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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22)

― ‘당신의 사정을 알아봤오’ 다듬기

등록|2008.11.06 10:58 수정|2008.11.06 10:58
.. 대학교 2학년 때 첫사랑에 빠진 나는 어찌어찌 당신의 사정을 알아봤오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천상병, 지상,1988) 21쪽

“2학년 때”라 하고 “2학년 시절(時節)”이라 하지 않으니 반갑습니다. ‘알아봤오’라 하고 ‘추적(追跡)했오’라 하지 않은 대목도 반갑습니다. ‘사정(事情)’은 그대로 두거나 ‘어떻게 사는가’나 ‘요즘 삶’으로 손질해 줍니다.

 ┌ 당신의 사정을
 │
 │→ 당신 사정을
 │→ 당신 요즘 형편을
 │→ 당신이 어떻게 사는지를
 │→ 당신이 요즘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 …

붙여도 되고 안 붙여도 되는 토씨도 있을 테지만, 토씨 ‘-의’를 헤아려 본다면, 안 붙이고도 얼마든지 말이 될 뿐 아니라, 외려 한결 부드럽거나 매끄럽곤 합니다.

 ┌ 대학교 2학년 때
 │
 ├ 대학교의 2학년 때
 ├ 대학교 2학년의 때
 └ 대학교의 2학년의 때

 우리 말투는 “대학교 2학년 때”입니다. 토씨 ‘-의’를 붙이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알맞게 쓰는 우리 말투이고, “초등학교 1학년의 학생”이나 “초등학교의 1학년 학생”처럼 쓰는 말투는 알맞지 못한 말투입니다.

 이런 말투를 곰곰이 헤아리면서 가지치기를 하면, “우리 집 강아지”이지 “우리 집의 강아지”나 “우리의 집의 강아지”가 아님을 어렵지 않게 깨닫게 됩니다. “그분은 어머니 고등학교 동창이셔”가 알맞게 쓰는 말투이며, “그분은 어머니의 고등학교 동창이셔”나 “그분은 어머니 고등학교의 동창이셔”는 알맞지 않게 쓴 말투임도 깨달을 수 있어요.

 ┌ 당신 어머니셨어요?
 └ 당신의 어머니셨어요?

 그러나 우리들은 금세 잊습니다. 금세 잊고 또 잘못 씁니다. 너무 쉽게 잊고 너무 쉽게 잘못 쓰고 맙니다.

 한두 번이야 잘못 쓸 수 있다고 하지만, 두 번 세 번 되풀이되고, 열 번 스무 번 되풀이되도록 느끼지 못한다면, 좀 지나치지 않느냐 싶은데.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너무 푸대접하고 있지 않느냐 싶은데. 그렇지만 다시금 생각을 가다듬습니다. 하느님은 잘못한 이가 백 번 천 번 잘못을 되풀이해도 백 번 천 번 거듭거듭 잘못을 받아들이고 타일러 준다고 했습니다. 하느님이 잘못한 이를 받아들여 주는 마음이란, 우리들 누구나 언제나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모자람과 아쉬움이 있다는 이야기이고, 우리들이 저지르는 똑같은 잘못이란, 대통령을 뽑을 때 그닥 옳지 못한 사람한테 표를 주고 나중에 가서 땅을 치는 그런 잘못뿐 아니라, 알맞춤하게 말과 글을 다스리지 못하는 잘못도 한동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어찌어찌 당신 사는 집에도 가 보았오
 ├ 어찌어찌 당신 살림살이를 알아봤오
 ├ 어찌어찌 당신 삶 한자락 들여다봤오
 └ …

 좀더 내 삶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매무새라면 내 말과 글을 찬찬히 들여다보기 어렵습니다. 좀더 내 이웃을 알아보지 못하는 몸가짐이라면 내 말이며 글이며 고이 껴안기 어렵습니다. 좀더 내 삶터와 뿌리를 헤아리지 못하는 마음씀이라면 내 말이든 내 글이든 사랑스럽고 믿음직하게 북돋우기 어렵습니다.

 잘못 쓰는 일이 잘못이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잘못 쓰면서 잘못인 줄 깨닫지 못하니 잘못이고, 잘못 쓰고 말았음을 깨달은 뒤 한 번이라도 바로잡거나 추스르려는 마음을 품지 못하니 잘못입니다.

 한 번으로 그치고 다음에는 새로워지려는 모습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두어 번 되풀이하는 가운데 알뜰히 배우거나 익힐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내 이웃과 동무한테 따순 손길 살며시 내미는 마음과 마찬가지로, 내가 쓰는 말과 글에도 따순 마음길을 넌지시 보낼 수 있는 우리들로 나아져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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