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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같은 글 한편, 상품에 현혹되지 마시라

[공모 달인이 사는 법①] 주제에 꽂히고, 감동이 만나면 백발백중

등록|2008.11.08 15:52 수정|2008.11.08 16:19

▲ 공모전에 대한 정보가 총 망라돼 있는 '엽서시 문학공모' 사이트 ⓒ '엽서시 문학공모' 홈페이지 캡쳐


"15살의 겨울. 그 겨울의 기억 속엔 늘 그 골목이 있습니다. 밤마다 어두운 골목길에 쪼그려 앉아 서서히 작은 얼음조각상이 되어가던 그 쓰라린 기억. 하루도 거르지 않는 아버지의 술주정은 아버지가 잠에 곯아 떨어져서야 비로소 끝이 났습니다. 해서 날이면 날마다, 또 밤이면 밤마다 유령 울음소리 같은 겨울 찬바람에 진저리를 치며 아버지가 깊이, 아주 깊이 잠들기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아버지가 잠들기를 기다리는 동안 골목에 쪼그려 앉아 있을라치면, 슬픔보다는 분노가 앞섰습니다. 이웃집에서 새어 나오는 따스한 불빛들.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밝은 웃음소리들. '춥지. 우리는 이렇게 행복한데. 부럽지?' 그건 분명 악마의 이간질이었습니다. 따뜻한 이웃들과 저 사이를 이리저리 휘젓는 악마의 이간질은 분노의 태풍이 되어 저를 오들오들 떨게 만들었습니다.

이웃들의 평범한 일상은 그네들이 돈이 많아서도 아니고, 명예가 높아서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만은 지극히 평범한 그 일상조차 누릴 수 없다는 것에 화가 났고 분노가 솟구쳤습니다. 15살. 모든 게 예민할 때이고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시기와 질투가 앞설 수밖에 없는 그때. 저는 겨우 15살이었습니다.   

부산 대신동 산복도로 바로 아래. 꼬불꼬불한 골목 양옆으로 성냥갑 같은 20여 가구가 다닥다닥 붙어 있던 곳. 집집마다 철창 같은 작은 창들이 무슨 숨구멍 마냥 뎅그마니 나 있던 그런 곳. 그 골목 맨 끝집에서 저는 그렇게 분노와 슬픔이 뒤범벅된 채 하루하루를 오들오들 떨며 15살의 나이를 살아내야 했습니다."  

순간. 컴퓨터 자판 위로 뭔가 '툭' 하고 떨어졌다. 눈물이었다. 그 새벽 '그때 그 골목 끝집'이란 글 한 편을 다 끝내기까지 나는 울고 또 울었다. 내가 쓴 글에 나는 그렇게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 눈물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언감생심 꿈도 못 꾸던 양문개폐형 대형 냉장고를 선물로 받았기 때문이다.

2004년. 당시 MBC 라디오의 <여성시대>라는 프로에 '추억의 백일장'이란 코너가 있었다. 매주 한 가지 주제를 놓고 백일장을 여는 것인데 상품이 만만치 않았다. 바로 양문개폐형 대형 냉장고였다. 당시 주부들로서는 꿈의 상품이요, 라디오 방송 상품치고는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나는 '골목'이란 주제로 열린 그 백일장에서 '그때 그 골목 끝집'이란 글로 장원을 먹었고, 부상으로 양문개폐형 대형 냉장고를 받았다.

공모의 달인에게도 철칙은 있다

공모! 그런 것이었다. 스스로의 감동에 절로 따라오는 상품. 그것이 바로 공모의 매력이었다. 그런데 그 스스로의 감동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왜? 견물생심이란 말이 있던가. 공모전엔 반드시 상금이나 부상이 따르기 마련인데, 그 상금이나 부상에 눈독을 들이다 보면 진정 자신이 쓰고자 하는 글이 아닌 진실을 왜곡 또는 과장하는 부끄러운 오류를 범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수많은 공모전에 도전하며 내가 얻어낸 결론이다. 

