강아지 분양하던 날

등록|2008.11.05 21:13 수정|2008.11.05 21:17

▲ 절집, 세심사로 떠난 반야. 제일 '뚱띠'면서 일곱 마리 중 제일 순한 놈입니다. ⓒ 조명자


들며날며 꼭 손자 챙기듯 정성을 다 해 돌봤던 강아지 두 마리를 드디어 출가시켰습니다. 매일 한 마리씩 방출했는데 내 보낼 때마다 가슴 한 귀퉁이가 시려집니다. 첫 번째로 나간 놈은 '세심사'라는 절집으로 입양됐으니 말 그대로 '세간'에서 '출세간'으로 터전을 옮긴 격입니다.

절집 강아지답게 미리 '반야'라는 이름까지 지어주고 애지중지 키웠는데 반야는 형제중 제일 '뚱띠'면서 제일 순하기도 합니다. 새끼들 대부분 하얀 어미 털 색깔을 무늬삼아 섞었건만 이놈은 제 아비 쏙 빼 속속들이 누렁이입니다.

개 팔자나 사람팔자나 어디에 떨어지느냐에 따라 팔자가 엇갈린다만, 반야 이놈이 7형제 중 그래도 가장 팔자가 좋은 놈일 것 같습니다. 이웃 할머니 댁에 분양되는 다른 놈들은 십중팔구 보신탕용으로 팔려갈 것이 뻔하지만 설마 절집에서 그럴 리 있겠습니까.

생각 같아선 우리처럼 개라면 사족을 못 쓰는 주인만 골라 분양하고 싶었지만 어디 마음대로 되나요. 반야까지 두 마리 외 다섯 놈은 몽땅 마을 어른들께 분양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일곱 마리 모두 황구만 튀어나왔다는 소문을 듣고 마을 할머니들이 서로 가져가겠다고 난리를 치셨습니다. 할머니들이 왜 그렇게 강아지를 탐내실까 의아했는데 다 까닭이 있더라고요.

나중에 개장수한테 팔 때 황구 값이 백구 값보다 훨씬 더 나간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만정이 떨어져 한 마리도 주기 싫어졌습니다. 남편한테 얘기를 전하며 투덜댔더니 뭐라고 한 마디를 합디다. 이야긴즉슨 죽는 날까지 가족처럼 키우겠다는 사람들을 무슨 수로 만나냐는 것이지요.

▲ 두번째 방출 주역. 마을 할머니 댁으로 입양됐는데 듣자하니 다 키우면 개장수한테 팔 거랍니다. ⓒ 조명자


반야는 기쁜 마음으로 전송했는데 다음 놈은 차마 손이 안 떨어졌습니다. 그 집에 가서 어떻게 대접받고 그 다음 운명은 어떻게 될지 안 봐도 비디오니 보내는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우리 동네는 어찌된 셈인지 개를 풀어놓고 키우는 집이 하나도 없습니다.

줄에 묶여 사는 놈은 그나마 괜찮은 편이고 대부분 철망 안에 갇혀 평생을 감옥 아닌 감옥에서 지내는 형편입니다. 납덩이처럼 무거운 마음으로 가슴에서 떼어내는데 요놈이 '쥐눈이 콩'처럼 새까만 눈을 또록또록 굴리며 나를 쳐다보는데 당장이라도 취소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습니다.

제 새끼가 가는지 마는지 몽이와 비는 멍청하게 딴 짓만 하고 있습니다. 수의사인 후배 말에 의하면 새끼들을 일시에 없애면 어미 개가 한동안 우울증을 앓는답니다.

그런데 근 두 달 가까이 새끼들에게 긁히고 찢겨가면서까지 지극정성으로 젖을 물려 키운 제 새끼가 가는데 본 척도 않다니 개에겐 새끼 수까지 챙기는 명민함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새집에 가서 주인한테 예쁨 받고 잘 살아라."

건네주면서 소리 내 작별인사를 하는데 왜 그렇게 뭉클 하든지요. 훗날 성견이 되어 인간들에게 '육보시(肉布施)'를 해야 할 운명을 타고난 놈. 인간들에게 제 한 몸 아낌없이 바치고 후생엔 축생이 아닌 인간의 몸을 빌려 환생하라고 마음속으로 빌어주며 이별을 고했습니다.

하긴 성성한 몸을 '육보시' 할 수 있는 이놈은 시원찮은 나보다 나을지 모르겠습니다. 사후에 장기기증을 하겠다고 결정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종합병원이 따로 없어 쓸 만한 장기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너무 미안했습니다. 나눠줄 게 몸뚱이 밖에 없는데 그 몸뚱이마저 변변찮다는 고약함이란.

내 곁을 떠나는 놈들과 약속 하나를 해야겠습니다.

"너는 미식가인 인간의 입맛을 위해 보시를 하고, 나는 병든 이를 위한 실험용으로 보시를 하마. 우리 다음 생엔 좋은 도반으로 만나자. 내 예쁜 강아지들아."

▲ 이렇게 뒤엉켜 나대던 추억을 어찌할꼬... ⓒ 조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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