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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음표에 갇힌 한자말 (13) 옥석(玉石)

[우리 말에 마음쓰기 468] '견인차(牽引車)'와 '끌차', '이끄는 사람'

등록|2008.11.06 10:58 수정|2008.11.06 10:58
ㄱ. 옥석(玉石)

.. 그 결과 사용하는 그릇은 반드시 옥석(玉石)이 혼합된다 ..  <다도와 일본의 도>(야나기 무네요시/김순희 옮김, 소화, 1996) 85쪽

‘그 결과(結果)’는 ‘그래서’나 ‘그리하여’로 다듬습니다. ‘사용(使用)하는’은 ‘쓰는’으로 손보고, ‘혼합(混合)된다’는 ‘섞인다’나 ‘뒤섞인다’나 ‘함께 쓰인다’나 ‘뒤죽박죽이 된다’로 손봅니다.

 ┌ 옥석(玉石)
 │  (1) = 옥돌
 │  (2) 옥과 돌이라는 뜻으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함을 이르는 말
 │   - 옥석을 고르듯 사람을 가려 쓸 줄 알아야 한다
 │  (3) 모서리가 둥글고 큰 천연 석재
 │
 ├ 옥석(玉石)이 혼합된다
 │→ 옥과 돌이 섞인다
 │→ 구슬과 돌이 뒤섞인다
 │→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뒤죽박죽이다
 │→ 좋고 나쁜 것이 함께 있다
 └ …

한자말 ‘옥석’에는 세 가지 뜻이 있다고 하나, 이 가운데 둘째 뜻으로만 쓰이지 싶습니다. 말 그대로 “옥과 돌”인데, ‘구슬 玉’이라는 한자임을 헤아린다면, “구슬과 돌”이라 적을 수 있는 한편, ‘구슬돌’처럼 한 낱말로 삼아서 적어도 넉넉합니다.

구슬은 구슬이요, 돌은 돌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옥구슬’이라는 말이 쓰이고, ‘옥’은 보석 가운데 하나를 가리킨다고도 합니다. 이런 자리에서는 ‘옥’ 그대로 적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좋고 나쁨을 가린다’고 하는 자리에서 쓰는 ‘옥’은 ‘구슬’로 걸러낼 때가 한결 어울린다고 느껴요.

 ┌ 옥석을 고르듯 (x)
 └ 구슬과 돌을 고르듯 (o)

“구슬과 돌”이 있다면, “알맹이와 쭉정이”가 있습니다. “알짜와 깜부기”가 있습니다. “차돌과 푸석돌”도 있을 테지요.

속이 야무진 사람이 있으면 속이 텅 빈 사람이 있고, 속이 튼튼한 사람이 있으면 속이 허술한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쓰는 말에도 알짜가 있고 깜부기가 있습니다. 알맹이 단단한 말이 있고 쭉정이와 다를 바 없는 말이 있습니다. 구슬 같은 말을 찾아내어 쓰는 몫은 우리한테 달려 있습니다. 푸석돌 같은 말을 끝까지 붙잡으면서 얄궂게 살아가고 마는 아쉬움도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ㄴ. 견인차(牽引車)

.. 가야 할 먼 길이 있는 사람에게는 새해 새아침이 주는 꿈과 바람이 견인차(牽引車) 역할을 해서 더욱 좋다 ..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한 나남출판 4반세기(1979-2004)>(나남출판, 2004) 51쪽

‘역할(役割)’이라는 일본 한자말은 고쳐야 한다고들 많이 이야기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못 들은 사람도 많고,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도 못 고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그냥 써야 할까요, 먼 뒷날 고쳐야 할까요, 이냥저냥 대충 스쳐 지나가면 될까요.

 ┌ 견인차(牽引車)
 │  (1) = 레커차
 │   - 견인차가 와서 사고 난 차를 끌고 갔다
 │  (2) 무거운 물건이나 수레 따위를 뒤에 달고 끄는 차. ‘끌차’로 순화
 │  (3) 선두에 서서 여러 사람을 이끌어 가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 그는 우리나라가 경기에서 이기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
 ├ 견인차(牽引車) 역할을 해서
 │→ 끌차 노릇을 해서
 │→ 자기를 이끌어 주어서
 │→ 나를 끌어 주니
 └ …

국어사전에서 ‘견인차’를 찾아보니, 묶음표를 넣은 한자말 보기로 찾은 대목과 마찬가지로 “견인차 역할”이라고 적은 보기글이 보입니다. 다시 국어사전을 뒤적여 ‘역할’을 찾아봅니다. 뜻풀이는 “자기가 마땅히 하여야 할 맡은 바 직책이나 임무. ‘구실’, ‘소임’, ‘할 일’로 순화”로 적혀 있습니다. 국어사전 스스로 고쳐서 쓸 낱말로 ‘역할’을 다루고 있으나, 이처럼 보기글 한쪽에는 ‘역할’이라는 낱말이 버젓이 쓰입니다. 국어학자들은 ‘고쳐쓸 낱말, 이제는 쓰지 말아야 할 낱말’로 ‘역할’을 다루면서, 자기 스스로는 안 고쳐씁니다. 자기들부터 그냥 그대로 놓아 둡니다.

 ┌ 견인차가 와서 사고 난 차를 끌고 갔다 (x)
 └ 끌차가 와서 사고 난 차를 끌고 갔다 (o)

끌어 주는 차라면 ‘끄는 차’나 ‘끌차’입니다. 불을 끄는 차를 ‘소방차(消防車)’라 하지요? 따지고 보면, 처음부터 ‘불끄는 차’라고 이름붙일 수 있었습니다. ‘불자동차’라 쓰기도 하고요. 짐을 실어나르는 차이니 ‘짐차’입니다. ‘화물차(貨物車)’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제나 저네나 또 앞으로나, 우리 말이 우리 말다운 모습을 찾기란 대단히 어려웁겠구나 싶습니다. 국어학자들 스스로 옹글게 말살림을 꾸리지 못하기도 하지만, 책쟁이들 또한 스스로 글살림을 야무지게 가꾸지 않습니다. 말을 다룬다는 이들, 글로 먹고산다는 이들이 말과 글을 참으로 얕보고 깔보고 하찮게 여기고 있습니다. 함부로 다루고 마구 굴리고 있습니다.

옳게 써야 할 말을 옳게 못 씁니다. 얄궂어서 털어내야 한다면서도 털어내지 못합니다. 하기는, 옳은 밥을 애써 찾아서 먹기보다는, 배속만 채우면 그만이라고 여기면서 유전자 건드린 곡식을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 우리들 아닙니까. 소한테 동물성 사료를 먹여서 병에 걸리도록 한 뒤에도 거리낌없이 소고기를 즐기는 우리들 아닙니까. 양심수가 갇힌 감옥보다 훨씬 좁은 우리에 닭을 가두고 잠조차 재우지 않아 짜증 실컷 나게 하면서 알을 낳게 한 뒤, 이 알이 맛이 좋다며 냠냠짭짭 즐기는 우리들 아닙니까.

삶이 엉터리이니 말이 엉터리입니다. 삶이 엉망이니 말이 엉망입니다. 삶이 어처구니없이 흐르니 말이 어처구니없이 찌듭니다. 삶이 돈벌이만 바라보고 있으니, 말이야 어떻게 찌그러지든 내 알 바 아니라고 합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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