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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23)

― ‘도난의 우려가 없을 것 같다’ 다듬기

등록|2008.11.09 13:54 수정|2008.11.09 13:54
.. 체인도 크고 자물쇠도 커, 웬만해선 도난의 우려가 없을 것 같다 ..  <정혜진-착한 도시가 지구를 살린다>(녹색평론사,2007) 154쪽

 ‘체인(chain)’은 ‘사슬’이나 ‘쇠사슬’로 고쳐 줍니다. “없을 것 같다”는 “없을 듯하다”나 “없으리라 본다”로 손질합니다.

 ┌ 우려(憂慮) : 근심하거나 걱정함
 │   - 우려를 낳다 / 우려를 표시했다 / 아이들의 정서를 해칠 우려가 있다
 ├ 도난(盜難) : 도둑을 맞는 재난. ‘도둑맞음’으로 순화
 │   - 도난 사건 / 도난을 당하다 / 문화재 도난에 따른 손해가 막심하다
 │
 ├ 도난의 우려가 없을 것 같다
 │→ 도둑맞을 걱정은 없을 듯하다
 │→ 몰래 가져갈 사람은 없을 듯하다
 │→ 훔쳐 갈 근심은 안 해도 될 듯하다
 │→ 잃을까 근심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 …

 토박이말로는 ‘걱정’이나 ‘근심’이나 ‘끌탕’입니다. 한자말로는 ‘憂慮’입니다. 뜻은 같습니다. 쓰이는 자리와 느낌이 아주 조금 다릅니다. 그러나, 나날이 ‘걱정’이나 ‘근심’이나 ‘끌탕’은 설 자리를 잃습니다. ‘憂慮’는 하루하루 설 자리가 늘어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은 뒷전이고, 나라밖 말과 이웃나라 말은 높이 삽니다.

 ┌ 아이들의 정서를 해칠 우려가 있다
 │
 │→ 아이들 마음을 다칠까 걱정이 된다
 │→ 아이들 마음을 다치게 할까 걱정스럽다
 └ …

 처음부터 우리 말로 알맞게 이야기를 한다면, “도난의 우려”나 “재난의 우려”나 “붕괴의 우려”나 “분실의 우려”나 “전쟁의 우려”처럼 토씨 ‘-의’가 끼어들 걱정이란 없습니다. 처음부터 우리 말로 알맞게 이야기를 하려 들지 않기 때문에, 토박이말은 토박이말대로 뒤로 밀리면서 우리 말투는 우리 말투대로 망가지거나 어지러워집니다.

 “도둑맞을 걱정”, “재난이 터질 걱정”, “무너질 걱정”, “잃어버릴 걱정”, “전쟁이 날 걱정”입니다. “도난의 걱정”이나 “도난의 근심”처럼 쓰는 분은 없을 테지요. “재난의 걱정”이나 “재난의 근심”처럼 쓰는 분이 있을까요? “분실의 걱정”이나 “분실의 근심”처럼 쓰는 분도 없으리라 봅니다. “전쟁의 걱정”이나 “전쟁의 근심”처럼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도둑 걱정”, “전쟁 걱정”쯤 이야기할 따름입니다.

 ‘걱정’이나 ‘근심’ 같은 낱말을 넣을 때면, 저절로, 스스럼없이, 알뜰살뜰 우리 말씨가 살아납니다. 아니, 우리 말로 이야기를 하니 우리 말투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우리 말씨로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이 아닌 나라밖 말로 이야기를 하니까, 나라밖 낱말만 들여오면서 이야기를 엮으려 하니까, 낱말과 말투와 말씨 모두 헝클어집니다. 뒤죽박죽이 됩니다. 엉망진창이 됩니다. 이러면서 말과 삶과 넋과 마음 모두 무너져요. 우리 줏대가 사라지고 우리 기둥이 흔들립니다. 마음이 흐트러지니 몸을 간수하기 어렵습니다. 마음이 뒤죽박죽이니 몸을 튼튼히 다스리기 힘듭니다.

 ┌ 우려를 표시했다
 │
 │→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 걱정된다고 했다
 │→ 근심스럽다고 이야기했다
 │→ 근심이 된다고 했다
 └ …

 “붕괴의 우려가 존재하는 모국어”가 아닙니다. “무너질까 걱정스러운 토박이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말이 무너지거나 흔들리거나 갈피를 못 잡게 되는 까닭은, 이웃나라에서 우리 나라를 괴롭혀서가 아닙니다. 영어나 한문이 우리 말을 괴롭혀서가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못살게 구니까 우리 말이 괴롭습니다. 우리 스스로 영어와 한문으로 우리 말을 들볶으니까 우리 말이 고달픕니다.

 생각해 보면, 말이 무너진다고 해서, 말 하나 무너진다고 해서, 말이야 무너지건 말건 나하고 무엇이 이어지느냐고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말은 말일 뿐이라고 합니다. 날마다 말을 하고 살면서, 말이 얼마나 자기 삶과 이어져 있는 줄 느끼지 못합니다. 날마다 밥을 먹고 살지만, 밥이 어떻게 지어지고 밥거리가 어떻게 마련되는 줄 느끼지 못하는 매무새와 마찬가지라고 할까요.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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