지난 몇 년 라디오방송을 비롯해 기업체공모전, 출판사공모전, 또 <오마이뉴스> 공모기사 등. 난 그것들과 참 찰떡궁합이었다. 그러나 그 찰떡궁합 이면에는 두 가지 철칙이 숨어 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필(feel)'이다. 공모전의 주제를 보는 순간 머리부터 발끝까지 짜릿한 전율이 느껴진다면 바로 '필'이 꽂힌 것이다. 이렇게 '필'이 꽂혀 쓴 글이 마침표를 찍을 때쯤 스스로의 만족에 가슴이 뻐근해진다면 당선은 백발백중이다.   

두 번째 철칙은 자식 팔아 돈 벌지 않는 것이다. 즉, '견물생심'이란 네 글자에 절대적으로 초연하고자 노력했다. 더러 비웃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 글 한 편 한 편을 자식과 같이 생각한다. 내 이름 석 자를 걸고 나가는 내 글 한 편 한 편을 자식처럼 애지중지한다. 그러니 아무리 상금에, 상품에 눈이 어두워도 자식 팔아 그것들과 맞바꿀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자식 같은 글 한편, 상품에 현혹되지 마라

라디오방송에 한참 글을 쓸 당시. 오전 한나절을 MBC, KBS, SBS 방송3사를 넘나들며 귀는 라디오에, 눈은 프로그램 게시판 붙박이를 하다 보니 자연 단골(?)인사들도 파악하게 됐다. 나아가 몇몇은 서로 언니동생하며 방송에 대한 정보도 공유하고 수다로 스트레스도 푸는 아주 막역한 사이로까지 발전하게 됐다.

주부 대상 라디오 아침방송에 나오는 글은 다반사가 개개인의 일상적인 이야기들이다. 그렇다 보니 방송에 이름 몇 번만 나오다보면 그 집 사정쯤은 대충 짐작해 볼 수 있는 혜안이 생긴다. 거기다 몇몇 단골인사들과의 정보공유까지 하다보면 누가 진실 왜곡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 더러 레이다망에 포착 될 때가 있다.

가장 큰 진실 왜곡은 바로 중복송고. 그 중복송고의 함정은 바로 상품이었다. 같은 글을 방송3사에 모두 보내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보낸 글이 한 곳에서만 방송된다면 별 문제 될 것은 없다. 그러나 같은 글이 이 방송 저 방송을 타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해당 프로그램 게시판은 불이 난다. 방송 나가기가 무섭게 '그 글은 언제 어떤 방송에 나온 글이다'라는 제보가 득달같이 이어진다.

또 단골 인사들과의 정보교류를 통해서도 그 사실은 신속하게 전달된다. 하물며 중복송고의 낙인이 찍힌 어떤 이들은 본인 이름 대신 가족들의 이름으로 글을 보내 방송을 타고 상품을 챙기는 아주 집요한 도전(?)을 하는 일도 더러 있었다. 이 모두가 상품의 함정 때문이며 더불어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걸고 나가는 자신의 글에 대해 스스로 모독을 자행한 것이다. 

내가 줄기차게 공모전에 나서는 까닭은...

▲ 장르별 공모전 정보가 총 망라돼 있는 '엽서시 문학공모' 홈페이지 ⓒ '엽서시 문학공모' 홈페이지 캡쳐



그렇다면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프로도 아니고 아마추어들이 상금이나 상품을 욕심내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그것들로부터 초연해질 수 있다면 그건 이미 아마추어의 범주를 벗어난 것이 아닌가? 그럼 당신은 스스로를 프로라고 생각하나?'

절대 아니다. 물론 난 아마추어다. 그럼 '상금이나 상품 때문도 아닌데 왜 그렇게 줄기차게 공모전에 도전하는가'라고 물어보고 싶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공모전은 내 고단한 삶의 비타민 같은 존재이고, 더러 현실에 안주해 버리려는 내 나태함을 일깨워주는 회초리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떤 공모전의 어떤 주제이든 그 글에는 내 경험과 진실, 즉 내 인생의 참모습이 밑바탕에 깔려야 한다.

