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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부시=MB? 이상한 삼단논법

[정욱식 칼럼] 이명박 대통령, 왼쪽 귀도 열어야 산다

등록|2008.11.07 17:52 수정|2008.11.07 17:52

▲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자와 이명박 대통령 ⓒ 연합뉴스·남소연



"북한과의 대화, 6자회담을 통한 북핵 해결 등으로 방향을 정한 부시 행정부 2기와 비교해 오바마 당선자의 대북정책이 다르지 않다."

어제(6일)와 오늘, 언론이 일제히 보도한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발언이다. 이 관계자는 "부시 행정부에서 쌓아왔던 한미공조도 유효하다, 따라서 대북정책 기조에는 변화가 없다"고 못 박았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은 7일 오전 오바마 당선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한미동맹 강화, 북핵 공조 유지 등을 확인했다. 이로써 정부는 오바마 당선 이후 거세게 제기되고 있는 '한미관계 이상기류론'과 '대북정책 엇박자론' 진화에 성공하게 되었다며 안심하는 분위기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두 가지 질문이 제기된다. 하나는 '부시 2기와 오바마의 대북정책이 과연 같은가'이다. 다른 하나는 '부시 행정부와 이명박 정부 사이의 대북정책 공조가 잘 이뤄졌느냐'는 것이다.

떠밀린 부시, 시작부터 다른 오바마

첫 번째 질문부터 검증해보자. 필자는 이미 5일자 칼럼 '오바마가 MB정부 처지 고려할 것 같은가'에서 "부시의 대북정책 계승자는 매케인이 아니라, 오바마"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오바마의 대북정책은 2007년 이후 부시의 정책과 대단히 흡사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북한에 대한 비난 자제 및 핵문제로의 집중, 북한과의 직접대화 및 6자회담 병행, 주고받기식의 협상, 북한의 핵포기와 북미관계 개선 병행 등은 오바마의 대북정책일 뿐만 아니라 부시가 6년을 허송세월했다가 2007년부터 선택한 정책 노선이다. 이에 따라 '부시와 오바마의 대북정책은 다르지 않다'는 정부의 인식에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일리'만' 있다. 두 가지 중대한 차이를 간과했기 때문이다. 하나는 부시의 정책 전환은 안팎의 사정에 따라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이뤄졌다면, 오바마의 대북정책은 '국제주의적 실용주의'라는 그의 철학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오바마는 공화당은 물론이고 민주당 경선 당시 경쟁자였던 힐러리 클린턴의 거센 비난에도 '적대국 지도자와의 조건없는 대화'를 외교정책 공약의 핵심으로 내세웠다. 선거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었음에도 '적과 대화를 거부하는 것은 미국의 이익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다'는 확고한 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앞선 칼럼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이다. 부시는 정책 전환에도 임기 내에 김정일을 만날 의사가 없다는 것을 여러 차례에 걸쳐 분명히 밝혔다. 그런데 오바마는 "김정일을 만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누누이 강조하지만, 한반도 비핵평화로 가는 길에 북미정상회담은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차이는 북한이 부시와 오바마를 상대할 때 상당한 차이를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신을 "악의 축" "폭정의 전초기지"로 부른 부시 행정부에 대해, 북한은 부시의 대북정책 전환의 진정성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반면 오바마는 선거 유세 때 북한이나 김정일에 대해 도덕적, 이념적 비난을 하지 않았다. 신뢰의 수준이 다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실제로 북한의 향후 대미정책의 방향은 최근 두 가지 행보를 통해서 이미 드러나고 있다. 하나는 미국 대선에 발 맞춰 리근 외무성 미주국장을 미국에 파견한 것이다. 리근은 "(미국에서)어떤 정부가 출범해도 그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해, 북미관계 개선에 상당한 속도를 내고 싶다는 뜻을 강력히 피력했다.

다른 하나는 김정일의 '사진 정치'이다. 최근 북한 매체는 김 위원장의 축구 경기 관람과 군부대 시찰 사진을 잇달아 내보내고 있다. 이는 '나의 통치 능력에는 문제가 없으니, 잘해보자'는 메시지를 오바마 당선자에게 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김정일의 '건강이상설'을 불식시킴으로써, 오바마가 대북정책을 검토할 때 하나의 중대한 불확실성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 6일 오전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부시 미 대통령이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 청와대



MB 정부, 부시와도 엇박자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보자. '과연 이명박 정부가 부시 행정부와 대북정책 공조를 잘 했느냐'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두 정부 사이의 대북정책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고, 이에 따라 불협화음도 컸다. 세 가지 사례만 들어보자.

첫째 대북지원이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이 극심한 식량난에 처하고 있다는 경고음이 곳곳에서 나왔음에도, '그리 심각한 상황은 아니다', '국민 동의가 필요하다', '북한이 요청하면 검토하겠다' 등 구실 만들기에 급급했다. 반면 부시 행정부는 50만톤의 식량지원을 결정하고 6월부터 인도적 지원에 나섰다. 이것만큼 두 정부의 대북정책의 차이를 보여주는 사례도 없다.

둘째 북한의 핵신고에 대한 한국 외교부의 '황당 개그'이다. 북한은 반년간의 논란과 갈등 끝에 6월 26일 핵신고서를 제출했다. 부시 행정부는 큰 진전이라고 환영했지만, 네오콘들은 '핵무기 신고가 빠졌다'며 부시 행정부에 맹공을 퍼부었다.

그런데 유명환 외교부 장관이 핵무기 신고가 누락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논평했다. 부시 행정부로서는 안 그래도 네오콘의 공세가 귀찮은 마당에 북핵 공조의 대상이자 '전략적 동맹국'인 한국 외교부로부터도 총질을 당한 것이다.

그런데 6자회담 10·3 합의에 명시된 북한의 신고 대상은 '모든 핵 프로그램'이다. 핵무기는 애초부터 신고 대상에서 빠져 있던 것이다. 한국 외교의 수장이 10·3 합의서를 제대로 읽어보기나 했는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셋째, 테러지원국 해제에 대한 정부여당의 '겉 다르고 속 다른 반응'이다. 외교부는 미국 정부가 북한을 테러지원국 목록에서 삭제한다고 공식 발표하자, "환영한다"고 논평했다. 그러나 여당 일부 의원들은 '북한의 위협에 미국이 굴복했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만약 부시가 임기말 레임덕에 시달리지 않은 상태에서 이러한 일들이 벌어졌다면, 이명박-부시 사이에 외교 대란이 벌어졌을 것이다. '부시 행정부에서 쫓겨난 네오콘이 MB 정부로 갔나 보다'라는 자조 섞인 농담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 왼쪽 귀도 열어야 산다

삼단논법으로 정리해보자. 오바마와 부시의 대북정책은 거의 같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MB와 부시의 대북정책에는 큰 차이가 있고, 한미공조도 잘 이뤄지지 않았다. 고로 오바마와 MB의 대북정책에는 더 큰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한미관계와 대북정책 공조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끝으로 이명박 대통령께 한 말씀드리고 싶다.

"영혼은 없고 생존에만 급급한 고위관료, 보수적 목사와 전문가의 얘기만 듣지 마시고, 진보적 전문가와 '잃어버린 10년'의 전직 관료들도 만나 다양한 의견을 들으십시오. 오른쪽 귀로만 듣지 말고 왼쪽 귀도 여십시오. 이것이야말로 대통령님을 역사의 죄인이 아니라 주역으로 만드는 첫 걸음이 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정욱식 기자는 평화네트워크(www.peacekorea.org) 대표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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