경험을 이야기하다 보면 아팠던, 혹은 행복했던 내 지난 시간의 편린들을 들추어 보게 된다. 아팠던 지난 날은 그것들대로, 행복했던 지난날은 또 그것들대로,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가는 현실 앞에선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값진 보약인 것이다.

그렇다면 공모전에 대한 정보는 어떻게 알아내는가? 문학 관련 공모전 정보 사이트인 '엽서시 문학공모' 홈페이지를 주로 이용한다. 이 홈페이지에는 장르별 공모전 정보가 총 망라돼 있어 쓰고자 하는 분야의 정보를 단박에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또 좋은 정보는 각 기업체의 사보이다. 요즘은 각 기업체마다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공모전을 많이 실시하고 있다. 기업체 사보는 공모전에 대한 정보도 물론이거니와 매월 독자 원고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어 '도랑 치고 가재 잡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이 외 청취자의 사연들로 꾸며지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수시로 방문해 특별 공모전을 탐색한다. 라디오 프로그램의 경우, 평상시에는 일반적인 청취자의 사연으로 진행한다. 그러나 내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무슨 무슨 때, 즉 명절이나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 같은 특별한 때는 특별공모전을 여는 것이 다반사이다.

그렇다고 이 모든 공모전에 다 도전하는 건 아니다. 그 중 가장 '필'이 꽂히는 주제가 있는 공모전은 기필코 도전한다. 그럼 도전한 공모전마다 다 성공하느냐? 그렇진 않다. 만약 그랬다면 '김정혜'란 이름 석 자는 지금쯤 유명작가의 반열에 올랐을 것이다.

아무리 '필'이 꽂혀도 글에 정성을 들이지 못하면 절대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마감에 쫓겨서 허둥지둥 글을 마무리한다든지, 너무 자신만만해 퇴고에 정성을 기울이지 못한다면 당연 미역국을 먹어야 하는 것이다.

마흔 다섯, 여전히 풋내 나는 아마추어다

▲ 투게더와 MBC 여성시대가 함께 하는 ‘제3회 가족사랑 수기 공모전’ 주제는 '엄마 사랑해요' ⓒ '빙그레 투게더' 홈페이지 캡쳐



마흔 다섯. 여전히 풋내 나는 아마추어다. 그럼에도 공모전이란 험준한 산을 오르고 또 오른다. 왜? 행복에 겨워 기꺼워한 날도 많았고, 왜 나만 불행하냐며 통곡한 날도 많았다. 그런데 공모전에 낼 글을 쓰다보면 행복도 불행도 다 내가 껴안아야 할 내 삶임을 깨닫게 된다. 행복은 불행을 이겨내는 원동력이고 불행은 행복을 배가 시키는 원동력임을 깨닫는 것.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정말 값진 걸, 공모전을 통해 공짜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행복한 글을 쓸 때는 그 행복이 가져다 준 환희가 새삼 고맙고, 불행한 글을 쓸 때는 그 불행을 잘 참고 견뎌준 나 자신을 대견스러웠다. 그렇게 나는 공모전을 통해 내 삶의 발자취를 확인한다.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내 삶에 그 어떤 고난이 닥치더라도 씩씩하게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최면을 건다.

스쳐 지나는 바람결에 우수수 낙엽 떨어지는 소리만으로도 스산하기 그지없는 이 가을 밤. 누군가 고단하고 권태로운 삶에 깊은 한숨을 내뱉을지도 모르겠다. 어떤가. 지금 당장 가슴이 뻐근해지는 글 한 편 써서 공모전에 도전해 보는 것이.

투게더와 MBC 여성시대가 함께 하는 '제3회 가족사랑 수기 공모전'이 마침 지금 진행 중이다. 주제는 '엄마 사랑해요'이다. '엄마'라는 존재는 이 세상 어떤 고단함도 권태로움도 다 보듬어 줄 것이기에 굳이 좋은 결과를 기대하지 않더라도 글을 쓰는 동안 충분히 위로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가을이 점점 깊어지는 이 밤. 난 쉬 잠들지 못할 것 같다. '엄마'라는 두 글자에 또 '필'이 꽂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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